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군사우편 약속 어김없이 지켜
솔직함과 다짐, 상대 존중, 배려로 소통
추천곡으로 폭넓은 음악스펙트럼 입증
설레임 동반 믿음과 기대, 지지 얻어내

 

 

가수 김호중은 현재 공익요원으로 대체복무 중이다. 가수로서 방송 출연은 물론 다른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지난해 9월 10일 소집된 후 1년 3개월동안 김호중은 서울 서초구 금요음악회(2회)와 장애인요리대회 특별게스트로 초대된 것 외엔 무대에 서지 못했다. 유튜브 활동도 중단 상태다.

그런데도 김호중의 인기는 여전하다. 소집 당시 8만3000명이던 팬카페 회원은 12월 9일 현재 11만7400명에 육박한다. 팬이 줄기는커녕 3만4000여명이나 증가한 셈이다. 뿐이랴. 팬들의 끊임없는 응원과 스트리밍으로 멜론과 지니를 비롯한 음원 포털사이트의 가수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잠시만 안 보여도 잊혀지기 십상인 연예계에서 유독 현역 못지 않게 뚜렷한 존재감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일부에선 김호중 팬덤(아리스)의 남다른 열성과 충성도를 꼽는다. 아리스들은 정규앨범 출시 후 단 한번의 무대도 갖지 못한 채 소집된 김호중을 위해 ‘만개’ ‘우산이 없어요’ ‘나만의 길’ 등 정규앨범 수록곡과 '위대한 사랑' '페데리코의 탄식'을 비롯한 성악곡 스트리밍에 온정성을 다한다. 밤낮은 물론 휴일도 없다. 휴대폰과 PC를 동시에 켜놓는 건 기본이요 심지어 한 사람이 두세 개의 공폰까지 돌린다는 마당이다.

스트리밍에만 정성을 쏟는 것도 아니다.  김호중의 모교인 김천예고에 그랜드피아노를 기부한 건 물론 지역 혹은 그룹별로 곳곳에 현금과 물품을 기부하고, 김호중의 자취를 찾아 온·오프라인을 헤맨다. 김호중 팬덤의 이런 열정으로 ‘김호중 소리길’을 조성한 김천시는 때 아닌 관광 호황을 누린다고 할 정도다.

이처럼 뜨거운 응원과 변치 않는 지지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팬들의 얘기는 한결같다. 첫 번째는 뛰어난 노래 실력이다. 타고난 성량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특유의 목소리와 맑고 시원한 고음, 성악 전공자다운 정확한 발성과 긴 호흡, 뛰어난 곡 해석과 풍부한 감성까지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입을 모은다. 두 번째는 김호중의 성품이다.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면서도 복지시설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지인의 행사를 챙기는 등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세번째는 김호중의 편지다. 김호중은 대체 복무를 시작한 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팬카페에 편지를 쓴다. 시간은 달라도 잊거나 빠트리는 적은 없다. 팬들에 대한 김호중의 호칭은 ‘식구님들’이다. 호칭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식구들에게 쓰는 듯한 편지를 올린다.

 

 

시작은 자기 소식이다. ‘운동도 하고 나름 알차게 하루를 보냈다.’ ‘추석 연휴에 맛난 음식도 먹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면서 푹 쉬었다.’ ‘댓글을 읽었다. 말씀해주신 대로 해보려고 노력하고, 생각 나는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말씀드리겠다.’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3kg 쪘다.’ ‘등산 갔다가 전화기를 떨어뜨렸는데 얘가 맛이 왔다 갔다 한다’ 등.

또 무슨 얘기든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초저녁에 잠드는 바람에 편지가 늦었다.’ 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그냥 올리곤 ‘모자이크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하는 식이다. 그런 다음엔 팬들을 챙긴다. ‘날씨가 추우니 식사 잘 챙겨 하시고 따뜻한 차도 많이 드세요.’ 옷(잠바)을 단디 입으세요,’ ‘이불을 잘 덮고 주무세요’ 등.

감사 인사 또한 잊지 않는다. ‘식구님들 덕에 정말 행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다짐과 각오를 전한다. ‘소집 해제 후 우리가 함께 더 좋은 곳에서 웃으며 볼 수 있는 그날을 열심히 만들어 보겠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노래를 들려 주겠다.’ ‘언젠가 모두 함께 모여 잔치하자.’ ‘내일부터 또 으쌰으쌰 하자구요.’ ‘우리 힘 내며 살아요.’

길지 않은 내용 속에 편지를 받는 사람이 가장 궁금해 할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받는 사람의 마음과 건강을 챙기고, 나아가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도록 한다. 또 있다. 김호중은 매주 추천곡을 올리거나 마음에 드는 시를 올린다. 음악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다. 동요부터 가요, 팝, 국내외 가곡, 오페라 아리아, 관현악이나 피아노곡까지.

선곡은 그날의 편지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향수’의 가수 이동원이 세상을 떠났을 땐 그가 부른 ‘이별 노래’를 가사와 함께 띄워 추모한다. 시를 고르는 눈도 탁월하다. 그리운 마음을 전할 때는 정지용의 ‘호수’(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12월에 들어선 반칠환의 ‘새해 첫 기적’을 가져와 팬들을 놀래킨다.

그의 편지가 팬들에게 무한한 기쁨이자 설렘이 되는 이유다. 김호중 팬덤은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가수가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안도한다.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보며 하루하루 성장하는 가수에게 기대를 걸고, ‘잘 지내라’는 얘기에 들뜨고, ‘고맙다, 함께 가자’는 말에 삶의 희망과 목표를 찾는다. 추천곡을 들으며 옛추억을 떠올리거나 새 노래를 배우고, 클래식을 들으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다.

콘서트는 물론 방송에서도 볼 수 없는 가수를 기다리면서 스트리밍하고 투표하고 답장을 쓰는 열정, 팬카페 회원 수를 늘리려 삼지사방 홍보하고 ‘김호중과 함께 하는 아리스’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은 이처럼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멈추지 않는 가수에 대한 믿음과 사랑, 고마움, 늘 곁에서 내편이 되줄 거라는 기대와 희망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소통이란 이런 것이다. 무조건 ‘나를 믿고 따르라’가 아니라 ‘나는 이렇다’고 고백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면서, 두 손을 맞잡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알파요 오메가다. 소통의 사전적 뜻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음’이다. 뜻이 통하자면 솔직함과 진정성, 사랑과 배려, 거리와 차이(나이, 세대, 직업, 선호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투명함과 존중, 방향 제시가 있고, 무엇보다 희망이 동반돼야 한다,

선거의 계절이다. 100일이 채 안남은 대통령선거와 이어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와 예비후보들 할 것 없이 ‘내가 적임자다. 나를 믿고 지지해달라’고 외친다. 선거 비용의 80%가 홍보비라는 얘기도 나온다. 홍보의 전제는 소통이고, 소통의 근간은 믿음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말 뒤집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 마음이 통하기를 바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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