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성주의를 위한 변론] ③

20대 대통령 선거판에서 젠더 문제가 화제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평등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정치적 힘을 얻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기반한 미래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서 우려스러운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의 기본을 다시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사학 등 다양한 분야 중견 학자들이 헌법 정신을 근거로 시민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그 핵심으로서의 성평등을 논의한다. <편집자 주>

 

김병인 전남대 사학과 교수
김병인 전남대 사학과 교수

5·18과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보호가 정당화되고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지면서, 전통시대 가부장적 권위의 엄징성을 나타내는 ‘감히’라는 단어가 그 생명력을 다해가는 듯했다. 그런데 일베, 워마드, 미러링, 꼰대, 틀딱, 이대남, 세대포위론 등 ‘편파를 정당화 하는 커뮤니티’와 ‘세대 갈라치기 용어’가 난무하다가, 급기야 ‘여성가족부 폐지론’까지 등장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필자는 이미 <정치인들, 진정 ‘헌법정신’을 알기는 하는가?>(남도일보 1월 17일자)라는 칼럼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의 온당치 못함을 논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지)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먼저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 중앙행정기관은 ‘정부조직법’에 따라 설치되며, 여가부는 동법 41조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주도하려면 정권을 잡아야 하고, 이후 국회의 논의와 의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 다수당이 반대하면 상임위원회 통과부터 어렵다. 입법 이전에 지루하고 복잡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함은 당연하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SNS에 불쑥 일곱 글자 던져놓는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여가부는 헌법 34조의 정신 
구현하기 위한 정부 부처

게다가 여가부 폐지론자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여가부의 설립 근거가 헌법정신에 있다는 사실이다. 헌법 제34조 ①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여, 헌법 10조 ‘인간의 존엄권’, ‘행복추구권’과 함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 ①항의 실천력을 담보하기 위하여 ②항에서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강제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③항에서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④항에서 노인과 청소년, ⑤항에서 신체장애자와 질병,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을 보호하도록 규정하였다. 더 나아가 오늘날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사태를 대처해가기 위해 ⑥항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까지 추가해 뒀다.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내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제헌 헌법(영인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내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제헌 헌법(영인본). ⓒ 여성신문

원론적으로 말하면, 여가부는 헌법 34조 ③항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정부 부처라 할 수 있다. 통일부는 헌법 4조 “통일을 지향하고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조항, 최저임금제는 32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에 따르고 있는 원리와 같다. 이에 여가부 폐지를 원한다면 헌법에서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면 될 일이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그렇게 된다면, 이는 여성의 지위와 인권이 별도의 법적 조치 없이도 실현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결과일터이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는 이 조항이 삭제되어 있었다. 지금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야당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아 자동 폐기되어 버렸지만! 

87년 이후 모두가 동의하는
‘헌법정신’과 ‘헌법적 가치’

그런데 헌법 개정이 어찌 쉬운 일인가? 헌법을 개정하자면 여가부 폐지 문제만 다룰 수 있겠는가? 당연히 국민 중심주의 탈피, 국민기본권 신장, 지방자치 조항 확대, 생명권 신설, 다문화 수용 등 시대 변화를 수용한 다양하고 민감한 논의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헌법 개정과 관련된 문제가 이렇게 복잡한데, ‘여성가족부 폐지’ 이렇게 그냥 툭 던져놓고 참모들이 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이는 국가 경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애먼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는 대선 국면인데다가, 매사에 극도로 분열되어 있고 곳곳에 갈등의 불편함이 산재해 있다. 선거 결과나 진영 논리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도 도처에 깔려 있다. 서로를 인정하거나 공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출구는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공유하는 ‘헌법정신’과 ‘헌법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진영이 달라 하나의 논리로 합쳐지기 어렵다면 헌법대로 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문제는 헌법정신에서부터 출발하면 쉽게 풀 수 있다.

우리의 헌법정신을 요약하면,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여 (기회와 결과에 대한) 균등의 원칙과 세계평화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와 우리 자손의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라(헌법 전문 내용 요약)”는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동의하고 오랫동안 지켜온 헌법정신 아닌가? 그렇다면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촛불시민과 태극기부대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헌법정신에 충실해도 되지 않을까?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완수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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