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두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근무하는 부산에 다녀왔다.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 일요일 저녁에 돌아왔으니, 두 밤을 자긴 했지만 짧은 2박 3일 여행이었다.

@A15-1.jpg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새해와 함께 시작된 주말부부 생활에 나와 남편 모두 두 달 정도 지난 다음에야 겨우 적응이 되었고, 아이들 역시 이제야 비로소 별 불평 없이 평일의 아빠 없는 생활을 잘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어둠이 내리고 저녁 먹을 때쯤 되면 “아빠는 지금 뭐 하고 계실까”“아빠는 누구랑 저녁 드실까” 말하는 아이들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돌았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면 아이들도 나도 “에이, 아빠 오시는 줄 알았잖아” 하며 마주보고 슬며시 웃기도 했다. 밤이면 내 손으로 분명히 걸어 잠근 현관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고, 바스락 소리만 나도 겁이 나곤 했다. 물론 지금은 세 여자가 씩씩하게 잘 해나가면서, 오히려 혼자 있는 남편과 아빠를 열심히 걱정해 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말부부에 대한 같은 여자들의 반응이다. 두 가지로 정확하게 나뉘는데, 하나는 “어머, 쓸쓸하겠다. 그나저나 남편 감시 잘해라. 남자들 외로우면 딴 생각한다더라” 종류이다. 또 하나는 “좋겠다. 밥 안 해 줘도 되고 얼마나 좋을까. 나도 한 번 떨어져 살아봤으면…”이다. 그럼, 나는 어느 쪽일까.

쓸쓸한 것은 사실이고 남편을 감시하는 것은 내 힘 밖의 일이니 생각도 안 해 봤다. 내가 남편을 감시해야 한다면 남편 또한 나를 감시해야 할 테니, 이미 그 정도라면 기대할 것이 없는 부부일 것이다. 또 밥이야 워낙 집에서 먹는 경우가 드물었으니 평소에도 별 부담이 없었던 일이다. 그러면 뭐지? 내게 가장 큰 어려움은 남편과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전화나 이메일로는 아이들 이야기며 집안 어른들 동정에 서로의 일까지, 말로 하는 것만큼 소상하게 주고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아이들과 사소한 부딪침이 있을 때,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 슬쩍 중재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 때로 가슴속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이런 내 속마음을 눈치챈 남편이 기차표를 끊었다는 연락을 해와 부산행 기차를 타게 된 것이다.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래가 아니라 자갈이 깔린 태종대 자갈마당에 앉아 바다 구경을 한다. 예쁜 돌을 줍느라 부산한 아이들 곁에서 남편과 나란히 앉아 말없이 바다를 보며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밀려왔다 물러나는 파도에 자갈이 구르고 서로 부딪치면서 대글대글 소리를 낸다. 돌들을 들여다보니 특별한 몇몇을 빼고는 다들 둥그렇다. 파도에 씻기고 서로 부딪쳐 모서리가 닳아버린 돌들이 부드럽게 손에 잡힌다. 노년에 이른 부부들을 보면 '참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오래 살면 닮는다더니, 맞는구나' 속으로 끄덕이기도 했다. 파도에 씻기고 서로 부딪쳐 모서리가 닳아 없어진 바닷가의 자갈들처럼, 노년의 부부 역시 사는 일에 이리저리 쓸리고 서로가 서로를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부대꼈기에 그렇게 둥그렇게 닳아 서로 닮은 얼굴로 마주보는 것일까.

보기 좋은 노년의 모습들을 한 번 꼽아보라고 하면, 중년 여성들이건 대학생이건 빠짐없이 늙은 부부가 나란히 걷거나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돌멩이 두 개가 서로 맞부딪쳐 닳을 때, 어느 한 쪽은 제 모습 그대로 있고 다른 한 쪽만 둥그렇게 닳아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사는 일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변하지 않고 상대만 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아프더라도 서로의 뾰족한 모서리를 갈아 둥그렇게 닳아진 얼굴로 마주한다면 꽤 괜찮은 노년이 될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주말부부로 사는 지금의 어려움도 서로 닮은 얼굴로 늙어가는 그 길의 소중한 양식이 되길.

treeappl@hanmail.net,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treeappl@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