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과 함께한 가부장제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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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현자 솔론 국가 재정 위해 매춘 국영화

토마스 아퀴나스 '왕궁의 시궁창'이라 표현하기도

'매춘'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환락가 소호에서 실제 매춘부로 일했던 저자는 흔히 말하듯 매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면 매춘에 관한 남성의 글쓰기는 그에 버금가는 오래된 직업일 것이라 답한다.

엄밀히 말해 창녀라는 낙인이 억압의 한 형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여러 해 동안 고통과 좌절의 나날을 견뎌야 했던 저자는 그 편견의 근원이 가부장제의 전개에 있다는 의혹에 이 방대한 작업을 시작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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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헤타이라 혹은 코르티잔이 아프로디테를 위해 풀루트를 연주하고 있다. 루도비시 왕좌의 측면 부조. 기원전 470~460년.▶

선사, 고대, 중세, 근대, 현재로 이어지는 시대 구분은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매춘 여성의 등장과 그들을 둘러싼 시대 상황의 변화를 흥미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선사시대에는 여신과 창녀의 구분이 모호했다고 지적한다. 당시 고대 중동 문명의 여신인 이슈타르를 숭배하는 곳에서는 신성한 매춘이 성스러운 의식의 핵심이 되어 사원에 속한 매춘부-여성 사제들이 메소포타미아의 종교, 정치, 경제적 권력의 핵심에 있었을 만큼 지위가 높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원전 2000년경에 채록된 세계 최초의 시 중 하나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한 매춘부와 야만인의 교합을 통해 여신이 어떻게 인류를 야만 상태에서 끌어내리고 영감을 주었는지 알레고리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현자로 일컬어지는 솔론을 국가 재정을 위해 매춘을 국영화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당시 아테네 시민의 '착한' 아내와 '창녀'라는 이분법 속에서 국영 윤락가는 아테네 전역으로 확산됐다. 국영 윤락가 운영을 책임진 남성 관료가 등장했고, 남성 철학자들은 매춘 여성들을 “공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 국가와 개인 포주들이 나란히 태어나면서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매춘에 알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융성했던 로마 제국은 어땠을까. 당시 로마 제국에는 변방의 주둔지에 위치하는 성산업 노동자 집단으로 이른바 '종군 위안부'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 패망 이후 초기 교부들은 매춘부를 이른바 시궁창으로 간주했는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서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라며 매춘의 '필요악'을 역설했다.

한편 중세 서유럽 매춘은 종교적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시장이라는 새로운 조건 아래서 번성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지속적인 팽창과 인구 성장, 민중(특히 여성)의 빈곤화, 시장 경제 조건의 확산이 그 배경이다.

그런가 하면 근대 과학의 발달로 매춘 여성에 대한 새로운 관리가 생겨나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가난한 범죄 집단, 정신 질환자, 장애인과 같은 소외 집단에 창녀를 포함시켜 정책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보다 정밀하게 매춘부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롬브로소와 타르노프스키 등의 학자는 매춘부가 좁은 이마와 비정상적인 코뼈, 거대한 턱과 같이 미개한 신체적 특징을 보이며 그들의 두개골은 다른 사람의 두개골보다 작다는 주장을 폈다. 사회과학자들은 그들대로 매춘부들이 실제 인류보다 고통에 둔감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의 손, 혀, 코, 이마, 허벅지, 배, 가슴, 성기를 고문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발견들'은 창녀 낙인이 자리잡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 때부터 창녀 낙인은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의 과학적 근거 위에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된다.

저자는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창녀라는 단어에 담긴 경멸적인 의미를 벗겨내기 위해 창녀라는 단어와 매춘부라는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또한 창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때 여성을 '정숙한 여성'과 '행실 나쁜'여성으로 구별하는 이분법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 지적한다.

결국 저자는 실제 경험에 토대한 주장을 바탕으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서언을 덧붙인 뒤 성매매 여성들의 자발성을 옹호한다. 나아가 남성들과 '페미니스트 도덕주의자'들에게 매춘 여성들을 희생자로 규정하거나 도덕적인 기준으로 단죄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600페이지를 넘는 분량과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방대한 역사는 읽기 녹록치 않으나 저자의 애정이 담긴 설명과 매끄러운 번역이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니키 로버츠 지음·김지혜 옮김/책세상/25,000원.

임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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