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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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작가 노희경이 최근 <꽃보다 아름다워>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가족의 일상사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꽃보다 아름다워>는 가족은 방어벽이면서 동시에 장애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드라마다.

노희경은 사실 엄청난 시청률을 보증하는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환호는 남다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지만 정작 그 행복을 누릴 때가 되자 암 선고를 받는 어머니(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1996)에게 눈물짓던 시청자들은 급기야 세상을 얻고 싶은 한 남자를 그린 <우리 정말 사랑했을까?>(1999)에 열광, 인터넷 여기저기에 팬카페를 결성한다.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김수현과 같은 대작가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이나 열광적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노희경이다.

◆ 일상을 뒤흔드는 언어 마력

그녀의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자고 일어나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자는 노희경의 드라마를 볼 때 문을 꼭 걸어 잠그고 한 시간 내내 집중해서 봐야 재미있다고도 한다. 일회성이 아닌 보고 난 뒤에도 여운이 살아 일상을 뒤흔드는 드라마. 잊고 살았던 유년의 아픈 기억을 가슴 깊은 곳에서 되살아나게 하는 드라마, 이것이 바로 그가 전하는 말들이다.

◆ 서민들의 질퍽한 삶 통해

현대인의 자화상 투영노희경은 그간 여러 편의 드라마에서 질펀한 삶의 이야기를 다뤄 왔다. 주로 에이즈, 동성애, 가족의 이별, 빈곤층의 삶과 같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풀어냈다. 요즘 인기를 끄는 트랜디 드라마처럼 청춘스타 몇 명 배치하고 재벌 2세와 멋있는 조폭이 등장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산동네 정경이나 백열등, 가족간의 사랑처럼 돈에 울고 사랑에 속는 현재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그에게 드라마는 우리의 현실과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재벌 2세들이 부족함 없이 돈을 써대고 암흑가 주먹들이 여유를 부리는 것은 우리의 삶일 수 없다. 그는 스스로 누군가를 이야기로 다루고 다루지 않는 것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누구를 손가락질하는 입장이 아닌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났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 악다구니와 질퍽한 삶에

내리는 희망, 사랑 그녀의 드라마에서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과 희망이다. 마포 달동네의 좁은 골목길과 빠듯한 삶이 둥지를 트는 시장바닥, 노망난 시어머니가 암 걸린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는 일상에도 어김없이 사랑과 희망은 있다. 그리고 이런 삶에도 사랑이 있으니 살아 볼 만하지 않느냐고 속삭인다.“넌 누굴 사랑하는 게 겁나지, 사랑이 널 바보로 만들까 봐. 아서라. 세상은 바보 같애. 바보같이 사는 게 옳아. 재호야.”<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중 재미와 인기만을 좇는 시청자들에게 노희경이 말하는 본인의 작품세계는 따끔하다. “자식이 부모에게 삿대질하고, 아내가 남편을 몰아붙이는 대사가 나오면 시청률이 팍팍 올라요. 하지만 전 자식들이 싫어하는 아버지를 위해 변명을 해주고 싶어요”그의 변명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변명이다. 고단한 현실을 잊고 화려하고 여유 있는 삶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에 대한 변명, 그의 변명이 없다면 어떻게 오늘날의 이 모순된 현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은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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