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는 가정의 CEO
주부는 가정의 CEO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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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는 못 하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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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



1.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여자들

2. 신이산가족 기러기아빠

3. 신세대 시어머니들

4. 변해야 사는 남자들

5. 주부는 가정의 CEO





막강한 소비주체서 '한발 더'

사회·경제문제까지 눈돌려 사교육 등 대안 모색 세력화




여성들의 정치참여 수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됐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의 힘을 비단 정치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막강한 가정 경제권을 가지고 명백한 소비주체로 떠오른 주부들의 파워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다. 백화점 매출의 80∼90%가 여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집과 자동차와 같은 값비싼 소비재를 구입할 때도 주부들의 입김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연간 수조원에 이른다는 사교육의 소비주체 역시 다름 아닌 주부들이다. 그런가 하면 여태까지 소비의 주체로서만 머무르던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를 창출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주부들의 역할이 확대되어 가는 추세이다. 단순히 '가사와 육아'라는 표현만으로는 요즘 주부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자녀교육, 재테크, 인테리어, 요리, 친인척 관리, 건강, 쇼핑, 레저 계획 및 자아계발에 이르기까지 주부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은 끝이 없다.



누구나 쉽게 주부라는 이름을 갖지만 그 수행능력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주부 역시 하나의 직업이라는 프로의식으로 똘똘 뭉쳐 내 가정을 경영하는, 주부 CEO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건강한 주부들의 파워 넘치는 에너지를 느껴 보았다.



가족 건강 책임지는 건강경영



천안의 수향리에 사는 주부 박숙연(42)씨는 아주 꼼꼼한 소비자다. 할인점에서 아주 값싸게 팔고 뭔가를 덤으로 준다고 해서 덥석 사는 법은 없다. 그 식품을 구입했을 때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지, 우리 가족이 그 기간 내에 먹어 소화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그 식품을 샀을 때 우리 집 냉장고의 저장능력까지 고려해서 사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게다가 가족의 건강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그녀다.



병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수시로 내과·외과·산부인과 등을 해를 정해 돌면서 건강검진을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치과의 경우 미리미리 점검해 작은 돈으로 큰돈이 나갈 구멍들을 차단하기도 한다. 해마다 세금공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 돈을 돌려받는 것은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이율이 높은 금융상품에 저축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덕분에 많지 않은 월급으로도 항상 윤기나게 가족들을 건사하고 노후를 대비해 놓고 있어 남편에게 박씨의 존재는 든든한 동반자로, 너무나 고마운 사람임은 물론이다.



주부가 즐거워야 가족도 즐겁다



재작년에 상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이영애(47)씨는 가족치료를 전공하다가 잠시 휴학 중이다.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녀는 김포여성민우회에서 여성학을 들으며 의식의 지평을 넓혀 가다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가족치료 분야에 용기를 내어 늦은 나이에 도전하게 됐다. 살림하랴, 올해 수험생이 되는 딸 아이와 초등학교 6학년인 딸들의 교육에도 열심인 그녀의 하루는 새벽 5시경에 모닝 페이지를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거기에다 일주일 중 하루는 상담자원봉사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자신에게 힘이 됐던 그 여성학 모임의 회원들에게 강의를 한다.



또한 휴학 중이긴 하지만 가족치료학회와 한국상담학회의 각종 사례발표회나 워크숍에 참가할라치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런 바쁜 시간 중에도 그녀의 얼굴은 항상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녀가 생각하는 주부 역할의 핵심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신이 즐거워야 가족도 즐겁고, 철저하게 부부가 중심이 되어 부모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좋은 교육은 없다는 것이다.



사이버 세상 통해 자아계발



본인이 확실히 내 가정의 경영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살았다는 홍영애(44, 대치동)씨는 건설일을 하는 남편이 구미에서 일을 하게 되자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남편을 따라 지방인 구미로 내려가는 삶을 택했다. 서울에 살던 여자가 지방의 중소도시에 살면서 느끼는 갑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방 출장비가 월급만큼 지급되는데다 서울보다 월등히 싼 물가로 인해 생활비가 훨씬 줄어들었다. 더구나 서울과는 달리 사교육의 열풍에서 벗어남으로써 아이들 학원비도 거의 들지 않은 편이라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저축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금융상품에 관한 지식은 갈수록 축적돼 지금은 거의 시중의 은행, 종금사 투자회사의 금융지식에서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아빠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남편과 아이가 살고 싶어하는 삶의 방식 차이가 너무 커 그 사이의 경계인 역할을 자처했다고 한다.



남편에게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는 남편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기꺼운 마음으로 '박쥐나라 간신'이 되어 가족들 중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일에 마음을 썼다.



현실적인 기능에 능한 남편과는 달리 엉뚱하고 호기심 많고 단순한 그녀는 아이들에게도 벽 너머를 볼 줄 아는 방법과 미래에 대한 비전제시를 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고 유지해 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몸소 체험하도록 배려했다.



“나에게도 이런 재능이”



홍씨는 빤질빤질하게 집안을 청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네 마실 잘 다니는 엄마도 좋고, 가족들이 힘들어할 때 보듬어 안아주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집안을 잘 경영해 가는 홍씨는 자신의 17년간의 전업주부 생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한마디로 참 어렵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바친 결과가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남편의 주관에 의해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자식들을 얼마나 잘 키웠나 하는 부분으로 평가되는 현실 때문에 때로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많이 자라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된 홍씨는 최근 '줌마넷(oomanet.co.kr)'이라는 여성 인터넷 사이트에서 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인생이 '천지개벽'하는 즐거운 경험을 하고 있다. 넘치는 끼와 재능을 남편과 아이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쏟아 붓다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다양한 주부들과 자신들도 예상치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이제 주부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육아·먹거리 문제 등 팔 걷어



기존의 유아교육에 문제를 느낀 주부들은 부모가 스스로 참여하는 공동육아를 결성한다거나 먹거리 문제에 발벗고 나서는 주부들의 모임도 많다.



단순히 소비주체로 인식되던 주부들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현상에 대해 연세대 사회학자인 조한혜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까지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던 주부들의 일이 이제는 학교문제, 지역문제를 개선시키는 등 사회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주부들도 분명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 그룹으로 분명히 자리매김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봐요.”



이주영 줌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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