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득렬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 원장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 신득렬 원장 ⓒ권은주 기자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 신득렬 원장 ⓒ권은주 기자

대구 팔공산에 위치한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서양의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 Great Books Program)을 운영하는 곳이다.

신득렬(77) 원장이 계명대 교육학과 교육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0년 ‘허친스의 교육사상’을 출간하며 허친스에 대한 연구만 할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든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서도 실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양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신 원장은 한국사회에 새바람을 불어 넣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나섰다.

1991년 11월 11일 비영리교육기관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Paideia Academia)’를 설립하고, 고전의 힘과 가치를 강조하며 동료교수들과 제자들과 함께 ‘문화적·지적 걸음’을 시작했다.

“현직 교수가 돈벌이를 한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회원들한테 한 달 1만원의 회비만 받았습니다. 월 30만씩 사무실 임대료도 내야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위대한 저서 읽기 운동’을 한다는 일념으로 뚜벅뚜벅 왔습니다.”

48세에 시작해 퇴임까지 17년. 결코 녹록하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2009년 3월 여섯 번 이사 끝에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장소다. 팔공산 자락에 위치해 조망도 좋은 공원 지구다. 1층은 북 카페로 일반 시민들에게도 개방하고 회원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장으로도 활용한다.

2021년 11월 11일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시민들과 함께 해온 ‘위대한 저서 읽기’ 운동은 분명 성과가 있었다.

한국파이데이아학회 창립, 공동탐구지도자 380명과 독서전문지도자가 배출되었고 전국에 15개 지부가 만들어졌다.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에는 전국 최초로 ‘위대한 저서프로그램’이 정규교과목으로 들어갔다. 파이데이아와 MOU를 맺은 후 윤리교육과에서 인문교육과로 바꾸자 1년에 두세명 남짓 오던 과에 열일곱 명이 진학하는 인기학과로 급부상했다. 일주일에 성인 및 청소년 반 9개가 운영되며 지적 자극을 받은 회원들의 대학원 진학도 이어져 박사학위자만 5명으로 늘어났다. 12년차를 마친 회원 8명이 배출되기도 했다.

책읽기가 단순한 지식 습득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회원들의 혜안이 놀랍다.

“미국 교육철학자 허친스(R. M. Hutchins, 1899-1977)는 시카고 대학 총장이 되면서 아들러(M. J. Adler, 1902-2001)와 대학생과 일반인의 교양교육을 위해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만드니다. '시카고 플랜'으로 불린 이프로그램은 시카고대의 전교생에게 2년 동안 적용되는데 입학 후 졸업 때까지 학교에서 지정한 100권의 철학, 정치학, 인류학, 경제학, 문학과 관련된 고전을 읽어야 했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었지요. 고전을 읽어 나가는 동안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기르고 전공과 고전문학이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1940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으로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가 70명에 이른다고 하니 신 원장이 내딛은 그 걸음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권은주 기자
위대한 저서읽기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는 신원장 자신이라고 했다. ⓒ권은주 기자

허친스는 동료 교수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1952년 ‘서양의 위대한 저서’ 총 54권을 브리태니커에서 출판했다. 이 전집 중 4권부터 54권까지 총 51권이 ‘위대한 저서’이며 74명의 작가가 쓴 443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에서는 1년차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시작으로 12년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기원과 발달’까지 출판년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목록에 따라 책을 읽어나간다. 다 읽으려면 12년이 걸린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저’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안했다면 퇴임한 노교수로 집에만 있었겠지요. 새로운 토론반이 생길 때마다 인문학 사회과학 전반의 고전을 열 번 이상 읽게 되니 전반적으로 제가 넓어진 느낌입니다. 회원들은 1년차와 2년차에 그리스의 고전작가 호메로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래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헤르도토스, 투키디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읽고 토론하는데 서사시, 비극시를 쓴 시인들과 달리 플라톤의 글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은 자기와 비슷한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 아카데미에 와서 함께 기숙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국가’를 썼는데...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독서의 출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염원대로 책의 내용을 자신의 인생철학과 결부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대화체로 된 이 책을 회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플라톤의 ‘국가’ 연구’를 출간했는데 이 프로그램과 회원들 덕분입니다.”

‘플라톤 국가 연구’(2020)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책으로 ‘교양교육’(2016)과 명저로 꼽힌다. 내년에는 ‘명상록 연구’도 출간할 계획이다

12년차를 배출한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의 저력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고전이 주는 매력’과 ‘토론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읽는 책이 과거에만 머문다면 고전이라고 하겠지만 현대와 교유하기 때문에 ‘위대한 저서’라고 하지요. 인간의 본성은 기원전 8세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고전에서 이야기하는 그 시절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문제와 같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토론을 하는데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탐구방식’입니다. 1987년 ‘위대한 저서 재단’에서 아들러가 중심이 되어 만들었어요. 회원 모두 같은 분량을 읽어와 각자가 느끼는 감동이나 중요도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어느 때에는 격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잘 가르쳐도 12년을 오게 할 수는 없어요. 자기 탐구가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요일 오전반 회원들이 신득렬 원장과 토론하고 있다.  ⓒ권은주 기자
토요일 오전반 회원들이 신득렬 원장과 토론하고 있다. ⓒ권은주 기자

신 원장은 51권 중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먼저 꼽는다.

“플라톤은 조국의 패망과 계속되는 정치적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도 교육과 연구를 통해 후진을 양성하고 이상적인 국가의 청사진을 만들어 발표합니다. 아직까지도 실현되지 않고 있지만.... 그가 제시한 해답의 일부는 불완전하고 시의적절하지 않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는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행복과 관련한 책들은 주관적이며 행복이란 말을 너무 함부로 쓴다고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객관적인 행복관을 제시하며 행복을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생각해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이 봐도 저 사람 참 행복하다라고 할 때 비로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러한 궁극적 목표를 위해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 책에서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통합하는 사람을 우리는 교양인라고 부르는데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사람을 올림포스적 인간,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인생 문제는 전문분야 하나로 풀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도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을 철학자들에게 물어야하는데 요즘은 점집이나 명리학에 묻습니다. 가족과 친구, 지인들과 책을 읽고 좋은 삶, 바람직 한 삶이란 무엇인지 대화를 통해 정립해가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아져야 합니다. 전문가, 기술자, 기능인은 많이 양성되었지만 인생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또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구조는 허약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인문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양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이후에 무슨 일을 하던 교양교육이 가장 중요한 교육적 근간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성적위주, 전문가 양성에 집중적입니다. 직업전문교육이 실용적이지만 먼 안목으로 봤을 때 교양교육이 실제적이라는 것이지요. 시카고대학의 위대한 저서읽기 프로그램과 리버럴 아트 컬리지(Liberal Arts Colleges)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 신득렬 원장

1944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계명대와 성균관대에서 수학하고 1976년부터 계명대 교육학과에서 교육철학 교수로 재직하고 2009년 은퇴했다. 1995년 옥스퍼드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자격으로 연구생활을 했으며 91년 교양교육기관인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권위, 자율 그리고 교육』(1997),『교육사상사』(2000), 『위대한 대화』(2002/ 2003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현대교육철학』(2003),『행복의 철학』(2007), 『교양교육』(2016/ 2016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한국출판문화선업진흥원), 『플라톤의 ‘국가’연구』(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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