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성주의를 위한 변론] ②

20대 대통령 선거판에서 젠더 문제가 화제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평등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정치적 힘을 얻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기반한 미래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서 우려스러운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의 기본을 다시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사학 등 다양한 분야 중견 학자들이 헌법 정신을 근거로 시민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그 핵심으로서의 성평등을 논의한다. <편집자 주>

김태일 장안대학교 총장
김태일 장안대학교 총장

 

정말 민망하다. 이번 대선은 미래비전 경쟁이 아니라 비호감 경쟁이다. 여성주의 이슈가 그나마 쟁점이 되고 있으나 다행이라 할 수도 없다. 그것 역시 비호감 경쟁의 소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세력은 여성주의를 비틀어 혐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혐오와 배제의 정치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쪽은 기득권자다. 힘이 있는 쪽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고 한다. 인종 갈등이 그랬고 지역 갈등이 그러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반여성주의 정치가 그렇다. 강자가 특정 약자를 따돌리면서 그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를 결집하려는 것이 반여성주의 정치의 본질이다.

혐오와 배제, 반여성주의 정치의 본질

우리나라에서 여성주의 가치가 성장하면서 억눌려있던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자존과 생명의 위협은 여전하다. 이런 현실을 왜곡하면서 일부 정치세력은 여성주의 가치가 지나치게 대표되고 있으며 그것은 불공정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들은 여성주의 가치와 현실을 비틀고 있다. 여성주의 가치는 모든 사람은 귀하고 평등하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인데 그들은 여성주의를 대결적, 분열적 행동이라 불온시하고 있다. 되레 여성주의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처럼 여성주의에 사회갈등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일종의 피해자 비난론(victims-blaming theory)이다. 원인은 억압적 현실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약자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한다.

여성주의 비틀기는 한 사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성장통을 가증스럽게 이용하고 있다. 여성주의 가치는 존재하고 있는 차별을 바로잡아가는 과정이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인지라 낡은 것과 헤어지는 아픔도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내면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며 사회체제 차원에서도 나올 수밖에 없는 당연한 현상이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 민주적 여성주의로의 변화는 마냥 평화로울 수는 없으며 거기에는 일정한 이행의 비용이 필요하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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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 전환의 계곡을 건너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이 노골적으로 자행하는 여성주의 비틀기 전략은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이념적 불러내기(ideological interpellation)에 비견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어떤 사회현상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사회의 마음, 습속, 관행에 존재하고 있는 코드를 불러내어 그것을 이데올로기화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한때 우리 사회에 큰 힘을 발휘하였던 반공, 승공, 멸공과 같은 이데올로기 동원은 우리의 경험과 무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는 전쟁의 참혹함, 폭력의 공포 등을 불러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비틀기도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가 커지는 과정에서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일부 기득권 계층의 불만과 위기의식을 불러내면서 그것을 반여성주의로 이데올로기화하는 정치공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반동의 정치는 ‘성공의 역설’

일부 급진적 여성주의로부터 마음 상한 사람들, 그리고 정치적 진영논리에 오염된 여성 엘리트에 실망한 사람들의 불편한 기억까지 헤집으면서 그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하는 것도 반여성주의 세력이 놓치지 않는 대목이다. 진화를 멈춘 것 같은 여성주의 의제의 부진 역시 이데올로기적 불러내기의 질료가 되고 있다. 반여성주의 세력은 이런 것들을 꼬투리 삼아 그것을 부풀리고 거기에 터무니없는 가상현실까지 만들어 붙여 편견과 적대감을 조장하고 있다. 봉건사회의 가부장주의는 식민지배, 분단체제, 군부독재와 결합을 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왔는데 지금은 일부 정치세력의 여성주의 비틀기를 통해 그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반여성주의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 가부장주의 재생산을 뒷받침해왔던 어두운 역사의 그늘은 사라지고 자주, 평화, 민주의 시대정신이 꽃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여성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작금의 반여성주의는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려는 ‘반동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 반동의 정치는 그동안 여성주의가 우리 사회 발전에 이루어 놓은 역사적 성과 때문에 생겨난, 말하자면 ‘성공의 역설’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가 지금까지 만든 세상의 변화를 돌아보는 자기성찰은 물론 해야겠다. 하지만 반여성주의의 비틀기와 이데올로기적 불러내기와 같은 반동의 정치공학 때문에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모두를 위한 진보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면 된다.

 

김태일 장안대학교 총장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박사. 영남대학교에서 비교정치, 한국정치, 북한정치, 사회운동, 남북관계 등을 가르치다가 2021년 2월 정년퇴임하고 현재 장안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한국정치론 1, 2>(공저), <새정치 난상토론>(대담집), <전환의 도시 대구, 미래와 비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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