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외래 환자 동선 분리하고
1인당 병실공간 대폭 확장
환자에게 새 삶 주는 것이야말로
병원의 최대 사회공헌이라 믿어

정훈재 부민병원 원장 ⓒ홍수형 기자
정훈재 부민병원 원장 ⓒ홍수형 기자

“환자가 편안한 병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훈재(41) 서울부민병원 원장의 목표는 뚜렷했다. 두렵고 무서운 병원, 괜스레 주눅 드는 병원이 아니라 믿음직하고 마음이 놓이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서울부민(富民)병원의 캐치프레이즈를 ‘건강한 사람이 부자입니다’로 정하고, 종합병원 특유의 딱딱하고 위압적인 느낌을 없애려 애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정 원장은 척추관절 전문의이자 부산 부민병원 설립자인 정흥태 이사장의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제대 의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전공은 족부관절, 무지외반증, 족저근막염, 발목관절염 등 발과 발목 관련 질환이다. 서울부민병원 진료과장과 부장을 거쳐 2014년 원장으로 취임했다.

서울부민병원은 척추관절 전문병원이자 종합병원으로 2011년 개원했다. 1985년 부산에서 문을 연 부민의료원(인당의료재단, 이사장 정흥태, 의료원장 정진엽) 산하 4개 병원 중 한 곳이다. 개원 당시 병상은 298개. 취임 당시 300병상 규모의 병원 원장으로는 정 원장이 최연소였다. 위계 질서가 중시되는 의료 사회에서 파격적인 일이었다.

“처음엔 부담이 컸습니다. 신망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환자 최우선’이라는 이사장님의 철학 실천에 앞장서고, 직급에 상관 없이 후배 입장에서 소통하려 노력하니 점차 주위의 인식이 달라지더군요.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라 좋은 의료진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도 도움이 된 듯합니다.”

부민병원 재활치료실 내부 ⓒ홍수형 기자
부민병원 재활치료실 내부 ⓒ홍수형 기자

금융· 의료계에선 사고 나면 안돼

정 원장은 ‘환자 중심 병원’이라는 목표를 차근차근 실천하고 있다. 병원 운영은 물론 증축과 리노베이션의 우선순위 모두 환자의 안전과 스트레스 감소에 뒀다. 병원 리노베이션의 첫 번째 기준은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의 동선 분리였다. 금융과 의료계에선 사건사고가 나면 안되는 만큼 하드웨어 정비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애썼습니다. 1~2층은 특히 환자들의 프라이버시 확보와 심리적 안정감 확보에 중점을 뒀지요. 2인실을 일반병원 4인실 규모로 늘리는 등 환자 1인당 서비스면적을 확대했어요. 다인실도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도록 넓혔구요. 검사나 처치를 받는 공간도 분리했습니다.” 정 원장은 또 병원이 아니라 집 같았으면 하는 마음에 병원 곳곳에 이강소 씨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을 걸고 입원실 주위에 실내정원도 만들었다.

정 원장은 또 의료 본질에 대한 투자에 집중했다. 수술실을 늘리고, 감염예방용 최첨단시설을 갖추고, 로봇 장비를 도입했다. 병원 옆에 있던 미래의학센터를 사들여 임상시험센터로 가동했다. 무엇보다 세계적 권위자를 초빙하는 등 의료진 리쿠르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환자 중심의 스마트 병원을 위해 표준화된 치료시스템(CP, Clinical Pathways)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정 원장은 ‘의료의 관건은 표준화’라고 믿는다. 표준화된 CP가 생기면 수술, 간호, 재활 등 모든 영역에서 같은 수준의 지표가 마련되고 그 지표를 바탕으로 하면 수술 결과 또한 의사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훈재 부민병원 원장 ⓒ홍수형 기자
정훈재 부민병원 원장 ⓒ홍수형 기자

표준화된 치료시스템(CP) 구축

“서울부민병원의 롤모델은 미국의 HSS(Hospital for Special Surgery)입니다. HSS(병상 200개)는 하루 200건 이상 수술하는데, 인공관절 수술 환자들이 수술 후 1~2일만에 걸어서 퇴원합니다. HSS를 본 받기 위해 2016년부터 우리 의료진이 연 1~2회 방문해 2~3주씩 상주하면서 수술 노하우와 함께 입원부터 퇴원까지 모든 치료과정을 담은 CP를 배웁니다. HSS와 부민병원의 CP를 비교하면서 매년 업그레이드하지요.”

‘의료의 표준화’란 수술 전 어떤 검사를 하고, 수술 중 어떤 기구를 쓰고, 수술 후엔 어떤 약을 얼마나 투여하고, 퇴원한 다음엔 어떤 약을 처방하고' 등 일련의 과정을 매뉴얼화하는 것이다. 표준화가 되지 않으면 똑같은 수술을 해도 전문의마다 혹은 의사의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환자 입장에선 좋은 병원이 되기 어렵다.

“표준화된 CP가 우리 병원의 경쟁력이에요. CP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HSS의 시스템을 우리 시스템에 맞게 정착시키면서 수준을 높여 나가고 있습니다. 이 매뉴얼 안에서 진료하면 의료진 전반의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 원장은 비대면 진료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2015년 AI(챗봇) 문진 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2017년 의료솔루션 기업 ‘비플러스랩’을 설립, 문진부터 화상 진료 및 처방, 약 배송과 보험료 청구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질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챗봇 문진 결과에 따른 초진 차트가 형성되고, 의사는 차트를 보면서 화상으로 진료한 뒤 전자처방전을 발급하고, 약국에선 처방약 배송도 할 수 있다.

“환자 위주 비대면 플랫폼 개발이 완료되면 서울부민병원을 통해 시범 서비스를 할 계획입니다. 비대면 진료의 경우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지만 결국엔 가야 할 방향이라고 봅니다. 환자는 물론 의사의 시간도 절약하는 등 효율성을 높이고 진료비도 낮출 수 있을 테니까요.”

챗봇문진 등 비대면진료 플랫폼 개발

의료 데이터 구축에도 주목한다. 챗봇을 통한 초진 차트는 의사마다 다른 차트와 달리 양식이 통일된 채로 쌓일 테고, 진료와 처방전도 차곡차곡 모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의학은 데이터 사이언스입니다. 병원은 데이터를 생산하는 곳이구요. 의료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하고 표준화, 구조화하면 환자의 진료는 물론 재활과 헬스케어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정 원장은 또 서울부민병원에 척추변형센터를 개설했다. 척추변형센터는 척추변형수술을 하는 곳으로 척추전문병원에서도 흔치 않은 곳이다. 축추변형수술은 척추를 세 동강 낸 다음 바로 펴야 하는 힘겨운 수술이다. 중추신경계와 척추 주변의 혈관을 건드리기 때문에 출혈도 많고 자칫하면 마비가 올 수 있다. 수술 이후 합병증 가능성도 크다. 감당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은 이유다. 병원 수익과도 거리가 있다.

정 원장은 그러나 ‘환자에게 기쁨을’이라는 병원 본연의 사명감을 다하고 척추관절 부문의 최고 병원이 되자면 척추변형 수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2018년 우리들병원의 최진 원장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하고 척추수술의 세계적 대가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김용정 박사를 초빙해 2020년 팀을 꾸렸다. 환자들에게 새 삶을 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사회공헌이라는 소신에서다. 소아골절과 뇌성마비 등을 치료하는 소아정형외과를 오픈한 것도 그래서였다.

부민병원 내부 ⓒ홍수형 기자
부민병원 내부 ⓒ홍수형 기자

실내슬리퍼 신으면 발목 관절에 도움

“척추변형수술 환자들 대부분은 치료를 포기했던 분들입니다. 수술할 수 있다는 답변만 듣고도 눈물을 흘리시지요. 한 달에 30케이스 정도니까 많은 편입니다. 수술 후에도 환자들과 계속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김용정 진료원장님은 독보적입니다. 워낙 명성이 높아 미국에서도 환자들이 찾아 오지요. 코로나19가 잦아들면 우리 센터가 글로벌센터가 되리라 봅니다.”

정 원장은 화요일 오전엔 직접 진료도 한다. 발목 질환의 절반은 관절염, 다른 절반은 운동하다 다치는 등 외상 때문인데 어느 쪽이든 회복하자면 발목 주위 근력을 강화하는 게 필수라고 얘기한다. “뼈 관절은 닳을 수밖에 없는 만큼 평소 관리를 잘하고 마모가 심해지지 않도록 주변 근육을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실내에서도 쿠션 있는 슬리퍼를 신으면 발목은 물론 척추나 무릎, 고관절 보호에 도움이 됩니다.”

환자 중심의 스마트 병원을 지향하는 서울부민병원의 미션은 ‘미래의 의료를 선도하는 디지털헬스케어 그룹’. 비전은 ‘대한민국 최고의 관절 척추 병원’이다. 이를 위해 2022년에도 롯봇인공관절 수술 대가 2명을 영입하고 로봇도 더 들여올 계획이다. 정 원장의 ‘환자 중심’ 원칙과 운영은 서울부민병원 개원 이래 매년 30%씩 성장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완화되면 강당과 재활치료센터를 지역 주민들에게 오픈할 작정입니다. 병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헬스케어센터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30대 초반엔 정형외과 의사로서 실력을 닦는데, 30대 중반엔 병원경영자 역할에 중점을 뒀다는 정훈재 원장. 40대엔 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사업에 주력하고, 50대엔 그간의 역량을 바탕으로 헬스케어 사업의 발굴 및 투자에 힘쓰겠다는 그의 열정에 서울부민병원의 미래가 엿보인다.

정훈재 서울부민병원 병원장

(현) 비플러스랩 공동 대표

(현)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책이사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외래 교수

HSS(Hospital for Special Surgery) AVP, 미국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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