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칼 잡은 여자와 꽃을 든 남자, 젠더 체계 흔들다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칼 잡은 여자와 꽃을 든 남자, 젠더 체계 흔들다
  •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21.11.01 11:05
  • 수정 2021-11-07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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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드라마 ‘연모’
KBS2 드라마 ‘연모’ @이야기사냥꾼, 몬스터유니온
KBS2 드라마 ‘연모’ @이야기사냥꾼, 몬스터유니온

“여자/남자라면 응당 000해야지” 라는 말들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회적으로 적합한 외양과 언어, 태도, 행위를 배워간다. 무수한 이러한 과정들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을 지닌 존재로 만들어진다. 남자와 여자에게 실상 강제되는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체득하고 수행한다. 그리고 이를 위반할 때 소위 ‘여자답지 못하다’ 혹은 ‘남자답지 못하다’며 비난을 받기까지 한다.

왕세자가 된 남장여자 주인공

매주 월화 밤 KBS2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연모>는 쌍둥이로 태어나 여아라는 이유로 버려진 여아가 왕세손의 죽음 이후, 남장을 통해 세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퓨전 사극 로맨스 드라마이다. 남장여자인 세손이 재현하는 남성성의 모습, 그리고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된 남녀 주인공의 관계와 성격 설정은 사회가 부여하는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 그리고 그동안 로맨스 드라마들이 그려왔던 남녀를 둘러싼 재현 관습들을 되짚어볼 기회를 준다. 

남장여자를 내세우는 드라마가 전체 드라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종종 제작되고 또한 꽤 인기를 모은 작품들이 있어 그 설정은 낯설지 않다. <커피프린스 1호점>(MBC), <미남이시네요>(SBS), <성균관 스캔들>(KBS2)과 같은 드라마들은 모두 여자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자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그렸다는 점과, 높은 인기를 끌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연모> 역시 앞서 언급된 드라마들처럼 남장 여자인 주인공을 내세운 로맨스로, 여자주인공의 성별을 남성으로 오해한 남자주인공의 번뇌와 갈등 속에 벌어지는 위장된 동성 간의 사랑을 그린다.  

드라마 ‘연모’에서 주인공 이휘(박은빈 분)는 사회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남성성을 수행함으로써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KBS
드라마 ‘연모’에서 주인공 이휘(박은빈 분)는 사회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남성성을 수행함으로써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KBS

사회가 부여하는 여성/남성다움

기존 드라마들과 달리 <연모>는 주인공의 신분을 왕세자로 설정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멋진 왕자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사회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남성성을 수행함으로써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남장여자 주인공은 굵고 저음의 목소리와 힘찬 걸음걸이 등을 통해 남성의 모습을 재현하고, 더 나아가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는 듯 무예 수련이라는 행위를 통해 왕세자의 역할을 해나간다. 여기에 무뚝뚝하고 냉정한듯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성정도 더해진다. 바로 우리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해왔던 외향과 행위,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주인공이 재현하는 남성스러움의 모습과 반대로, 여성일 때 여주인공은 똑똑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다소 수동적인 면모를 보인다. 드라마에서 남장을 하기 전과 후에 나타나는 여주인공의 말씨와 태도 변화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회가 부여하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다르며, 결국 여자/남자로 키워졌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젠더 체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젠더 체계가 교란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남주인공 위기에서 구하는 구원자, 이휘

이 드라마가 재미있는 점은 남장여인을 통해 젠더 체계의 교란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배경과 관계, 그리고 성격에 있어서도 기존 드라마의 문법을 뒤집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칼을 쓰는 까칠한 여주인공과 꽃을 든 감성적인 남주인공, 위기에 빠진 남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하는 구원자 역할을 하는 여주인공의 관계 설정을 들 수 있다. 기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남장을 했지만 여전히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연모>에서 남녀 주인공의 역할은 전복돼 나타난다. 아무래도 이러한 전복된 역할은 여주인공이 힘/권력을 지닌 왕세자인 반면, 남주인공이 신하라는 신분에 따른 것이다. 이전 드라마에서 남장여인을 할 수 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은 대개 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것이며,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 비해 경제적 혹은 신분적으로 낮은 것으로 설정되었다. 남주인공보다 높은 신분을 지닌 여주인공의 설정은 기존 드라마에서 남녀가 보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뒤바꿔 보여주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연모>가 보여주는 남녀주인공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더 나아가 멋진 여주인공과 감성적인 남주인공 역시 괜찮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방영 초기이기에 남장한 것이 들킨 이후에도 캐릭터 붕괴 없이, 기존 로맨스에서 그려졌던 남녀 관계로의 회귀하지 않은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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