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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그 사람의 나이나 차림새와 관계없이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는 슬쩍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본다. 내가 읽은 아는 책이면 반갑고 내가 모르는 책이면 궁금해진다. 읽고 있는 책을 보면 대개는 그 사람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책은 그 사람 정신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50년대 후반의 길거리에는 천막을 깔고 열리는 노점 책방들이 있었다. 주머니가 얇은 독서가들은 그런 노점 책방 앞에 서서 읽을 책을 고르곤 했다. 차비까지 털어 고른 책 한 권을 들고 걸어가는 귀가 길의 행복은 나만의 추억이 아니다. 그 무렵 우리는 책 한 권을 손에 들지 않으면 외출이 안 됐다. 어려워서 책장이 안 넘어가던 파우스트나 팡세도 그 즈음 내가 들고 다니던 책들이다. 지금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그 무렵 종로서적의 추억이 없는 지식인이 과연 있을까. 종로서적에 가는 일은 잔칫 집에 가는 것과 같았다. 그때는 책만 보다 오는 일이 지금처럼 예사롭지 못해 어렵게 책 한 권 살 수 있는 돈이 생기면 종로로 향했다. 그야말로 책을 사는 고객이 되어 많은 책들을 떳떳하게 펼쳐보고 나서 고른 책 한 권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그렇게 사 온 책을 얼마나 소중히 읽었던지 한 장 한 장을 넘기기 아까워했다.

그때 우리는 책에 목이 말랐다. 책방도 서울에 종로서적말고 몇 군데가 더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국립도서관이 남산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도서관을 이용해 보지는 못했다. 도서관이 가까이 있는 동네, 이것은 내가 살고 싶어하는 동네였다. 아직 부족하긴 해도 지금은 도서관이 꽤 많이 생겼다. 책방도 많고 거의 모든 학교에 도서관이 있다. 책방들도 아주 큰 대형서점이 많고 그곳에 가면 얼마든지 책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책들은 많이 읽히고 있는가. 언젠가 우리 국민 한 사람당 독서량이 연 1.2권이라는 통계수치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나이 사십에 삼만 권의 책을 읽었던 대석학 퇴계선생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준다. 그분이 읽은 책의 분량을 계산해 보았다. 그분이 읽은 책이 잡동사니는 아니었을테니 열 살부터 독서나이로 치고 40세까지 30년 동안 읽은 책이 3만 권이다. 30년이면 360개월이다. 3만 권을 360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83권을 읽은 셈이고 하루에 거의 세 권씩 읽었다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놀라운 독서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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