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어린이 인권 대책

최근 초등생 피살 사건 등 어린이 대상 강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민생치안확립을 위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미아·실종 사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경찰, 교육 당국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아·실종 등 당장의 이슈와 관련된 미봉책 마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어린이 인권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본지는 어린이 대상 폭력과 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한 대책 마련 좌담회를 열었다.

● 장 소 여성신문사 회의실

● 날 짜 2003년 2월 24일

● 참석자 김영희 청와대 어린이 안전추진점검단 위원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이명숙 변호사

               이정희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소장

               이호균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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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최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유괴하고 살인하는가 하면 부모가 자기 자식을 내다버리고 살해하는 일마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정희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중 출산율이 가장 낮고, 해외입양이 가장 많고, 아동 상해사고 사망률이 가장 높습니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문제는 우리 어른들, 특히 여성들의 몫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는 아이들을 국가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아이를 잃어버리면 찾을 때까지 하루 종일 방송을 통해 알려서 유괴 등 범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도록 하고 있지요.

신의진 : 반면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납치되고 심지어 죽어도 아무 말이 없어요. 외국 같으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나올 일인데도 말입니다.

아이를 버리는 것 범죄로 인식해야

이명숙 : 잇단 범죄로 납치되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지만 이들보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에요.

김영희 : 사실 성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어린이 성폭력 피해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시아동복지센터의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것이 아이들에겐 더 큰 폭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호균 : 아동에 대한 학대는 신체적, 정서적, 성학대, 방임 등으로 유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외견상 증거가 남는 신체나 성 학대는 그나마 발견하기 쉬워요. 최근에는 방임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요. 학대 부모 중 방임 부모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고 아이를 버리는 것 역시 극단적인 방임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의진 : IMF 이후 신용불량자 등이 급증하면서 경제적 능력의 부재나 가정 파탄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요.

김영희 : 경제적 능력이 안 된다든지, 폭력을 행사하다 아이를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들이 돌아갈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부모나 연고자를 찾아 돌려보내는 것에만 급급하는 것은 안된다고 봅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울 능력과 자격이 없다면 오히려 보호시설에서 아이를 머물게 하고 부모에게 돈을 내게 한다든지 하는 제도를 갖춰야 해요.

이명숙 : 부모를 찾아주는 것은 대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요. 아이들이 보호받고 살 수 있는지를 점검하고 보호시설로 보내거나 수양부모에 입양하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학대했을 경우 친권 제한이나 박탈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법 개정과 이를 위한 소송 지원, 일시적 보호를 위한 재정적 뒷받침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호균 : 유럽에서는 아이를 버린 부모를 끝까지 찾아내 부모의 수입에서 양육권을 구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미국에는 양육 수당을 징수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고용주에게 통보해 수입의 일부를 떼어서 보내도록 하고 부모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구금하도록 하는 강한 시스템입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와 이혼 가정의 부모에 대한 양육비 징수 시스템이 맞물려 함께 도입될 수 있을 겁니다.

가정폭력, 학원폭력, 성폭력 등 폭력 무방비

이호균 : 최근 방송에서 가출 청소년 문제를 다룬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가출 아이들이 연간 1만명이 넘고 이들 중 70%는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들입니다.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이 10만인지, 100만인지 실태조사도 안 되고 있어요.

문제는 폭력을 당한 아이들의 회복을 위한 치료기관이 전무한 것입니다. 폭력의 후유증으로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야기하기 때문에 가정위탁을 보내봐야 다시 돌아오고 아이들 역시 또 상처를 받게 되는 거죠. 언제까지고 정신병원에 아이를 놔둘 수도 없고 몇 개 안되는 센터와 쉼터에서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김영희 : 학원폭력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다수의 아이들이 한 아이를 집단 폭행했는데도 드러나지 않고 덮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아는 한 아이는 몇 차례 성형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가해 아이들이 다수이고 집안도 부유해서 오히려 피해 아이가 문제아로 취급되고 있었어요.

신의진 : 98년부터 성폭력, 학원폭력 등 문제로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조차 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해요. 또래 학생들은 물론 일부 교사들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사회에서 학교는 관리나 제재가 안 되고 책임지는 곳이 없는 무중력 상태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호균 : UN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한국 학교와 사회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정책과 법안을 수립하도록 권고했을 정도죠. 이명숙 체벌을 위한 막대기 규정까지 만든 나라니까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가 같은 학년 여자 아이를 성폭행 했는데도 쉬쉬하고 넘어갈 뿐이에요. 14세 미만 아이들은 형사 미성년자로 처벌을 받지 않지만 사실 더 어린 아이들에 의한 범죄도 일어나는 게 현실이에요.

형사처벌은 아니어도 최소한 상담을 받을수 있게 보호처분 제도를 도입해야 해요. 폭력이 범죄행위이고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학교나 가정교육을 통해 분명히 가르쳐야 해요.

이호균 : 맞습니다. 자라는 아이들이 그럴 수 있지 하는 태도로 관대하게 지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신의진 :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루트가 없습니다. 유럽보다 복지가 못한 미국에서도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간호사가 주 1~2회 집을 방문하고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바로 신고를 하는 등 조치를 취해요.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교사가 학생들을 살펴 학대 등 문제가 느껴지면 지역 복지사에 알리고 바로 조서를 꾸며 조사를 시작하죠.

학원폭력의 경우도 엄격히 금지하고 미는 것도 폭력이라며 공중교육을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법 옆에는 의료가 있어 법적 조치와 의료 지원이 동시에 진행돼요. 지역마다 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고 고급 의료진이 투입돼 있죠.

이명숙 : 어린이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광범위합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어 장기적 안목으로 교육과 홍보를 통해 바꿔나가야 해요. 우선은 가정폭력, 학원폭력, 성폭력 등 심각한 아동학대만이라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아동학대를 제대로 신고하도록 하고 제대로 형사처벌하고 보호받도록 해야죠. 현재 어린이에 대한 폭력의 경우, 형이 너무 약한 것도 문제구요.

제도, 의식 변화 총괄할 기구 마련해야

김영희 : 아이들에 대한 폭력의 실태와 이를 지원하는 현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각 분야의 문제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의진 바뀌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대표적으로 법원을 들 수 있는데 어린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판결을 내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또 의료적인 자문을 구하는 방법도 문제예요.

증인으로 소환하면서 오지 않을 경우 50만원 벌금을 내야 하고 차도 가져오지 말라는 통보를 일방적으로 보내는데 누가 관여하고 싶어하겠어요. 검찰이나 법원과 의사집단이 만나서 한 번 이야기를 하게 했으면 할 정도예요.

이명숙 : 사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되는 일인데 그런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고,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의사들이 법원에 한두 번 오고는 하지 않으려고 하죠.

김영희 : 서로 책임을 미루며 비난하고 있는 현실이죠. 수사 안 하는 경찰을 탓하고 진단서 안 끊어주는 병원을 탓하고 일방적인 법원을 탓하고 무책임한 학교를 탓하고 하면서요. 법원, 검찰, 경찰, 병원, 학교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정작 정부의 책임인데 말이에요.

이호균 : 정말 전체적으로 아동에 대한 폭력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만들어져야 해요. 그동안 각각 개별 접촉을 해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한 자리에 모여야 해요. 얼마 전에는 노동부 산하의 한 기관에서 학교 안전교육을 맡고 있다며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 등에 대한 안전교육 교재의 집필과 강의를 부탁해 왔어요. 일단 교육의 장이 마련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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