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문화지원상 수상자 인터뷰]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2018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수상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단원들. ⓒ여성신문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단원들. ⓒ여성신문

 

“제 월급을 직접 받을 수 있나요?” “엄마 통장에 넣어주고 있잖아.” “아니요. 제 통장으로요.”

“너, 통장 없잖아. 통장부터 만들어.”

서른 살을 앞둔 발달장애 여성 영진 씨는 생애 처음으로 통장을 만들기에 나선다. 필요한 서류를 마련하기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우연히 은행에서 만난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통장을 만들지만 사고를 우려한 사회복지사는 엄마에게 알리고, 결국 영진 씨는 어렵게 만든 통장을 엄마에게 압수당한다.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공연 ‘불만폭주 라디오’ 중 한 에피소드다. ‘춤추는허리’는 장애여성이 겪는 삶과 현실을 ‘몸’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만든 극단이다. 이들의 대표작인 <불만폭주 라디오>는 장애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갈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단원들이 경험한 실제 이야기며, 주인공 배우들도 모두 장애인들이다.

춤추는허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강동구 천호동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을 찾아 춤추는허리 이진희 활동가와 진성선 활동가를 만났다. 이진희 활동가는 대학 때 장애인 운동에 앞장서다 춤추는허리를 만든 창단 멤버다. 진성선 씨는 춤추는허리 담당 활동가이자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 춤추는허리는 요즘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나요?

이진희 : 교육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희가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권에 대한 상황을 연극으로 제시하고, 참여자들과 함께 연극의 이야기를 변화시키는 참여형 연극이에요. 공연장이 아닌, 교육이 필요한 현장에 저희가 직접 찾아가서 하는 공연입니다.

진성선 : 최근 장애인활동지원사업 활동 지원사 보수교육에서 저희를 초대해주셨어요.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간에 ‘서로 존중하는 관계 맺기’를 주제로 연극으로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그 내용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 교육 연극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이진희 : 비장애인 여성이 장애인활동지원사로 활동하는데, 담당 장애인이 전 활동지원사 뒷담화를 해요. 그걸 듣는 활동지원사는 복잡한 심정이 들죠. ‘나에 대해서도 저렇게 평가할까?’ 반대로,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에게 전에 만났던 장애인에 대해 “까다로웠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장애인은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인가?’하는 고민에 빠지죠. 이 상황을 연극으로 보고난 뒤 토론을 합니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간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돌봄은 어떻게 주고받아야 될까?’, ‘갈등이 있을 때면 어떻게 하면 좋지?’ 등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하는 거죠. 또 다른 에피소드는 활동지원사가 어쩌다 장애인의 손톱을 삐뚤게 깎아준 상황이에요. 여기에 대해 장애인은 “손톱을 삐뚤게 깎으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고, 활동지원사는 “왜 저렇게 까다로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장애 특성 때문에 손의 근육을 자신이 컨트롤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손톱을 날카로우면 손톱에 얼굴이 긁힌대요. 그런데 그 사정을 활동지원사는 잘 모르는 거죠. 그렇게 연극을 통해 서로의 특성들을 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진성선 : 일상에서 장애여성이 겪는 에피소드들로 대본을 만들고, 교육 연극의 참여자에 따라서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정하고 있어요.

- 겪어 보지 않으면 전혀 모를 이야기네요. 춤추는허리의 공연은 모두 창작극인데요.

진성선 : 저희 단원들이 모두 모여서 만들어요. 창작 워크숍을 하면서 우리 일상에서 주로 경험하는 일들을 서로 나누어요. 자신의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도 하면서 다른 소수자들의 경험과 어떻게 공유될지 고민하면서 대본의 아이디어나 내용을 완성해요. 이런 식으로 주제나 에피소드가 정해지면, 이걸 바탕으로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온 극작가와 대본화하는 작업을 해요. 이 과정에서 워크숍을 통해 배우들과 즉흥으로 장면 만들기를 해보고 대사와 장면을 구성합니다.

- 비장애인의 연습과 공연에 비해 더 신경 쓰는 점은 무엇인가요?

이진희 : 연극적인 완성도보다, 이 장면에서 뭘 표현하고 싶은지, 내 장애를 어떻게 드러내고 싶은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그리고 장애가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서로 호흡을 맞추고 싶은지에 많이 집중해요. 우리 스스로가 무대 위에서 가장 자기답게, 두려움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만드는 걸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거든요. 그게 저희의 지향점이기도 하죠.

진성선 : ‘불만폭주 라디오’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초기에는 “어떻게 이렇게 무대에 서냐, 고생한다”, “힘들지 않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요즘은 공연을 보고 자기 경험과 연결되는 부분을 많이 리뷰해주세요. 그래서 저희가 공연을 창작할 때도 피해자의 위치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교차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장애 여성들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갈등이나 복잡한 감정을 들게 하는 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고민들과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진희 : 관객의 반응이 “얼마나 고생해, 불쌍하다”에서 “이런 이야기는 우리의 문제야”, “공연을 보고 나의 독립을 고민하게 됐어”로 바뀔 때, 더 이상 우리가 무대 위에서 대상화되지 않고, 동정받는 대상이 아니라, 진짜 동료들을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단원들. ⓒ여성신문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단원들. ⓒ여성신문

극단 ‘춤추는허리’는 2003년 장애여성 인권 단체 장애여성공감의 소모임으로 만들어졌다. ‘춤추는허리’라는 이름은 그들의 몸 그대로 휘어진 허리, 손 등을 보여주자는 의도에서 붙여졌다. 지체장애여성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 다양한 장애 여성과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 ‘ 갑자기’, ‘여기에 있긴 있는데 여기 있는 게 안 보여?’, ‘장애여성, 그 예술혼을 펼쳐라’, ‘빛나는’, 연극 ‘거북이 라디오’ 시리즈 등을 무대에 올려왔다. 2018년에는 서울 비엔날레에서 전시와 퍼포먼스로 참석하기도 했다.

- 춤추는허리가 창단 20년이 다 돼 갑니다.

이진희 : 장애 여성의 삶과 인권을 예술로 보여주기 위해서 창단했어요. 전시되는 몸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주체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가집니다. 차별받고 억압받는 몸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전시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의 구조에 맞서서 내가 내 몸을 주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도 던지고 힘의 관계를 흔들고 싶었어요. 물론 그걸 보이는 장애 여성은 그 자체로 엄청난 투쟁이지만, 변화와 성장의 과정이기도 해요. 사람들은 이야기에 관심에 많고, 시대를 보여주는 힘이 연극 안에 있고 생각해요.

- ‘연극’이라는 매체는 장애 여성에게 어떤 점에서 유리한가요?

이진희 : 지금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돼서 제도권 교육을 받고 있지만, 10년 전에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많았어요. 물론 지금도 어려움이 많아요. 특수학교에 다니더라도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너무 많거든요. 장애인을 열심히 공부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게다가 장애인들은 읽고 쓸 기회뿐 아니라, 말할 기회도 많지 않아요. 그러니 배웠던 것도 잊고, 강제 퇴보를 당해요. 한글이 어려운 분들도 많죠. 장애 여성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경험이나 주장을 글로 써야 하는데, 글 쓰는 것에 대한 장벽이 좀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 장벽을 어떻게 낮춰볼까’ 생각하다가 연극을 통해서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도전해 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 창단 목적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나요?

이진희 : 그런 건 없어요. 성공을 목표로 시작한 게 아니라, 매 순간 싸우거나 개입해야 하거 나 도전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그냥 찾아서 할 뿐이죠. 얼마나 이뤘는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사회적 기준에 비춰 봐도, 저희가 성공한 집단은 아니잖아요. 계속 나다울 수 있는 투쟁, 차별과 싸우는 행동을 하면서, 같이 싸우는 동료들과 계속 함께하고 있으니까 목표를 지켜가고 있는 거겠죠. “불구의 존재들과 함께 계속 이런 활동을 하고 싶어. 계속 저항하고 싶어. 변하지 않고 하고 싶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할 거야”라는 것을 계속 드러낼 뿐이죠. 그럼 잘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 극단을 20년 동안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합니다.

이진희 : ‘이거 아니면 할 게 없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우리가 아직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죠. 20년 동안 천천히 축적해놓은 것들이 있는데, 그 시간에 비하면 우리가 느끼고 쌓였다고 생각하는 건 찰나 같은 거죠. 그 찰나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과 관계, 우리가 함께 만드는 작업, 예술 안에 나라는 존재, 이 세계에 대한 인식, 동료로서의 지지 등이 두텁게 있어서 그 찰나에 서로 의지하면서 만들었던 공연,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서 계속하게 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해요. 매해 더 잘하고 싶은 장애 여성의 야망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게 세속적인 야망이나 야심이라기보다는 작은 것일지라도 주체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의지에요. 그 의지가 모여서 그걸로 다음 해로 가는 것 같아요.

진성선 : 지금도 계속 실패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다고 해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오늘 그만둬야 하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붙잡아주는 건 동료들이에요. 장애 여성으로 살면서 눈치 보고 위축되는 경험들이 많았다면, 극단에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무대에서 역할을 해가는 것뿐 아니라 일상에서 변화하는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20년 동안 관객의 인식 변화도 느끼시나요?

이진희 : 조금씩 달라지죠. 달라져야 하고요. 여러 사람들이 같이 노력한 결과지요. 계속 차별을 말하고 연대하면서요. 더 많은 사람들이 차별을 말하고 광장에 나와서 싸우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활동가들은 주로 어떤 역할을 맡나요?

진성선 : 춤추는허리는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공동작업으로 공연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활동가들은 배우, 스태프 등 다양한 역할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단원들. ⓒ여성신문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단원들. ⓒ여성신문

춤추는허리는 장애여성의 삶과 인권을 예술로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는 꾸준한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8년 성평등문화상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을 받았고, ‘문화 여성주의 기획’을 주제로 한 ‘2019 문화다움 기획상131’을 문화기획달과 공동수상했다.

- 성평등문화상은 춤추는허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요.

진성선 : 춤추는허리는 18년 동안 정기공연 뿐 아니라 교육, 퍼포먼스 등을 통해 다양한 공간에서 활동해왔습니다. 장애와 여성으로 분리되지 않고 교차된 경험들을 말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기준을 장애여성의 몸, 언어로 다시 써가는 과정은 기준자체를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평등문화상은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고민해야 하고, 누구와 활동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해 온 것들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의미가 큰 거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안전한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구조에서 성평등이 선언이 아니라 일상의 문화들을 어떻게 바꿔 갈지 계속 열심히 활동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진희 : 남성, 여성 두 개의 성만이 아니라, 다른 몸을 가진 수많은 존재들이 성평등 안에서 배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죠. 성평등에서 누가 배제당하고 있는지, 남성과 여성만을 이야기하는 ‘양성평등’이 얼마나 차별적인 것들을 지지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장애 여성들에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어떤 건가요?

이진희 : 우리가 “이게 더 어렵다, 더 힘들다” 는 표현이 아니라, “우리는 배제돼 있다”, “보편이라는 말 안에 우리의 경험이 누락됐다”고 표현해요. 이런 것들을 재구성하지 않는 이상 배제되는 사람들은 계속 생긴다고 봐요. 모든 주제가 장애 여성의 관점으로 재해석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장애 여성이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할 때, 보편적 성차별뿐 아니라 또 어떤 고유성이 있는가?’ 물어야겠지요. 장애 여성은 낮은 권력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장애 여성의 주거권 문제에서는 왜 안전이라는 감각이 중요한가? 왜 주거권의 문제에 있어서 성폭력의 문제나 돌봄의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가?’ 장애 여성이 주거 조건을 고민할 때 비장애인과 달리 활동지원사가 집에 같이 있어야 하는데,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권리들이 재구성돼야 해요.

그러나 사회는 불평등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그 차이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배제를 확대합니다. 예를 들면 이주민인지, 트랜스젠더인지, 그 차이를 통해서 배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들을 계속 만들어내거든요. 그런 것을 거부하면서 배제된 사람들의 목소리로 권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 현재 하는 작업과 목표가 무엇인가요.

진성선 : 춤추는허리의 방식이나 우리가 지향하는 것들을 일상에서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진짜 치열해야 가능하더라고요. 춤추는허리가 장애 여성의 어떤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예민함을 잃지 않고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변화를 만들 거라고 믿어 왔어요. 그래서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이진희 : 춤추는허리가 올해는 많이 흔들렸으면 좋겠어요. 많이 흔들리면서, 우리가 어디까지 고민할 수 있는지 한 번 밀어 올려봤으면 좋겠어요. 공연 하나를 완성하는 것보다, 뭘 하고 싶은지 많이 탐구하고 싶어요. 학교나 기관에서 하는 교육 연극은 많이 했는데, 내년에는 공연장에서 즉흥성이 있는 형태의 토론 연극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질문을 하면서 관객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관객이 무대에 나와서 연극에 참여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희 배우들이 하고 싶은 것을 그 안에서 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도 놀라고 사람들도 놀라는 그런 걸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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