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재경부 등 8개 기관 확대 가시화 행자 '반대'…산자·문광 자발적 설치 대조적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환경부, 과학기술부, 국방부, 그리고 중앙인사위원회 등 8개 기관에 여성정책담당관을 추가로 설치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 8개 기관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여성부가 담당관 추가 설치가 필요한 기관으로 꼽은 곳이다. 실제 이 부처들 가운데 문광부와 과기부 등은 여성정책 전담부서 신설의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행자부가 부처간 형평성과 부서 확대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나타내 진통이 예상된다.

여성정책담당관은 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의 업무 추진을 위한 실무 부서로 법무, 행정, 복지, 교육, 농림부에 일괄적으로 설치됐다. 하지만 여성계는 모든 정책이 여성을 고려하고 양성평등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전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 설치,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여성부도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성주류화 정책 추진을 위해 여성정책담당관 확대의 필요성을 보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이하 정부혁신위)에 담당관제 확대 필요성과 방안에 관한 연구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담당관제 확대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 8일 여성부는 정부혁신위 행정개혁위원회 전문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여성정책담당관 확대 설치 의견을 밝혔다.

독일의 경우처럼 전 부처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기획예산처 등 중요 부처에 먼저 설치하고 점차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우선 설치 대상 부처는 성인지적 예산과 재정 정책을 추진할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여성정책기본계획 정책과제가 많은 문화관광부, 여성의 역할과 참여가 중요한 정보통신부와 환경부, 앞으로 여성의 능력개발과 참여확대를 위해 전략적 정책추진이 필요한 과학기술부와 국방부 등이다. 또한 최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행정자치부의 인사업무를 맡게 된 중앙인사위원회도 여성정책담당관 우선 설치 대상으로 꼽혔다.

한편에선 여성정책담당부서를 신설하려는 부처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활발하다. 산업자원부의 경우, “여성 기업·경제활동 지원 등 업무가 부서별로 흩어져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못한다”며 여성정책전담부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과학기술부 역시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 제정으로 관련 업무가 크게 늘어 지난해부터 가칭 '여성과학지원과'라는 전담부서의 마련을 추진해 왔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9월 문화행정혁신위원회 아래 여성문화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하지만 팀장 1인 이외에 팀원들이 모두 다른 업무를 맡아 실질적인 집행력을 갖추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최진 팀장은 “여성정책담당관 같은 여성문화정책을 위한 효율적인 추진체계 마련을 요구한다”며 “조직이란 틀을 갖춰야 지속적인 정책 개발과 추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 조직을 총괄하는 행정자치부는 여성정책전담부서 신설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성부의 의견 제출에 앞서 행자부도 지난달 23일 정부혁신위 회의에 참석,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자부 한 관계자는 “부 단위의 고유 업무를 수행하면서 각 부처에 관련 창구를 만든 사례는 없다”며 “정부 조직 체계상 나올 수 없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부의 여성정책전담부서 확대 요구를 받아들이면 형평성에 따라 다른 부처의 기능 확대 요구도 외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가령, 환경부의 환경정책담당관도 산자부나 노동부 등 관련 부처에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혁신위 전문위원들도 여성정책담당관 확대의 명분은 공감하지만 부처간 형평성 등 조직 논리상 어려운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화여대 행정학과 박통희 교수는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조직이 만들어져 우리나라의 정부조직체계가 방만한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성차별 요소가 심각하다는 논리도 중요한만큼 결국 정책적 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박 교수는 “여성부가 성인지 관점과 정책 확대를 위해 언제까지 여성정책담당관을 두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 전체를 고려해 한시적인 논리로 접근할 때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본다”고 제안했다.

김선희 기자

sonagi@

■전문가 진단 조우철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

“여성부 하부 조직 편견부터 버려야”

@A3-9.jpg

여성부가 밝힌 여성정책담당관 확대의 주요 내용은 조우철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의 '성주류화 정책추진체계에 관한 연구'에 바탕한다. 조우철 교수는 이 연구에서 성주류화 정책의 기본방향 정립을 위한 이론과 추진 전략을 고찰하고, 현재 5개 부처 여성정책담당관실의 기능과 실적을 분석해 여성정책담당관 기능의 개선방향과 추가설치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다음은 조 교수와 일문일답.

- 여성정책담당관 확대가 필요한 이유는.

“첫째는 성주류화 정책이 여성계 목소리가 아니라 국가발전기본전략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정책 특성상 여성정책담당관이 여성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성주류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여성정책조정회의가 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정책전담부서의 확대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는 각 부처 내에서 고유 기능과 관련된 여성업무에 대한 행정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다. 문화관광부에서 여성 관련 업무가 증가해 이를 총괄하고 집행할 여성정책 업무 부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독일 등 선진국의 사례를 제시했는데, 우리 현실과 다른 외국의 정책을 꼭 도입해야 하냐는 지적도 있다.

“여성정책을 '부' 단위로 추진해 온 나라들의 특징은 여성정책전담기구와 관련 부처가 자전거의 축과 살처럼 유기적인 체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정책의 특성상 여성의 관점을 갖고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공통점으로, 국가별 상황 차이와 무관하다.”

- 부처간 형평성을 이유로 여성정책담당관 확대를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성정책전담부서를 여성부 하부조직으로 잘못 인식하고 부처간 정치적인 문제로 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실질적으로 부처에서 행정 수요가 있기 때문에 여성정책전담부서를 원한다. 행정 수요가 있는 곳에 인력과 조직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