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평론가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을 멋있고 의미 있게 끝내고 싶어한다(죽을 때까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만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확실히 인명이 재천인 모양이다). 이 글은 이 난의 마지막이다. 그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에 어떤 노래를 이야기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역시 안혜경이다. 최초의 본격적인 페미니즘 노래 창작자인 안혜경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자기 변신을 거듭하며 대중과의 긴밀한 소통을 시도해 왔다. 그의 노래의 음악적 고향은 포크였지만, 1990년대 중반 저항적 록 바람이 불 때에 밴드 '마고'를 결성해 검은 안경과 가죽잠바 차림으로 무대에 섰고, 20세기를 넘어서면서 그는 라틴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포크가 갖는 단정하고 이성적인 느낌을 넘어서서, 그의 노래는 록과 라틴음악의 강렬하고 역동적인 질감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는 4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2002년에 낸 3집 음반은, 포크를 벗어난 그의 긴 노력의 결실인 동시에, 중년 여자의 당당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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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본격적인 페미니즘

노래를 창작한 안혜경.▶

(상략) 워워워 / 내 안에 똬리 튼 거짓 된 신화 / 의미 잃은 관습의 거대한 산 / 난 아직 이 계곡을 헤매고 있지만

(안혜경 작사·작곡 )

그는 세상과 자신 자신과 아직도 전투중이다. '내 몸을 칭칭 감는 편견의 가시덤불'() 속에서 싸우며, '절망의 보퉁이 낚아채어 저 강물에 던'져 버리고 '어머니 눈물에 젖었던 날개'를 말려 마른 날개로 비상하기 시작한다.(<비상>) 그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없이 하면서도, 당당하고 스케일 큰 음악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대 위에서 그는 마치 여사제 같은 몸짓으로, 인류의 역사 속에 여성이 무엇이었는지 노래한다.

여인의 지혜가 세상을 밝히던 시대가 있었다는군 / 여인의 가슴이 용기로 가득했던 시대가 있었다는군 / 여인의 근육이 투사의 자부심이던 시대가 있었다는군 / 여인의 사랑으로 평화를 전도했던 시대가 있었다는군 / 여인의 자비로 굶주림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는군 / 여인의 자궁이 우주를 잉태하던 시대가 있었다는군

(안혜경 작사·작곡 <오래된 미래>)

페미니즘을 불평 많은 여자들의 앙탈 정도로 치부하는 마초적 인식이 아직 팽배해 있는 이 사회에서, 이런 스케일의 노래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렇다고 그가 구체성이나 현실감을 상실한 채 구름 위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남자 셋에 여자 둘 빨간 고추 나라 (중략) 내 이름은 안혜경 어머니는 노금순 위대한 어머니 당신 성은 전혀 필요 없어요 / 우리 가족 넷 중 어머니만 다른 성'(<고추밭>)이나 '남자는 하루에도 수백번 이런 여자를 만들지 (중략) 늘 애인 같은 여자 늘 산소 같은 여자 / 늘 상냥한 여자 / 깃털처럼 나긋한 여자 (중략)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여자 복종적인 여자 그러면서도 동시에 관능적 백치미를 가진 여자'(<끝내주는 여자>) 같은 노래들에서처럼, 이제 그는 현실의 핵심을 찌르며 능란하게 야유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그는 그 동안 자매애로 자신을 성장시켰던 수많은 여자선후배·동료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며(<사랑하는 언니에게>), 고통받고 있는 제3세계의 여성들에게 연대의식을 표하기도 한다.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무지의 문을 열었고 나는 황금빛 팔찌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였다 (중략) 분노가 내게 힘을 주었고 불타버린 마을들이 적을 향한 증오로 나를 채웠다 (중략) 오! 형제여 나는 내 길을 찾았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아프간여성혁명연합의 암살된 지도자 미나의 시에 곡을 붙인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불혹의 나이에 말 그대로 그녀는 정말로 자기 '길'을 찾은 듯하다. 나는 이 음반에 실린 노래들을 들으며, 그녀가 중년이 되도록 이렇게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만약 이 노래들을 20대나 30대 초반의 가수가 불렀다면 결코 이 느낌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중년이 된 안혜경의 당당함과 넉넉함, 자신만만함과 성숙함, 그것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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