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의 정치’를 멈춰라
‘반동의 정치’를 멈춰라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2.01.13 08:42
  • 수정 2022-01-13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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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허황된 7글자 선거 구호
20대 남성 표 얻기 위해
여성‧성평등은 배제하나
여성가족부 내년 예산은 1조1789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약 0.21% 수준이다. ⓒ여성신문·뉴시스
ⓒ여성신문·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별다른 설명이나 대안은 없었다. 원희룡 선대위 정책총괄본부장조차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리기 전까지 몰랐을 정도로 내부에서 검토한 사안도 아니었다. 떠나간 2030 남성 표심을 붙잡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충분한 논의 없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호응도가 높은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여가부를 둘러싼 주요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던 윤 후보는 말을 바꿔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언했고, 11일 아동·가족·인구 등 사회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거나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윤 후보 공약의 문제는 모호성이다. 폐지라는 방향만 있지, ‘왜’, ‘어떻게’는 빠져 있다. 윤 후보가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동·가족·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만 밝혔으나. 갑자기 말을 바꾼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는데다, 지금도 여가부가 아동·가족·인구감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상황에서 기존 ‘양성평등가족부로의 개편’ 공약과의 차별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윤 후보는 여가부의 문제점으로 젠더 갈등 조장을 들었다. “여가부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는 것이 폐지의 논거로 쓰인다. 허황된 주장이다. 여가부 예산 내역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가부의 올해 예산은 1조465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607조7000억원)의 고작 0.24%에 불과하다. 이 마저도 80.5%는 한부모 아동 양육지원비, 아이돌봄지원사업 등 가족정책(9063억원)과 청소년 관련 사업(2716억원)에 쓰인다. 여성과 남성 모두 혜택을 보는 사업이다. 여가부 예산의 대부분이 교육부나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성폭력·가정폭력 등 피해자 지원(1352억원)에는 9.2%가 투입된다. 여가부 하면 떠올리는 여성·성평등 분야 예산(1055억원)은 고작 7.2%다. 이 예산도 상당 부분은 경력단절 여성 지원에 쓰인다.

‘하여튼 폐지’식의 주장은 여성이 처한 엄혹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리천장 지수 꼴찌(이코노미스트)를 기록하고 성별임금격차 1위(OECD)를 놓치지 않는다. 데이트폭력 사건은 하루 평균 26건(경찰청)이 발생하고 남편이나 애인 등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2020년 최소 97명에 달한다.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31명이었다(한국여성의전화). 제1야당 대선 후보는 여성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최소한의 대안도 없이 여가부 폐지라는 선정적 구호만 외치고 있다.

전 세계 97개국에 여가부에 준하는 장관급 부처가 있다(2020년 유엔여성기구). 시대정신을 거스를 수는 없다. 반동의 흐름은 오히려 여가부가 더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성별 갈라치기’가 목적이 아니라면 선정적인 캠페인부터 멈추고 생산적인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여가부 개편과 기능 조정은 정부 조직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그려야 한다. 부처 이름을 바꿀 수도 있고,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정책에 성평등 관점을 반영할 수도 있다. 전담 부처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이 별개의 독립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의견도 있다. 치밀하게 대안을 준비해 공론장에서 논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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