[젠더위원회 ‘대선 후보에 말한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여성신문 젠더위원회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각 당 대선 후보가 발표한 정책 공약을 진단하고 한국사회를 이끌 리더로서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정책을 제언한다. <편집자 주>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홍수형 기자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홍수형 기자

2021년은 괴로운 해였다. 코로나19로 거리에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이삼십년 넘게 장사하시던 단골가게는,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스크 호흡이 너무 괴로워 아무도 없을 때 잠깐씩 벗으며 버텼지만, 어린이나 노년인 사람, 그들을 돌보는 이는 결코 마스크를 내리지 못했고 만남도 기피했다. 겨울은 한파나 이상기온이었고, 봄에는 강원도 산불, 여름엔 뒷산 대벌레 주의보가 울렸다. 사람들이 죽었다. 성소수자가, 비닐하우스 이주노동자가, 현장실습생이, 하청노동자가,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죽었다. 집값이 솟구쳤다. 전세만기가 돌아오는 친구들 집 생각하면 기가 찬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한 것 중 하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주거는 빈곤이 성착취와 직결된다는 증거다. 피해자를 위한 LH에 입주하고자 노력했던 분은 LH사건이 터져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전화를 포기했다. 12월 31일 마지막 밤, 국회 담장 앞에서 14년째 제정되지 않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쳤다. 매운 한기가 사람들의 몸을 에워쌌다.

이제, 숨 좀 쉬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개천에서 용나고, 대박이 터지고, 신분 대전환을 이뤘다는 ‘콘텐츠’를 보수 신문, 종편 채널, 유튜버가 여전히 내보내지만 지난 2년간 우리가 만난 세상은 그렇지 않다. 간절히 바란 것은 사람들이 제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죽는 것, 좋아하는 친구들과 신나게 웃고 이야기하며 깔깔대는 것, 어린이든 노년이든 장애인이든 동물이든 누구든 자기 몸으로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것, 길에서 인터넷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갑자기 욕을 듣고 맞고 조리돌림, 박제되고 죽는 일이 없는 것, 가난한 사람들, 여성, 소수자들, 어린이와 청소년, 사회적 재해의 피해자들이 시민으로서 사람으로서 예측 가능한 존중과 권리를 훼손없이 보장받으며 사는 것. 혐오와 차별이 없는 것. 너무 단순한 것이 너무 간절해진 나머지, 정치인들이 딴 세상 이야기를 할 때마다 대통령선거가 또 다른 재해라고 느껴진다. 

양대 정치진영이 발전 시킨 ‘이대남’ 담론

위기를 기회로! 정권교체! 뭔가 바꿔야 한다는 슬로건은 1, 2번 후보의 주특기다. 그런데 무엇을 바꾸어야 하나? 상대 후보, 상대 정당, 상대 정권을 바꾸면 국민의 승리인가? 정치에 과몰입해 있는 사람들과 이를 실어나르는 언론은 그렇게 짜인 판에서 그래서 누가 이겨? 로 초점을 만들지만, 그 결과 서로 한없이 하향 평준화되어도 부끄럼 없는, 경쟁적으로 서로 더 나빠지는,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대남’ 논의는 공교롭게도 성폭력 문제로 물러난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 대한 평가 시기에 본격화됐다. 성폭력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천명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을 해야 할 정당과 정치인들이 본인들에게 주어진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성평등에의 요구를 ‘회피’하는 장벽을 세우면서 그 근거를 20대 남성들이 역차별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이대남이 지지율을 움직이며 큰 수적 집단으로 보이는 전략도 있었겠지만, 인구분포와 유권자분포는 여전함에도 이대남을 가장 유효한 표심으로 상정한 것은 한국 남성 중심 정치권 주류의 선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대남 담론이 여성과 남성이 갈등한다는 프레임을 넘어, 양대 정치진영이 이를 발전시켜 사회적 변화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탈을 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초등학생들이 쓴 기후위기 손편지를 전달받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월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탈을 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초등학생들이 쓴 기후위기 손편지를 전달받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공생은커녕 공정도 아닌 각자 도생으로

여당의 후보는 내세우던 진보 포퓰리즘, 개혁 과제 논의를 뒤로 하고 주식, 코인, 부동산 확대에서의 개방성과 ‘진취성’을 자랑한다. 사회 개혁이 경제 대통령으로, 계급적, 성적, 지역적 차이에 기반한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방향이 주식과 코인, 부동산에 투자하여 개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노하우로 나누는 자유경쟁시장을 보장하는 것으로 둔갑하고 있다. 제1 야당의 후보는 대놓고 천명했다. “구조적 차별은 없다, 차별이 있다면 개인적 차별이다”라고. 여당 후보가 편승하고 장려하는 신자유주의 각자도생 자유경쟁 시장주의를, 야당 후보가 ‘구조적 차별은 없다’라고 프레임화, 담론화하는 것이다. 서로를 비판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번 대선 정국은 공생은커녕 공정도 아니고 각자 도생하는 경쟁사회를 더 확고히 하는 분기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2022년 1월, 여성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모였다. 정치권의 차별, 혐오, 증오선동을 멈춰야 한다고 결의를 모았다.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이 시작됐다. 여성도 인구 절반이다, 수적으로 많다며 표를 결집하고 지지율 그래프를 움직이자는 의견도 있겠지만, 승자가 독식하는 게임판에서 숫자로만 계산되는 유권자가 되기보다, ’주권자‘로서 행동하기로 했다. 정치권이 지우고 있는 차별과 혐오, 폭력을 말하고 지워지고 있는 시민들에 대해 요구한다. 2월 12일에는 집회와 행진, 19일에는 시국토론회, 3월 8일 여성의날까지 온라인 10만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사랑과 우정, 연대와 공생, 평등과 평화가 간절한 사람들이라면, 정치권의 혐오, 차별, 증오선동을 멈추고 싶은 이라면 모두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에 함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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