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스토킹 신고 건수 중 90%가 현장에서 종결됐다. ⓒpixabay<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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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자문요청 하나를 받았다. 피해자가 스토킹범죄로 고소를 했으나 경찰은 처벌이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단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도 행위자가 피해자에게 계속 전화 해 통화를 시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피해자가 수신차단을 한 상태였기에 통화를 계속 시도하였다는 것만으로 스토킹범죄가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타당한 견해일까?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은 올해 10월 21일 시행되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새 법이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은 물론 하급심 법원의 첫 판례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태다. 아직까지는 법률규정 그 자체와 다른 유형의 범죄에 대한 판례에서 확인되는 해석례를 참조해 잠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밖에는 없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 등을 그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함으로써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은 스토킹행위이며, 이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스토킹범죄다. 

일단 행위자가 여러 번 전화를 걸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하니, 말이나 음향을 상대방에게 도달케 하려는 외형적‧객관적 행위에 이미 착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통상적인 법 감정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스토킹범죄로 처벌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결론을 내기에는 이르다. 협박죄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함께 읽어보자. 대법원은 협박죄를 ‘위험범’으로 해석한다. 말인즉, 누군가의 의사결정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객관화되었다면 설령 침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협박죄 기수범의 성립범위를 비교적 넓게 보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한다.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고지된 해악의 내용이 사람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한다. 상대방이 그 고지된 해악의 의미를 인식하였다면, 설령 상대방이 실제로는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더라도 이미 협박죄의 기수에 해당한다. 다만, 행위자가 상대방에게 해악을 고지하였으나 그것이 상대방에게 도달하지 않은 경우, 또는 도달은 하였는데 상대방이 지각하지 못한 경우, 고지된 해악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이 경우는 협박죄의 미수범으로 처벌된다. 

그러면 앞의 경우에도 스토킹범죄의 기수범은 아닐지라도 미수범으로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닐까? 상대방에게 도달은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실행에 착수한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미수범은 모든 범죄유형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처벌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미수범 처벌규정이 명문으로 마련되어 있는 때에 한해서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협박죄와는 달리 스토킹처벌법에는 미수범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결국 수신을 이미 차단한 상태에서 여러 번 전화를 시도한 행위를 스토킹처벌법에 따라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스토킹범죄에 관해서 미수범 처벌조항을 두지 않은 것이 반드시 입법상의 불비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스토킹행위가 실제로 발현되는 양태는 매우 다종다양할 수 있으므로 미수범 처벌규정까지 둘 경우에는 자칫 행위의 정형성이 지나치게 흐려지고 형사처벌의 경계선이 모호해 질 우려도 없지 않다. 다만, 여러 가지 다른 방식의 스토킹행위를 하던 중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통화 시도까지 한 경우처럼 스토킹행위에 대한 인식과 의욕이 이미 객관적으로 표출된 상태라면, 이때 그 통화 시도를 형벌법규를 직접 적용하여 처벌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양형사유에 있어서 가중요소로서 참작할 수는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유형의 강력범죄로 곧장 이어질 수도 있는 범죄임에도 주거침입죄에 대하여는 올해 초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양형기준이 마련되었다. 스토킹행위는 그 행위의 발현 형태가 매우 다양할 수 있는 만큼 세밀한 규율 기준이 더더욱 절실하다. 스토킹범죄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양형기준이 빠른 시일 내에 마련되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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