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1.jpg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2004년은 우리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시작되었다. 청년 실업률은 7∼8% 수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취업한 청년의 절반 이상이 임시직으로 취업했다고 한다. 이런 끔찍한 수치 뒤에는 여성의 실업률은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 여성빈곤의 심화, 그 속에서 느끼는 여성의 무력감, 정치개혁의 좌절…이런 것들은 연말연시에 하루에도 두 번씩 여의도 국회를 들락거리며 싸워온 여성운동가들이 느끼는 절망감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여성운동은 '끼여들기'와 '새판짜기'사이에서 고민해 왔다. 끼여들기 전략이 정치구조 개혁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지난 몇 달 동안 여성운동은 다른 시민단체와 함께 정치관계법 개정운동에 적극적으로 매달려 왔다. 그러나 지난 10월 이래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이제 3당의 선거법 협상에서 '비례직 축소'라는 결과로 나타날 공산이 크고, 이는 현행의 선거제도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이번의 정치관계법 개정 과정에서 비례직 50% 여성할당이 명문화된 것은 큰 성과이지만, 비례직 인원수가 축소된다면 이 조항이 지니는 의미는 약화된다. 결국 이번 선거법개정운동에서 여성의 끼여들기 전략은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실 앞에서 여성은 '새판짜기'에 대한 명확한 전망과 고민 없이는 스스로가 절망의 벼랑 끝에서 헤어날 수 없음을 좀더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2004년에는 여성들은 빈곤화 방지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확충 및 일자리 창출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최저임금의 상향 조정,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감소 및 처우개선 등은 여성운동이 안고 가야 할 핵심과제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 우리는 새판을 짜기 위한 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여성이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면, 여성은 스스로가 꿈꾸는 대안사회의 상을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대안경제를 말하고, 대안적인 생활방식, 대안적인 소비형태를 말해야 한다. 대안경제를 말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말하는 비정규직 축소나 일자리 창출의 구호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냉정히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자본의 세계화는 앞으로 더욱 일자리를 축소해 갈 것이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부 양심적인 기업가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뉴패러다임 운동이나 그들이 주장하는 '4조 2교대 근무방식'은 일자리 나누기 운동이자, 크게 보아서는 대안경제를 지향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가게' 캠페인은 대안적인 소비, 지속가능한 소비를 지향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이런 구체적인 방안들을 모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업은 대안사회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사회적 담론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대안경제나 대안사회가 구현되지 않고서는 여성의 진정한 행복도 가능하지 않다는 전제에 공감하면서, 이제 우리 여성들도 새판짜기의 전망에 공감하고, 그 담론을 확산시키고 구체적인 실천에도 앞장서야 할 것이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