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성공회 최초 여성 종신부제 서품을 받으며

종신부제 서품식에서 부복장면.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놓고 주님을 섬길 것을 드러내는 예식. ⓒ허성우 대한성공회 세종교회 종신부제
종신부제 서품식에서 부복장면.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놓고 주님을 섬길 것을 드러내는 예식. ⓒ허성우  

페미니즘은 어디서 왔을까?

나는 십대 후반부터 페미니즘에 매료되어 지난 수십 년을 페미니즘을 양식으로 먹고 살았다. 페미니즘을 하면서 내게 풀리지 않는 오랜 의문이 하나 있었다. 성차별에 저항하고 성평등의 삶을 만들고자 하는 페미니즘운동은 서구 근대에서 빨라야 19세기 초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19세기 이전의 여성들, 그리고 서구가 아닌 다른 지역의 여성들은 차별을 몰랐으며, 그에 저항하지 않았었다는 말일까? 정말 그럴까? 페미니즘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하는 것이었다.

태초에 페미니즘이 있었다!

개인사적으로 최근 수년간 큰 변화를 겪었다. 천체가 흔들리고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 후의 삶 같은 것이었기에 어떤 언어로도 변화를 쉽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 중 하나는 양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요즘 나는 성서를 읽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있다.

가부장제는 B.C. 7000-4000년 경 고대 근동 지역에서 형성됐다. 그런데 구약 성서에서는 이것과 완전히 다른 새 질서가 등장한다. 하느님이 태초에 여성과 남성을 하느님과 같은 속성을 가진 존재로 평등하게 창조(창세기 1: 27)하셨고 예수는 가난한 과부와 창녀, 아픈 여성들을 돌보고 치유하셨다. 이런 평등의 질서에 반하는 많은 성서 구절들과 해석들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하느님과 아무 관련이 없는 어떤 사람들의 말일 뿐이니 쿨하게 잊어버리셔도 된다. 그러니, 굳이 페미니즘의 어법을 따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태초에 자유의 빛인 페미니즘이 있었다! 

인간 이하로 취급 받고 있던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이 하느님의 속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됐다는 복음은 가장 급진적이고 완전하며 영원한 혁명이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고, 예수와 동행하며 남성들과 함께 복음 전파의 여정을 걷는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교제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공적 활동을 하는 것은 당시의 가부장제 문화에서는 완전히 금지된 것이었다. 초대 교회는 성별, 인종, 계급 차별이 없는 인류 최초의 공동체를 보여준다. 이것은 가정교회 형태로 운영되었고, 여성들은 핵심적인 사목자였다. 예수와 동행했던 갈릴리의 여성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증언한 여성들, 초대교회에서 활약한 여성들은 가부장제 질서를 깨뜨리고 그어놓은 선을 넘은 최초의 페미니스트들이었다. 내 오랜 질문의 답이 여기 숨어있었다. 

여성 종신부제들. (왼쪽부터) 이영아 아셀라부제, 허성우 막달라 마리아부제, 김성순 클라라 부제. ⓒ허성우
여성 종신부제들. (왼쪽부터) 이영아 아셀라부제, 허성우 막달라 마리아부제, 김성순 클라라 부제. ⓒ허성우

차별을 넘어선 교회의 여성들

AD 1세기 중후반 경부터 기독교가 체계화되면서 불행하게도 세속 가부장제적 질서가 그 안에 그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대교회에서 활약하던 여성들을 통제하는 신학과 교리들이 만들어졌다. 특히 바울로서신의 구절들은 그 구체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완전히 빠진 채 하나의 보편적 정언명령으로 박제화됐다. ‘여성들은 침묵하라’, ‘남성을 가르칠 수 없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이 몇 구절들이 지난 이천년간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차별의 근거로 사용됐다는 것은 가부장제 권력의 막강함과 동시에 한없는 취약함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말을 할 수 없으니 설교라는 것을 할 수 없고, 남성을 가르칠 수 없으니 교사도 될 수 없었다. 이것이 여성 성직 폐지의 성서적 근거가 되었고 517년 프랑스 에피온 공의회에서 중요한 여성 성직이었던 여성부제직을 공식 폐지했다. 수 세기동안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성직 서품을 요구했지만, 교회는 여성들의 서품을 향한 욕망을 뉘우치라고 외쳤다. 그러자 여성들은 사막으로 나가 수도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이것이 곧 거대한 중세 수도원운동의 효시를 이룬다. 이들은 교회 질서 밖에서 하느님을 직접 체험하는 신비주의 영성 신앙으로 깊숙이 들어갔고, 평등한 초대교회 공동체를 재현하고자 기도하고 노동했다. 남성들이 머리로 신학과 교리를 만들고, 권력으로 배를 불릴 때, 여성들은 영혼과 가슴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청빈과 섬김의 삶을 실천했다. 근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여성들은 보다 가시적으로 교회의 가부장제 질서를 비판하고 그것에 도전하며 교회 안팎에서 신앙을 지키며 헌신해 왔고, 이들은 서구 페미니즘 1물결로 파도쳤다. 이때 교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미니즘 제2물결과 섞여 페미니스트신학 운동을 낳으며 차별의 대표적 상징인 여성 성직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다.  

기독교 여성 성직의 부활

세계성공회 (Anglican Communion)는 여성 성직의 부활에 결정적 획을 그었다. 세계 성공회는 170여개국, 41개의 관구를 가진 교단으로 영국교회에서 시작됐으나, 초대교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영국 자체의 기독교가 6세기경 로마교회와 병합되어 발전하다가 16세기 종교개혁 영향 하에서 장로교, 루터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개혁의 온상이 된다. 하지만 성공회는 구교와 신교의 장점을 포용하며 세계 교회 일치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관구는 현재 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 등 세 개 교구로 형성되어있다. 십년마다 열리는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에서는 그 어느 교단보다 발 빠르게 1958년경 여성 성직 서품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 결과 40여년에 걸쳐 여성부제 서품(1968), 여성사제 서품(1978), 여성 주교 서품(1988)이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517년 여성부제 폐지 후 자그마치 1451년 만에 여성 성직이 부활된 것이다. 성공회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엄청난 갈등이 일어났다. 한편에서는 여성 성직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여성 사제 서품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났다. 하지만 결국 여성 성직이 승리했다. 현재 세계성공회는 여성대주교, 주교, 사제와 부제들을 포함해 가장 많은 여성 성직자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1년부터 여성 성직 서품을 위한 활동이 시작돼 1998년 대전교구에서 첫 여성부제 서품이래, 24명의 여성사제가 서품됐다. 불행히도 로마 가톨릭교와 동방정교회는 현재까지도 여성 성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개신교 일부 교단들은 20세기 초반부터 산발적으로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고 있다. 여성 성직은 인간의 평등한 삶을 원하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차별적인 세속 가부장제를 믿어 온 죄에 대한 고백이자 뼈아픈 성찰의 상징이다. 

부제 서품 후 영성체 중 보혈을 나누는 장면. ⓒ허성우
부제 서품 후 영성체 중 보혈을 나누는 장면. ⓒ허성우

대한 성공회, 한국 최초의 여성 종신부제 서품

부제(deacon) 직제의 기원은 초대 교회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서 재산관리와 식량배분 등의 임무가 늘어나자 신망있는 일곱 보조자들을 뽑아 그 일들을 하도록 했던 것이다. 여남 부제가 있었지만, 여성부제는 여성들만을 위한 일을 하도록 규정되었다가, 이 마저도 사라져 버렸었다. 남성부제직은 중세를 거치면서 사제서품으로 가기 위한 단계로 그 의미가 축소됐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초대교회의 정신을 계승한 종신부제(permanent deacon)직을 부활시킨 것은 훌륭한 일이었다. 종신부제란 직업적 성직자와 달리 평생 부제로 남아 사제와 공동체를 섬기는 평신도 성직이다.

지난 11월 6일 성공회 대전교구의 종신부제 서품식이 있었다. 여기서 네 명의 종신부제들이 탄생했다. 김성순 클라라 부제(김제교회), 이명훈 토마스 아퀴나스 부제(유성교회), 이영아 아셀라 부제(성남동교회)와 허성우 막달라 마리아 부제(세종교회)가 그들이다. 이들 중 허성우, 김성순, 이영아는 한국 최초의 여성 종신부제가 된다. 이 여성 종신부제 서품은 차별 앞에 무너지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자기 길을 걸어온 믿음의 여성 조상들에 힘입은 것이다.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하느님 형상으로 창조하고, 불평등과 부정의를 꾸짖고 오직 평등과 정의를 외친 그리스도의 삶을 다시 찾은 성공회 신학과 신앙에 힘입은 것이다. 신 앞에 겸손히 온 몸을 엎드린 여성 종신부제들은 한없이 낮아진 여성으로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거듭나며 인간 자유의 빛을 드러낼 존재이다.

페미니즘이 하느님을 만나면

페미니즘을 포함한 세속지식에서 인간이란 물리적 신체(physical body)와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정신(mind)적 존재로 이해된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인간은 물리적 신체와 정신만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영적 신체(spiritual body)를 가진 존재이다. 이 영적 신체는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속성을 공유한다. 그러니,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란 실로 우리 실존의 문제이며 존재론의 문제이다. 페미니즘을 하면서 페미니즘 안에 갇히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 거기서 우리의 인간됨이 무한히 확장되는 뜻밖의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없이 지속되고, 삶의 고통도 더 무거워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매일 본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을 보면서 마지막을 모른 채 마지막을 향해 간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이웃들의 저 밑에 숨겨진 상처받은 영혼을 돌아보고 사랑하기를 지극히 원하신다. 거친 세상에서 쏟아지는 사건들과 정치들, 그 속에서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힐 때, 오! 하느님! 소리가 절로 나올 때, 하느님은 당신의 요청을 듣고 손잡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 때 어딘가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허성우 전 성공회대 실천여성학 교수·현 대한성공회 세종교회 종신부제 ⓒ허성우
허성우 전 성공회대 실천여성학 교수·현 대한성공회 세종교회 종신부제 ⓒ허성우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