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예술을 만들다]
다큐멘터리 감독 강유가람
2019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자

다큐멘터리 감독 강유가람. ⓒ여성신문
다큐멘터리 감독 강유가람. ⓒ여성신문

‘미투 이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영페미니스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여성 혐오에 맞서고 있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온 강유가람 감독이 품었던 질문이다. 이 궁금증들은 수많은 인터뷰와 취재를 거쳐, 다큐멘터리 영화 ‘애프터 미투’(2021), ‘우리는 매일매일’(2019), ‘시국페미’(2017)로 만들어졌다.

강유가람은 여성의 시선을 통해, 공간(장소)과 페미니즘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데뷔작 ‘모래’(2011)는 강남 아파트에 얽힌 한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한국사회 가족주의 담론까지 확장시킨 중편 다큐멘터리로,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한국경쟁)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후 연남동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다룬 ‘진주머리방’(2015)과 용산 기지촌 여성 3인의 목소리를 담은 ‘이태원’(2016)을 통해 공간에 대한 탐구로 출발해 여성의 삶과 역사에 주목해왔다.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건 2017년 ‘시국페미’부터다. 이 영화의 배경인 ‘광화문 광장’도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2019년에는 영페미니스트들의 현재 삶을 담은 ‘우리는 매일매일’로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작품상(한국장편경쟁),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과 독불장군상, 제2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같은 해 뒤늦게 개봉된 ‘이태원’도 제8회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감독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다큐멘터리 감독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은 것도 바로 이때다.

강유가람 감독과의 인터뷰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인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떠들썩한 동네 분위기와 달리, 강유가람 감독은 캐모마일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인터뷰 내내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답을 이어 나갔다.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은 이태원에서 격동의 시간을 보낸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KT&G상상마당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은 이태원에서 격동의 시간을 보낸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KT&G상상마당
영화 속 등장인물 ‘키라’(허은주)는 현재 6년 차 수의사로 활동한다. 매일매일 여성들과 함께 동물보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디스토리​​​​​​​<strong>​​​​​​​</strong><br>
영화 속 등장인물 ‘키라’(허은주)는 현재 6년 차 수의사로 활동한다. 매일매일 여성들과 함께 동물보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디스토리<strong></strong><br>

 

- ‘우리는 매일매일’과 ‘이태원’으로 상을 많이 받으셨네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는지요.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을 제작할 때, 어려움이 정말 많았어요. 영화를 제작한 지 8~9년 차인데도 그때까지 제가 만든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해 본 적도 없었고, 제작 지원도 잘 안 됐어요. ‘앞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자기 회의감이 많던 시기였죠. 그런데 그 영화를 완성하고, 이 상을 받으니까, 상이 제게 주는 응원 같은 기분이 들고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게 ‘계속 작업을 하라’는 메시지 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감사하고, 힘이 많이 됐어요. 또 시상식에서 각계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뭔가 서로 연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각자 다른 분야에서 점처럼 열심히 활동하다가, 이런 순간에는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 자리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 이제껏 받아온 상 중, 가장 뜻깊은 상을 꼽으라면?

모든 상이 다 소중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한 번 꼽아볼게요. ‘우리는 매일매일’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받았어요. 심사위원상도 같이 받긴 했지만 독불장군상은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주는 상이고, 뭔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에게 주는 상이여서, 정말 기뻤던 것 같아요.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 작업을 하나의 길로 인정해 주는 기분도 들었고요.

-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면서 힘든 일이 참 많았을 텐데요.

2009년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2011년에 첫 작품이 나왔어요. 올해(2021년)가 딱 10년차에요.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제 또래 친구들(40대 초중반)을 만나면 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살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집도 없고 차도 없는데 큰일 났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죠.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도 받고, 위로도 많이 얻으면서 나아진 것 같아요. 운이 좋게도 2019년 ‘이태원’이 극장 개봉했고요. 그전까지는 배급사도 못 찾고 개봉도 못 했거든요.

그렇다고 지금 제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진 건 아니지만 중심을 좀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동안에는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압박감이나 조바심도 좀 있었는데, ‘우리는 매일매일’을 만들면서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 없다면, 다른 일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는 매일매일’을 찍으며 만났던 영페미니스트들은 지금 정말 다양하고 유연하게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그들에게 많이 배웠고, ‘지금 이걸로 꼭 뭔가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선택을 하는 게 꼭 실패는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 최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영화 ‘애프터 미투(#AfterMeToo)’가 공개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미투 이후의 이야기를 여성 감독들의 시선으로 담은 작품이에요. 4명의 감독(박소현·이솜이·강유가람·소람)과 2명의 프로듀서(남순아, 박혜미)가 모여서 작업했어요. 저는 ‘이후의 시간’으로, 문화 예술인이면서, 연대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바라본 미투를 담았어요. 자신이 직접 ‘미투’를 하신 분도 계시지만 미투 활동을 지원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죠. 박소현 감독은 서울 용화여고 스쿨 미투 이야기를 담은 ‘여고괴담’을, 이솜이 감독은 주인공이 성폭력과 가정 폭력 트라우마와 투쟁하며 살아남으려고 하는 과정을 담은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소람 감독이 데이트 폭력도 미투의 영역에서 좀 더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레이 섹스’을 만들었습니다.

- 공간이 페미니즘으로 연결되었네요.

우선 공간에 대한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아버지가 건설회사에 다니셔서 초등학교 때 전학을 4번이나 다녔어요. 같은 지역에서 살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보니, 어떤 공간에 속해 있는 소속감 같은 기분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집이라는 공간, 주거 문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면서, 저희 집을 소재로 한 첫 작품 ‘모래’를 시작했죠. 당시 저희 집이 재건축 예정 지역이었는데, 재건축에 관한 뉴스에 따라서 부모님의 심리 상태가 계속 변하시더라고요.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죠. 그 과정에서 좀 더 깊게 공간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공간 문제는 스스로 탐구해야 하는 주제가 됐어요. 내 집에서 좀 더 확장해 나간 것이 이태원 지역입니다. 이태원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들여다보게 됐고,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도 접목시켜서 보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극영화 ‘진주머리방’은 공간 안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노동이 은연중에 드러날 수 있게 했고요.

‘여성주의적인 시선과 재건축이 무슨 관련이 있나?’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공간 개발이 될 때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어떤 노동이 지워질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보세요. 당연히 여성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 언제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나요?

대학 다닐 때부터 접하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제 안에 스며들었어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삶이 좀 바뀌었어요. 자연스럽게 어떤 가치관처럼 자리 잡게 돼서 어떤 작업을 해도 그런 시선이 녹아드는 것 같아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시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고요.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한 건, ‘시국페미’와 ‘우리는 매일매일’이에요. 노동 운동이나 학생 운동은 영상 아카이빙이 그래도 되어 있는 편인데 여성 운동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이 남고 계보가 정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게 된 것이 ‘우리는 매일매일’이에요.

강유가람 감독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고, 이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에서 ‘왕자 소녀들’(2011) 조연출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발을 들였다.

- 영화,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서른 살 때쯤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교 때부터 있었는데, 항상 당면한 일들을 하거나 조금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진로를 선택하곤 했죠.

원래는 극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처음 조연출로 일하게 된 영화가 여성국극을 다룬 ‘왕자가 된 소녀들’이었는데, 그때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실존 인물을 촬영하면서 느끼는 색다른 매력이 있었고, 제 세계 자체가 넓어지는 느낌이 있었죠. 그때 다큐멘터리를 좀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하다 보니까 10년이 됐어요. 꼭 다큐멘터리만 하려는 건 아니에요. 픽션도 해보고 싶어서 중간에 짧은 단편을 만들기도 했고, 지금은 장편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있습니다.

- 다큐멘터리 영화란 어떤 영역인가요?

다큐멘터리의 성격상 현실을 보여주니 보도의 의미도 있고, 영화로서 ‘감독의 예술’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저는 두 가지가 다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뉴스 채널이 굉장히 다양한데 다큐멘터리는 어쨌든 작가적인 시선을 가지고 어떤 하나의 사안을 좀 집요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보도보다는 좀 더 예술적인 측면이나 창작자의 특성이 좀 더 강조가 되어야 장르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저널리즘적인 특성이 강렬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요. 저는 워낙 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시의성 있는 이슈를 따라가기 쉽지 않아서, 탐사 다큐 보다는 어떤 시선이나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그걸 효과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가 엄청나게 스타일리시한 작업을 하는 건 아니고요. 실험적인 스타일을 추구하지도 않으니, 그 경계에 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 감독 입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즐거움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찍긴 하지만, 어쨌든 감독의 시선이 들어가서 편집이 되니, ‘감독이 보는 어떤 진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논픽션이지만 픽션에 가까울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감독의 눈으로 재구성이 될 수밖에 없고 현실을 조금 남다른 시선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돼요. 감독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실체에 다가가는 것 자체가 모두 다르죠. 만일 어떤 여성의 삶을 다룬다면, 그것을 어떤 시선으로 읽어낼 건지, 어떤 방식으로 촬영할 건지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인물이 주는 힘이 있지만, 그걸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는 오롯이 연출자의 능력이 아닐까 해요.

다큐멘터리도 시나리오를 쓰듯 사전에 구성안을 쓰거든요. 그건 소설에 가까운 거고, 현장에 가서 찍으면 많이 달라집니다. 그게 정말 재미있어요. 삶이란 반전의 연속이고 예상을 벗어나는 그런 상황들을, 다큐멘터리만큼 잘 보여주는 장르는 없는 것 같아요.

- 다큐멘터리 제작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보통 제 주변에 있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평소에 관심 있는 주제나 기사를 많이 눈여겨보는 편이고, 기본적으로 여성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여성에 관해서 항상 생각하긴 해요. ‘지금 어떤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면 좋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하죠.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은 제 관심사에서 파생된 것 같아요. 첫 작업이 재건축 아파트였다면, 그 뒤로는 연남동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가, 더 넓혀서 기지촌과 젠트리피케이션, 이런 식으로 확장되는 식이죠. 예전부터 1990년대 영페미니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 시기를 언젠가 한 번은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국페미’를 찍었어요. 그런 식으로 관심과 소재가 확장됩니다.

- 제작 비용이나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제작비를 마련하고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일단 현장에 가서 찍고 사전 조사를 하는 편이에요. 비슷한 주제의 영화가 있는지 보고 관련된 논문이나 책도 서치해보면서 기획을 발전시키죠. 그렇게 기획안을 작성해서 촬영 소스를 모으고 영화제나 영화진흥위원회 같이 제작 지원을 하는 곳에 프로젝트를 내기 시작하면 제작을 본격화하게 돼요. 제작비 펀딩도 하고, 스태프도 구성해야 하고요. 처음에는 소규모로 시작하고 뒤로 갈수록 펀딩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이 붙어서 작업할 수 있게 진행되죠. 1년 만에 끝나는 작업은 거의 없고, 장편은 2년은 기본, 3~5년까지 찍기도 해요. 7, 8년 걸리는 작업도 있다 보니 제작비는 몇천부터 억 단위까지 무한정 늘어나는 편이에요. 요즘에는 장편 다큐멘터리 제작비는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2019년 개봉한 첫 장편 다큐멘터리 ‘이태원’은 30년이 넘도록 격동의 이태원에서 살아온 삼숙, 나키, 영화 세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다. 강유가람 감독은 영화 속 등장하는 세 여성을 ‘기지촌’ 여성으로만 그리지 않고 오랫동안 이태원에 살아온 주민으로서의 고민과 그들의 삶을 담백한 시선으로 담아 언론과 평단, 관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 ‘이태원’은 취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태원의 언니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있었던 지인이 그분들을 소개시켜줬어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무렵이었는데 저는 “왜 박근혜 대통령 당선됐을까”하는 다큐를 찍을까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언니들 중 한 분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찍었다면서 지인이 한번 만나보라고 했어요. 왜 찍었는지 궁금해서 만났는데 그분 자체가 너무 강렬했고, 그분들의 삶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쫓아 다니면서 설득을 했는데, 본인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서 다른 분을 소개해주셨죠. 때마침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붐이라 젠트리피케이션도 함께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 인물이 중심인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상과 소통이 핵심일 것 같아요. 마음을 여는 비결이 있나요?

처음 만나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지는 않아요. 저도 다큐멘터리 수업에서 배운 방법인데, 시간을 좀 길게 두고 비슷한 내용으로 인터뷰를 두세 번씩 합니다. 그러면 같은 질문이라도 답이 다르게 변주될 수 있거든요. 한 편을 2~3년 정도 찍으니까, 그 기간 안에 심경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고요. 비슷한 답이 반복된다면, 인터뷰를 그만 해도 될 때에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볼까?’할 때, 그제야 진심을 들려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면 인터뷰이의 신뢰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 그렇게 마음을 열어준 분이 누구였나요?

‘이태원’에 등장하신 나키님이에요.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 들려주셨어요. 항상 그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수수께끼 같은 거예요. ‘이 이야기가 그런 뜻인가, 아닌가’ 이러면서 머릿속으로만 맞춰 봤는데, 맨 나중에 가서야 ‘그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구나’ 하고 깨닫게 됐죠. 물론 그 부분은 영화에는 쓰지 않았어요. 답을 늦게 주신 건, 어떻게 보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 ‘우리는 매일매일’ 같은 경우, 지인들을 찍으셨잖아요. 알던 분들, 모르는 분들,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요?

‘이태원’을 찍을 때는 인터뷰이들이 살아온 반경이 저와는 다른 분들이라 되게 조심스러웠거든요. ‘우리는 매일매일’은 지인들이니 편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그 분들도 자신의 삶을 내주는 건 마찬가지니까 비슷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어요. 친분이 있으니 뭔가 더 속 깊은 얘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지인의 어떤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해야 되니까 고민도 있었죠. 또 아는 사람이다 보니 인터뷰가 관객에게 불친절한 방식으로 이뤄지더라고요. 조금 더 디테일하게 관객에게 설명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또 다른 스킬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 ‘우리는 매일매일’의 영페미니스트들과 ‘시국페미’의 요즘 페미니스트들은 20~30년의 세대 차이가 납니다. 어떤 점이 다르고 비슷했나요?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표현하는 방식은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런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매체에 대한 접근도도 다른 거 같고요. 그건 세대의 특성이겠죠. 온라인 공간에 자신을 드러내놓고 활동하고, SNS를 활용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많이 더 적극적이고 더 즉각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슈에 좀 더 많이 빠르게 응집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도 거의 똑같은 얘기를 계속해 왔던 거니까 지금의 페미니스트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해요. 다만 기술이나 사회 발전에 따라서 가부장제의 억압의 양상들이 달라지고, 그에 대처하는 방식들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은 어디까지 이뤄졌을까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페미니즘 자체에 혐오를 가지며 공격하는 분위기에 사회가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고, 주요 언론들은 페미니즘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요. 물론 예전보다는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 시스템과 남성들까지 변화시키는 것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봐요. 특히 돌봄 영역이나 보살핌 영역에서 함께 해야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여전히 여성의 영역으로 취급되고,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서는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수치가 있는데, 왜 불평등함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궁금해요. 예를 들면 OECD 주요 국가 중 성별임금격차 지표가 제일 높아요. 또 기술의 발전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을 괴롭히잖아요. N번방,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같은 문제요. 전체적인 틀 안에서 봤을 때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 예술인으로서 페미니즘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페미니즘은 여성만이 아닌,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계속 목소리를 내거나 기록하고, 새로운 기획을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 문화예술인의 역할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요. 더 적극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페미니즘 교육을 하면, “편향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사실은 그동안 다른 방식으로 편향됐던 것을 인정하지를 않았을 뿐이죠. 페미니즘 교육했다는 이유로 교육청에서 조사받았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 앞으로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장편 영화를 찍고 싶어요.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제작은 언제부터 본격화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장기적으로는 여성 작업자들을 위한 기금이 조금 확충됐으면 좋겠어요. 현재 여성재단에 문화예술 기금이 있어요. ‘변화를 위한 리더’로 1년에 한 번씩 여성 예술인들에게 기금을 지급해주는 제도에요. 나이가 좀 더 들면, 그런 기금을 더 확충하는 일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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