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월경할 권리’ 잃은 여군들 ①]
장기출동·훈련 상황에서도
여성 필수품 생리대는 알아서 챙겨야
피임약 복용하며 버티기도
‘남성 역차별’ 시선·인사 불이익
우려해 개선 요구 꺼려

ⓒ이은정 디자이너
ⓒ이은정 디자이너

“해군 함정 보급품엔 생리대가 없습니다. 여군이 직접 챙겨서 배에 탑니다. 갑자기 월경이 시작되거나 생리대가 떨어지면 천이라도 대고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해군 A대위)

“평소 생리통이 심한데 훈련이 겹치면 최악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피임약을 먹습니다. 다른 남군들은 공감하기 힘들고 안 좋게 보는 남군도 많아서 터놓고 말 못 해요. 그냥 약 먹고 참는 여군이 많죠.” (공군 B중위)

월경을 피할 수 있는 여군은 없다. 그러나 우리 군은 ‘여성 필수품’ 생리대를 지급하지 않는다. 여군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길게는 몇 주씩 배를 타는 함정 근무자, 내륙 격오지나 도서 지역 근무자도 마찬가지다.

남성 중심적 군 조직에서 여군 누구나 겪는 월경은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된다. 강도 높은 훈련·작전과 월경이 겹쳐도 말 못 하고 버티는 여군이 많다. 피임약을 먹으며 참기도 한다. 생리휴가 제도가 있지만 눈치가 보인다. 월경에 대한 낙인, ‘남성 역차별’ 담론은 여군들이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는다. 

건강하고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 기간을 보낼 권리는 여성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영국은 여군에게 생리대와 탐폰, 여벌 속옷을 보급하고, 여군의 건강권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기로 했다. ‘여군 확대’를 선언한 우리 국방부도 “개선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21년도 육군 민간부사관 여군 최종합격자 안내문 일부. 군은 기본 훈련을 받는 여후보생, 여생도에게만 생리대, 스타킹, 브래지어, 내의류 등을 기호대로 사서 쓸 수 있도록 현금(2021년 11월 기준 약 10만원)을 지급한다. 이외의 경우에는 여군 개인이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 ⓒ육군 안내문 캡처
2021년도 육군 민간부사관 여군 최종합격자 안내문 일부. 군은 기본 훈련을 받는 여후보생, 여생도에게만 생리대, 스타킹, 브래지어, 내의류 등을 기호대로 사서 쓸 수 있도록 현금(2021년 11월 기준 약 10만원)을 지급한다. 이외의 경우에는 여군 개인이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 ⓒ육군 안내문 캡처

월경 기간 군 생활의 불편함은 연차가 낮은 여군들에겐 피부에 와닿는 문제다. 우리 군은 여군이 생리대, 스타킹, 브래지어, 내의류 등을 기호대로 사서 쓸 수 있도록 현금(2021년 11월 기준 약 10만원)을 지급한다. 단 기초 군사 훈련을 받는 여생도, 여후보생들에게만 제공된다. 이외의 모든 경우에는 여군 개인이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

“부대에 따라 생리대를 안 파는 PX도 있어요. 생리대 자판기도 없죠. 개인이 미리 준비해야 해요. 남군은 면도기, 팬티 등을 모두 보급받는 것에 비하면 여군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해군 C하사)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갑자기 생리가 터진 적 있습니다. 생리대도 없고 여군은 저뿐이었습니다. 생리혈이 옷에 묻어 급히 갈아입는데 남군 선배들이 ‘바쁜데 왜 농땡이 치냐’고 했습니다. 대충 둘러대고 조용히 생리대를 사 와서 일하는데 솔직히 서러웠습니다.” (육군 D하사)

월경 대처의 어려움은 “여군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재은 서울시청 힐링센터장, 김지은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가 2월 한국심리학회지에 게재한 ‘여군의 군생활 경험과 적응 과정’ 논문을 보면, 여군은 남군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강도의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여군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위생·휴게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군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리적 현상을 해결할 수 없고, 개선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여군들은 물이나 식사량을 최대한 줄이는 식으로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월경용품 교체·처리가 어려운) 월경 시기는 대응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한 달에 한 번 ‘여성보건휴가’(무급 생리휴가)를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여군의 80% 이상은 생리휴가 사용을 어려워한다(2012, 국가인권위원회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팀장은 “남성 상관이나 부대원들의 눈치를 보거나, ‘남군 역차별’ 불만을 의식해 사용을 꺼리는 여군이 많다”고 했다.

월경에 대한 낙인, ‘남성 역차별’ 담론은 여군들이 월경이나 여성 건강권 관련 고충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는다. ⓒShutterstock
월경에 대한 낙인, ‘남성 역차별’ 담론은 여군들이 월경이나 여성 건강권 관련 고충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는다. ⓒShutterstock

많은 여군이 대안으로 피임약을 먹는다. 여군들 사이에선 오랜 관행이다. 험한 훈련기에 피임약 복용 등으로 버티는 관행이 여군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없으나, 인권위는 “불임이 될 가능성이 일반 여성에 비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군이 연차가 쌓이고 진급할수록 생리불순, 난임 등 성·재생산 건강 문제를 겪는 일이 많은데, 관련 의료 지원 체계는 미비하다. 남성 중심적 군 사회에서 여군들이 이런 문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어렵다.

“해군에서 진급하려면 함정 근무 기간이 길수록 유리한데, ‘배를 오래 탄 여군치고 산부인과 관련 문제 없는 여군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를 타면 하루 8시간씩 번갈아 당직을 섭니다. 휴가를 쓰려면 누군가가 저 대신 추가 근무를 해야 하니 눈치를 보게 돼요. 함정 근무 특성상 긴장을 유지하면서 불규칙적으로 생활하니까 생리불순, 하혈을 겪는 여군이 많고요. 산부인과 갈 시간이 없으니 제때 치료를 못 받아 병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의무장교도 남자인 경우가 많아서 말하기 껄끄럽고요.” (해군 C하사)

제대로 산부인과 진료를 못 받은 채 야근을 반복하며 격무에 시달리던 여군이 출산 다음 날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육군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이신애(당시 28·여군 사관 55기) 중위는 2013년 2월 사망했다. 그해 9월 임신 중 과로로 인한 순직을 인정받았다. 여군의 건강권에 대한 낮은 인식, 낙후된 군 의료 지원체계 현주소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전반적인 군 여건 개선이 동반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 팀장은 “훈련장 여건 자체가 열악하고, 군 인력 자체가 많이 모자라 대체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서 장병의 진료권, 휴식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군의 위생 환경 전반을 개선하고 대체 인력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기사 ▶ 여군에 생리대 보급하는 영국, ‘생리’ 언급도 꺼리는 한국 http://www.womennews.co.kr/news/217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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