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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축제화,

축제의 일상화가 내 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기는 할 말을 다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형제의 벙어리 어머니 역으로 열연한 이영란(50)씨는 영화배우, 경희대 교수(예술디자인학부 연극영화전공) 그리고 극단 목토(木土)의 대표다. 발목까지 오는 가죽 트렌치 코트에 꽃분홍색이라고 지칭하는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고 인터뷰에 나온 이 사람은 “삶이 곧 축제”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영화에서 어머니 분장을 잘한 탓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1년 동안 촬영하고 200여 명이 함께 고생한 영화라 그런지 기억에 많이 남네요.”

특별출연까지 합쳐 다섯 번째 영화에 출연하는데도 '태극기 휘날리며'첫 시사회에서는 자막이 올라갈 때부터 줄곧 눈물을 흘렸단다. 때마침 카페에서 돈 맥클린의 빈센트가 흘러나오자 중학교시절부터 줄곧 좋아하는 노래라며 너무 좋아한다.

그는 역시 뜨거운 감성을 지닌 배우였다. 이씨는 무대에서나 현실에서나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1992년 모노 드라마 '자기만의 방'의 반응이 무척 좋았죠. 여성신문사 주최 1994년 <국제여성전> 초청공연 모노 드라마 '다시 서는 방'에 이어 다시 2002년 '자기만의 방' 무대에 섰습니다. 그 즈음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던 때일 거예요.”

'자기만의 방' 첫 공연 후 10년 뒤에 다시 공연을 준비할 때도 여성에게 변한 것은 없었다.

결혼을 여성의 모든 문제 해결책으로 삼는 풍조 역시 여전했고 결국 같은 극을 올렸다.

물론 1회 때부터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예술감독 및 총연출을 맡아 왔고 지난해 제1회 대한민국 여성축제을 탄생시킨 이씨지만 본분인 교수로서 휘날릴 능력도 너무 많은 사람이다.

공연학(Performance Studies)에 대해서도 “단순히 공연예술뿐 아니라 영상매체, 이벤트, 대중오락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예술과 일상의 접목을 꾀하는 학문”이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릴 정도다. 게다가 야성의 부름이 느껴지는 가죽옷을 좋아하는 자신이 “무당의 굿에서 유래한 공연을 연구하는 제사장쯤 되지 않겠냐”며 너스레를 떤다. 생각건대 삶이 공연이고 공연이 곧 삶인 그의 인생을 보아 하니, 현대판 장자의 제물론을 실천하는 공연학자라고 해두면 되겠다.

보물 1호가 뭐냐는 질문에 이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이라고 단박에 대답한다.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그의 핸드폰도 원래 딸이 쓰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 재밌어요. 딸이 입력해 놓은 전화번호 목록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요. 집 번호를 눌러봤더니 '받지 마!'라는 문구가 뜨더군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는 모녀지간이다.

“쓸데없이 농담하는 분위기를 너무 싫어했어요. 너무 진지하게만 세월을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말끝을 흐리더니, “이제 여자들이 모여서 같이 노는 일은 꼭 해봐야겠어요. 일상이 축제가 되면 좋지 않겠어요”라며 자기만의 방문을 열었다.

조유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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