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작가
ⓒ박효신 작가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 “부디 용서하세요”라고 해본 적 있을까?

놀랐다. 기억을 뒤지고 뒤져보아도 평생 누구한테 이 말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작년 10월 쯤 마을에서 믿고 아끼던 후배로부터 소위 배신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너무 화가 나고 분해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질 정도로 마음 고생이 컸다.

그 사람과 한 판 거하게 하고 그 뒤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마을일로 수년간 함께 해오던 관계라 무시하고 지내려 해도 엮인 일들이 있어 참 불편했다.

해가 바뀌어 금년 1월 1일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2021년에는 우리 모두 다음 네 가지 말을 많이 하자고.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부디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네 마디면 해결 안 될 일이 없단다. 말 않고 지내던 후배가 떠올랐다.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은 배신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던 상태. 그런데 분노로 가득 찬 머릿속을 정리하라고 하늘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일은 그 사람 찾아가서 ‘내가 심한 말 한 거 용서해달라고 해야지...”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 계획을 이야기하니 모두가 펄쩍 뛰면서 말린다.

“하지 마! 네가 용서해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반성은 커녕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네가 자기한테 사과했다고 떠들고 다닐 거야. 잘못은 그 인간이 했는데 네가 왜 용서하라고 해야 하는데?“

결국 그 말을 접어두고 또 시간이 흘렀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얼마든지 하겠는데 ‘부디 용서해 주세요’란 말은 정말 하기 힘들었다. 그러고보니 세상 사람들도 나같이 이 말은 하기 싫은 모양이다.

더구나 누가 봐도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 유명인들의 행태를 보라. 그들은 기껏해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로 끝이다. 차라리 목숨을 끊을지언정 ‘용서해달라’ 는 말은 끝까지 안한다.

“부디 용서하세요”

이 말은 나에게 숙제로 남아 일 년 동안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 후배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자기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친구가 걸음을 멈추고 나와 마주 섰다.

“미안하다는 말 하고 싶어서…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참았어야 하는데 미안해. 자기도 나이 먹은 사람인데 함부로 말한 거 용서해줘요.”

그 친구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졌다.

“아니에요, 선배님 제가 잘못했어요.”

우리는 서로 힘주어 껴안았다. 그동안 마음을 짓눌렀던 미움 원망 분노는 한 순간 사라져버렸다.

끝내 용서 없이 떠난 사람…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부디 용서하세요.”

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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