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IMA Picks 2021’전
윤석남·홍승혜·이은새
현대미술 새 바람 일으킨 여성 작가 3인 한자리에

윤석남, 소리 없이 외치다 Crying Out in Silence, 1992–2009, Acrylic on wood, pastel, size variable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윤석남, 소리 없이 외치다 Crying Out in Silence, 1992–2009, Acrylic on wood, pastel, size variable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윤석남, 홍승혜, 이은새. 80대부터 30대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주목받는 여성 작가들을 만나보자.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이 2022년 2월 6일까지 여는 ‘IMA Picks 2021’ 전시다.

일민미술관의 ‘IMA Picks’는 국내외 예술 현장에서 지금 주목할 작가 셋을 선정해 개인전을 개최하고, 예술가가 우리 시대를 읽는 서로 다른 방식을 살피는 기획전이다. 올해는 남성 중심 미술계에서 때론 이단아로, 변방으로 취급받으면서도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해온 여성 작가들이 모였다. 일민미술관 측은 “세대를 초월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이들이 구사해 온 동시대의 감각을 공유”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은 2022년 2월 6일까지 ‘IMA Picks 2021’ 전시를 연다. ⓒ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은 2022년 2월 6일까지 ‘IMA Picks 2021’ 전시를 연다. ⓒ일민미술관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 윤석남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다. 이번 전시에선 일상 풍경을 그린 미공개 드로잉, 자화상과 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을 나무 틀에 그린 회화 작품 등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자연스러운 미의식과 생명력을 좇아 캔버스를 이탈한 2000년대 이후의 작품까지, 윤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윤 작가는 나이 마흔에 서양화로 미술에 입문해 1996년 여성 작가 최초로 이중섭미술상을, 201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어머니’, ‘모성’ 등 여성 주체를 화폭에 소환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유교적 여성상이 아니라, 여성의 강인함을 표상한다.

윤석남, 무제(시장풍경) Untitled (Market Scenery), 1986, Colored pencil on paper, 106.5×77cm, 77×106.5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윤석남, 무제(시장풍경) Untitled (Market Scenery), 1986, Colored pencil on paper, 106.5×77cm, 77×106.5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자화상’(1988년 작) 속 작가의 무표정하면서도 무언가 결심한 듯 부릅뜬 눈이 강렬하다. 그림 밑에는 “나는 이제 웅크린 짐승처럼 살진 않겠다”로 시작하는 담대한 선언이 적혔다.

일흔 살에 한국화를 배운 윤 작가는 팔순이 넘은 요즘 초상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전신 채색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품 활동에 도움을 준 일본인 친구들, 고카츠 레이코(큐레이터), 시노부 이케다(콜렉터), 김혜신(재일교포, 통역가)씨의 초상 작품이다. 국적을 초월한 우정, 연대 의지를 담았다. 또 한지를 접고 오려 만든 작품들을 벽면에 붙이고 초록빛 구슬을 바닥에 깔아 만든 ‘그린룸’, 1982년 첫 개인전에 출품한 어머니 초상과 초기 유화 작업들도 찬찬히 감상할 만하다.

윤석남, 고카츠 레이코 Kokatsu Reiko, 2021, Colors on Hanji, 210x94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윤석남, 고카츠 레이코 Kokatsu Reiko, 2021, Colors on Hanji, 210x94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이 2022년 2월 6일까지 여는 ‘IMA Picks 2021’ 전시 중 이은새 작가의 작품을 모은 1전시실 전경.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이 2022년 2월 6일까지 여는 ‘IMA Picks 2021’ 전시 중 이은새 작가의 작품을 모은 1전시실 전경.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이은새 작가는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신진작가 기획전 ‘젊은모색’에 선정되는 등 요즘 꽤 주목받는 작가다. 나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상에 반기를 들며 어쩐지 광기 어린 여성의 모습, 여성 신체를 강조하는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에선 몸의 움직임을 통해 ‘보는 방식’을 성찰하는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작은 모두 신작이다. 단순한 형태, 대비가 강렬한 색채, 역동적인 붓질, 첫눈엔 기괴하나 다시 보면 예리하고 유머러스한 회화 작품이 눈에 띈다. 실종된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SNS 게시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비되는 ‘밈(meme)’ 등 작가가 일상에서 접한 사건이나 이미지를 재치 있고 자유롭게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전시 제목은 ‘디어 마이 헤잍-엔젤-갓(Dear my hate-angel-god)’. “너무 좋으면서도 싫은 감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은새, 더블 Double, 2021, acrylic and oil on canvas, 227.3×181.8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이은새, 더블 Double, 2021, acrylic and oil on canvas, 227.3×181.8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이은새, 뒤집은 채로 감자칩 먹는 여자 Reversed Woman Eating Chips, 2021, Acrylic and oil on canvas, 227.3×181.8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이은새, 뒤집은 채로 감자칩 먹는 여자 Reversed Woman Eating Chips, 2021, Acrylic and oil on canvas, 227.3×181.8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전시장 곳곳에 모서리가 거친 은빛 철판이 서 있다. 한쪽 벽면엔 관람객이 반사돼 보이는 PET 필름을 붙였다. 관람객의 시야를 가리기도, 시선을 붙잡기도 한다. 이것도 ‘그리기’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시선의 움직임을 다른 몸의 사용으로 덮고 지우고 변형하기 위해 마련된 회화적 장치”다. 이 작가는 “물감을 칠하는 일로 무언가를 드러내는, 때로는 상쇄되기도 전복되기도 오히려 명료해지기도 하는, 대상과 이미지 사이에서 양쪽 모두를 비추거나 반사하거나 공격하거나 뒤섞는, 후회하거나 창피해하는, 계속 뒤엉키는, 왜 그림을 그리는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 생각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이 2022년 2월 6일까지 여는 ‘IMA Picks 2021’ 전시 1전시실 전경.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이 2022년 2월 6일까지 여는 ‘IMA Picks 2021’ 전시 중 이은새 작가의 작품을 모은 1전시실 전경.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이은새 작가는 전시장에 설치한 철판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시선의 움직임을 다른 몸의 사용으로 덮고 지우고 변형하기 위해 마련된 회화적 장치”라고 설명한다.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이은새 작가는 전시장에 설치한 철판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시선의 움직임을 다른 몸의 사용으로 덮고 지우고 변형하기 위해 마련된 회화적 장치”라고 설명한다.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2전시실에선 홍승혜 작가가 창조한 ‘픽셀의 무대’가 펼쳐진다. 픽셀이란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 작고 삐죽삐죽한 사각형이다. 홍 작가는 1997년부터 이 픽셀을 움직이고 쌓아 올려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였다. 자신의 작품이 공간 혹은 세계의 일부로 녹아들기를 바란다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이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에선 회화뿐 아니라 입체 구조물, 바닥과 벽, 악보, 가구와 포스터, 영상, 원형 무대까지 등장한다. 사람 형상의 픽토그램을 천장에 매단 ‘공중 무도회’는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회화처럼, 혹은 조각 작품처럼 보인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이 2022년 2월 6일까지 여는 ‘IMA Picks 2021’ 전시 중 홍승혜 작가의 작품을 모은 2전시실 전경.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이 2022년 2월 6일까지 여는 ‘IMA Picks 2021’ 전시 중 홍승혜 작가의 작품을 모은 2전시실 전경.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작가가 말하는 무대는 “예기치 못한 예술적 사건과 삶의 시간이 뒤엉키는 현재의 장소”다. 원형 무대에선 협업 작가들의 인형극이 펼쳐진다. 무대 위에 설치된 조각 4점은 홍 작가의 제자이자 동료인 조각가 4명이 빚은 자아 혹은 분신이다. 퍼포먼스도 준비했다. 자신을 각각 ‘예술가’, ‘성우’, ‘관객’, ‘공주’, ‘연인’으로 정체화한 퍼포머 5인이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일종의 움직이는 조각으로 분한다. 

홍승혜, 공중무도회 Aerial Dance, 2020-2021, Polyurethane on plywood, 144x117.6x120cm, 220.8x117.6x120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홍승혜, 공중무도회 Aerial Dance, 2020-2021, Polyurethane on plywood, 144x117.6x120cm, 220.8x117.6x120cm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IMA Picks 2021’ 전시 중 홍승혜 작가의 작품을 모은 2전시실 ‘무대에 관하여’.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IMA Picks 2021’ 전시 중 홍승혜 작가의 작품을 모은 2전시실 ‘무대에 관하여’. ⓒ일민미술관/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

전시 기간 중 인문학 프로그램 ‘역자후기’, 작가와 작품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도 열린다. 이 작가, 홍 작가는 ‘아티스트 토크’에서 관객들과 만나 작품 제작 과정과 의미를 나눌 예정이다. 부대행사 일정은 코로나19 상황 등에 따라 조정될 수 있고, 추후 일민미술관 공식 사이트 및 공식 SNS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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