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 우먼 파이터’ 여성 댄서들. (왼쪽부터) 가비, 모니카, 리헤이, 효진초이, 허니제이, 노제, 아이키, 리정. 사진=CJENM 제공)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여성 댄서들. (왼쪽부터) 가비, 모니카, 리헤이, 효진초이, 허니제이, 노제, 아이키, 리정. 사진=CJENM 제공)

영화와 TV 같은 이야기 세계가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영화에서도 극을 이끄는 주인공은 항상 남성이었다. 반면 여성들은 주인공이라 칭해질지라도 남성 캐릭터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부수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대중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일말의 의문조차 갖지 않았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여성들의 이야기가 선보이며 의미 있는 행보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 성공에 대한 의구심이 미디어 업계 전반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성 중심 콘텐츠가 관심을 받기 시작하더니 올해엔 여성을 앞세운 콘텐츠들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무대의 배경이던 여성 댄서들
무대 중심으로 불러낸 ‘스우파’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의 중심에는 올 하반기를 뜨겁게 달구며 인기를 넘어 신드롬을 일으킨 <스트릿 우먼 파이터>(Mnet)가 있다. 무대의 배경이었던 여성 댄서들을 무대의 중심으로 불러내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오직 실력으로 자존심을 걸고 ‘센 언니들의 싸움’을 펼친 이들에 대한 감탄과 경의는 팬덤을 형성하며 이들을 2021년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스우파의 인기는 출연진들이 연이어 화제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화보를 찍을 뿐 만아니라, 또 다른 여성들이 주인공인 <스트릿 걸스 파이터>(Mnet)로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에는 티빙(Tving) 결제를 하게 만든 주범으로 불린 새라여자고등학교 전학생 추리반 5명의 미스터리 어드벤처 <여고추리반>이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출연진들이 의기투합해 사건의 단서를 맞춰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긴장과 몰입을 극대화시켰다. <여고추리반>의 높은 인기는 시즌2 제작의 밑거름이 됐다.

운동하는 여성들을 보여주는 <노는 언니>(E채널)와 <골 때리는 그녀들>(SBS)은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두 번째 시즌이 방영 중이다. 그동안 방송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 스포츠 선수들을 집중 조명하거나, 축구에 진심을 다하는 여성 방송인들의 모습은 여성과 스포츠라는, 그동안 잘 연결되지 않던 조합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워맨스가 필요해>(SBS)처럼 여성들이 함께 모였을 때 벌어지는 관계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현란한 액션을 펼친 ‘마이 네임’(넷플릭스) 한소희 배우. ⓒ넷플릭스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현란한 액션을 펼친 ‘마이 네임’(넷플릭스) 한소희 배우. ⓒ넷플릭스

돈 되는 콘텐츠로 떠오른 여성 서사
가부장제 규범 전복 콘텐츠 기대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여성 캐릭터의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랑하는 남성보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옷소매 붉은 끝동>(MBC)의 ‘성덕임’이나,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현란한 액션을 펼친 <마이 네임>(넷플릭스)의 ‘지우’, 술을 즐기는 여성들의 소소한 삶을 잘 녹여낸 <술꾼여자도시들>(티빙)의 주인공들은 이전부터 요구해왔던 주체적인 여성, 극의 중심을 이끄는 여성 캐릭터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2021년은 그동안 가끔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진 여성 중심 콘텐츠가 그 어느 해보다 두각을 보인 해였다. 이는 방송에서 불러주지 않아 잘리지 않을 자신들의 판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한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의 성공을 기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방송계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먹힐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이 나는 곳에 돈이 몰리는 콘텐츠 분야에서 여성 콘텐츠 수요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강남역 사건’과 ‘미투 운동’ 이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면서 여성의 이야기가 배제된 기존 콘텐츠에 반발하게 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성공적인 콘텐츠를 위해서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글로벌 콘텐츠를 지향하는 콘텐츠 업계가 세계적인 흐름인 여성 중심 콘텐츠 제작에 더욱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이전보다 많은 여성서사 콘텐츠가 등장한 2021년은 다양한 장르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하나의 트렌드로 남지 않도록 새해에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남성 중심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여성들의 다양한 삶과 가치관, 고민, 성장을 담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부장제 규범들을 전복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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