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돈(4)

여성들이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자금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들을 해소할 수 있도록 여러 국가들이 성별을 고려한 공적자금(GTPF: Gender-Targeted Pubic Funding)’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또한 이러한 목적의 제도를 갖고 있는데 하나가 여성추천보조금이고([정치의 비밀정원] 정치와 돈(3) ‘여성추천보조금을 아시나요?), 다른 하나가 여성정치발전비이다.

정당 경상보조금의 10%는 여성정치발전 위해 사용해야

정치자금법282항은 정부로부터 경상보조금을 받는 정당들에게 경상보조금의 10%여성정치발전을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규모를 살펴보면, 핀란드는 정당 보조금의 2%, 브라질과 이탈리아는 5%, 칠레는 한국과 동일하게 10%, 케냐는 30%로 규정하고 있다(Ohman 2018).

정치자금법 제28(보조금의 용도제한 등) 경상보조금을 지급받은 정당은 그 경상보조금 총액의 100분의 30 이상은 정책연구소 [정당법38(정책연구소의 설치·운영)에 의한 정책연구소를 말한다. 이하 같다], 100분의 10 이상은 시·도당에 배분·지급하여야 하며, 100분의 10 이상은 여성정치발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2004년 여성정치발전비가 법제화된 이후 정당들은 여성정치발전비 관련 규정을 당헌과 당규, 내규 등에 명시하는 등 당내 여성정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노력을 보였다. 특히 당시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상설교육기관으로 우리여성리더십센터’(현 여성리더십센터)를 설립하면서 여성 정치인 육성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근시안적이고 당파적인 이해관계와 정치공학에 매몰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으로 정당의 해산과 합당, 창당이 반복·지속되면서 여성정치발전비 집행은 안정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초기부터 여성정치발전비를 여성 당직자에 대한 인건비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는 여성 정치인 육성이나 여성정책 개발 등에 필요한 사업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각 정당의 여성정치를 위한 기반은 아직까지도 허약하다.

Ready to Run® is a national network of non-partisan campaign training programs committed to electing more women to public office.  ⓒCAWP(Center for American Women and Politics)
Ready to Run® is a national network of non-partisan campaign training programs committed to electing more women to public office.
ⓒCAWP(Center for American Women and Politics)

보조금의 ‘10% 이상이라는 규정, 최저 아닌 최고 기준으로 작동

정부가 정당들에게 제공하는, 사실상의 시민들의 세금인 국고보조금은 크게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나뉜다.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정당의 조건은 정치자금법 제27조에 자세히 규정되어 있는데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20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 간에 상당한 차이, 사실상의 차별이 존재한다. 경상보조금은 분기별로 제공되며, 선거보조금은 선거가 있는 해에만 지급된다. 선거가 있는 해에 여성과 장애인 후보공천 기준(정치자금법 제26조와 제26조의2)을 충족하면, 여성추천보조금과 장애인추천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여성정치발전비는 경상보조금의 일부이다.

정당들이 여성정치발전비를 얼마나 지출했는지를 살펴보면(<1><2> 참조), 2019년에 더불어민주당은 약 14억 원, 자유한국당은 약 136천만 원, 바른미래당은 10억 원, 정의당은 2억8천만 원 등이었다. 2020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약 19억 원, 국민의힘이 18억 원, 정의당이 야가 34천만 원 등을 지출했다.

경상보조금을 많이 받을수록 여성정치발전비의 절대적인 지출 액수 또한 많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 정당들이 10% 수준에 맞춰 지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 자료들을 살펴봐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는 법에 규정된 ‘10% 이상이 정당들에게 최소 기준이 아니라 최대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정치할당비 명목으로 지출을 하기는 하지만 그 기준을 넘어 지출할 의사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정치에서는 법적 제약이 없는 한 여성정치 발전을 위한 정당의 자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낸다.

<1> 정당별 여성정치발전비 액수와 경상보조금 내 비율 : 2019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20)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20)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2> 정당별 여성정치발전비 액수와 경상보조금 내 비율 : 2020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21)와 2020년 보조금 지급내역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 전체 보조금은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 그리고 여성·장애인추천보조금을 합한 것임 ** 기타정당은 민생당, 국가혁명당, 진보당, 우리공화당, 친박신당, 자유한국21이며, 경상보조금, 선거보조금, 여성추천보조금 중 하나 이상을 받은 정당들이다.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21)와 2020년 보조금 지급내역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 전체 보조금은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 그리고 여성·장애인추천보조금을 합한 것임
** 기타정당은 민생당, 국가혁명당, 진보당, 우리공화당, 친박신당, 자유한국21이며, 경상보조금, 선거보조금, 여성추천보조금 중 하나 이상을 받은 정당들이다.

그동안 여성정치발전비는 어떻게 사용됐나?

각 정당들이 여성정치발전비를 어디에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각 정당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회계보고서를 봐야 한다. 그런데 회계보고서는 정당이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계보고서 내용 중에 허위나 누락이 있거나 용도를 위반해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기 어렵다.

이러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 17대 국회부터 19대 국회(2004년부터 2015)까지 정당의 회계보고서를 바탕으로 여성정치발전비 운용 실태를 분석한 연구를 살펴보면, 여성정치발전비의 상당 부분이 (여성 당직자)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2017). 2015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여성정치발전비의 약 40% 정도를, 정의당은 70%, 국민의힘은 97%를 인건비로 지출했다. 20대 국회 기간 동안 내역도 살펴봐야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림 1> 더불어민주당 계열 여성정치발전비 사용내역: 2004-2015

출처;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2017)
출처;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2017)

<그림 2> 국민의힘 계열 여성정치발전비 사용내역: 2004-2015

출처;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2017)
출처;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2017)

<그림 3> 정의당 계열 여성정치발전비 사용내역: 2004-2015

출처;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2017)
출처;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2017)

반면, 여성 정치인 인력 확대와 육성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교육과 정책 관련 지출은 현재로 올수록 줄어들고 있고, 비중도 상당히 낮다. 더욱이 선거가 있는 시기에는 교육과 정책 지출이 더욱 더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여성정치발전비는 (공천 받은) 여성후보 지원이라는 단기 목표가 아닌, (출마하고자 하는) 여성 정치인 육성과 여성정책의 개발과 같은 여성정치 발전이라는 장기 목표를 위한 비용이기에 이를 위해 사용해야 하며, 여성후보를 지원하고자 한다면, 그 비용은 여성정치발전비가 아니라 선거보조금에서 지출되어야 한다.

여성정치발전비 운용의 독립성과 책임성 확보

한 거대정당의 여성 당직자는 당내 교육과 훈련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 당원이나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 평가는 그렇지 않다. 여성정치발전비가 있는지도 모르는 여성의원들도 있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동안 사용된 여성정치발전비 내역은 여성정치발전비가 여성정치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치인을 키우는 것은 정당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여성정치발전비는 남성화된 정당들이 외면하는 여성 정치인 육성을 당에서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이 제도를 당내 여성들이 외면하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당 내 여성의 지위와 역할, 영향력은 더욱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치와 자금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만큼, 여성정치발전비에 대해 당내 여성들이 운용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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