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2020 양성평등문화지원상 수상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홍수형 기자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홍수형 기자

‘미투운동’, ‘다크웹 웰컴투코리아’, ‘N번방’, ‘낙태죄’… 성폭력과 페미니즘에 관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매번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 있다. 지난 20년간 현장과 강단에서 활동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이다. 그는 최초 ‘여성현실연구소’라는 1인 연구소를 열었다. 일간지에 꾸준히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무엇이 진짜 이슈인지 명쾌하게 맥을 짚어준다.

그는 그간 언니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재단,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등에서 일하며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등이다. 특히 지난 20년간 활동하며 쓴 글을 모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뛰어난 페미니즘 입문 서적으로 꼽히고 있다.

페미니즘 이슈를 논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나 군대 성폭력 등이 벌어졌을 때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여성폭력추방주간 기념토론회 ‘젠더 폭력과 결별하다’, 미투 운동 긴급 토론회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 등 토론회에 참석해 페미니즘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왔다.

그는 현재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위원회 자문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전문위원회 전문위원, 위드유 서울 직장 성희롱 성폭력 예방센터 운영위원 등을 맡으며 젠더 감수성과 관련된 문제를 민주시민 교육이나 인권 교육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 여성 운동을 시작한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20년 전에는 자신이 페미니스시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소수였는데, 지금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들이 아주 많아졌을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또 한편으로 페미니즘의 언어나 요구들이 정교해질 것을 요구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예전에는 수업에 들어가면 10% 정도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각자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안티 페미니스트’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이긴 하지만 내 입장은 이거다’하는 식으로요. 예전에는 소수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이 강의 목표였다면, 지금은 사람들을 소통하게 하고 의견을 교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60~70% 정도는 이 문제에 관심과 의견을 가진 상태니까요.”

- 큰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최근 페미니즘의 진일보를 불러온 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자체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한 것도 맞지만, 많은 여성들이 애도하려고 나왔다는 게 되게 중요했어요. ‘강남역 살인 사건’은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했죠. 예를 들면 20대 사이에서 그전까지는 ‘탈조선’이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유행해 왔다면,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지 않으면 당장 오늘 죽을 수 있다’는 마음이 엄청나게 일어났던 사건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지현 검사의 미투도 큰 사건이었어요. ‘여자가 권력을 가지고 검사가 되어도 직장 내 성희롱을 해결할 수 없구나’ 생각했던 충격적이었던 사건이었죠. 관련 법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면, 변화는 요원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군대 성폭력도 충격적이었어요. 피해 여군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마다 크게 보도되는 데도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8년에 군대 성폭력 관련된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한 TF팀에 들어갔었어요. 거기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었지만 바로 2019년 같은 문제가 일어났죠. 군대가 성문제 관심을 가지고 않는 게 느껴졌어요. 실제적 관련된 행사나 교육이든 준비든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졌어야 했는데, 군의 의지도 꺾여 있는 상태였고 관심이 없는 것도 많이 느껴져서 제도를 아무리 만들어도 인적 자원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언론도 데스크가 바뀌어야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군도 지휘관이 바뀌어야 달라져요. 그들이 자체가 시스템인 거예요. 그래서 ‘너희들이 바뀌어야 한다. 당신들이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그들이 안 바뀌니까 바뀔 수가 없죠. 여군 1만 시대고 여군을 점점 늘리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군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야겠죠.”

- 젠더 의식이 바뀌는 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침묵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묻어 두면 지나갈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하는 두려움이 정말 생긴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이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권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20년간 여성운동을 했던 사람 입장에서,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고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최근 X세대가 등장해서 ‘이렇게 하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이야기하는 TV광고가 있었죠. 사실은 1990년대는 야만적인 시대였어요. ‘여자를 강간하자’는 노래를 대학 과가로 불렀고,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성폭력 피해자들이 오히려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앞에 나갈 수 없었죠. 혼전순결이나 가족 이데올로기가 굉장히 세서 여자들에게 성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가치의 하락이 상식이었고, 여자라는 이유로 해고되고, 호주제가 있어서 이혼한 뒤에도 아버지성을 따라갔던 시대였죠. 사람들은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아무도 페미니스트들의 말을 안 들어주고 미친년 취급받는 시절에서, 지금은 그래도 예전부터 페미니스트들이 하던 이야기가 사회적 상식이 돼 가고 있거든요.”

권김현영 교수 ⓒ홍수형 기자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홍수형 기자

- 여성 인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따라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폭력적인 행동들을 통해 변화의 흐름에 거스르려고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여성 이슈들이 있지만, 지금은 존재하고 있는 (계층 간) 폭력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전환이 필요해요. 우선, 여성들 간 양극화가 심화됐어요. 잘난 여자들은 페미니즘의 수혜를 받고 돈으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으니 차별을 부정할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규직·비정규직, 상류층·하류층 사이에 격차가 많이 벌어짐에 따라, 여성들 간의 양극화가 여성들이 연대하는 걸 가로막고 있어요. 보편적인 여성 권리로 같이 상향 상승하는 게 아니라 그 권리는 분배의 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문제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젠더 갈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근본 문제와 해결책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혐오는 정말 위협적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과격한 언어로 남성들에게 대항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미러링’을 사용하는 거예요. 굉장히 폭력적인 말만 남게 된 거죠. 쉽게 말해, ‘이렇게 말하는 방식은 기분 나쁘고 혐오니까 하지 말자고 하는 거야. 그러니 우리 이런 말은 다 같이 하지 말자’는 맥락이 제대로 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갈등 프레임으로 잡았어요. 갈등을 심화시켜서 싸우라고 마이크를 쥐여준 다음, 싸움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도대체 그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생각하면 문제가 달라질 텐데, 근본적인 원인은 들여다보지 않고 현상만 보여줘서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 있어요.

2021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시장의 성 비위 문제로 인해 보궐 선거가 치러졌는데,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건 2030 남자들이 분노했기 때문이다’로 결론 난 거예요. 피해를 받은 20대 여자가 사라지고, ‘남자들이 뭉쳐서 이 승리를 만들어냈다’ 이런 방식으로요. 이런 논의에서라면 계속 특혜를 유지하고 있는 50·60대 남성 정치인들이 제일 이득을 보는 거예요. 20대 젠더 갈등 프레임을 누가 만들고 왜 필요로 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해요.”

- 우리나라만의 젠더 갈등이나 페미니즘 운동의 특징이 있습니까?

“전 세계에서 2015년 이후 온라인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물결이 일어났어요. 그중에서도 한국은 조금 더 대단해요. ‘한국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계속 여성들이 힘을 모아 싸움을 하고 있냐’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고 해요. 미투 운동도 굉장히 광범위하게 일어났고, 어느 곳보다도 여성 운동의 힘이 대단하다면서, 『82년생 김지영』 같은 책이 번역되면서 읽히면서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등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는데), 유교적 가부장제를 말하면서 억압 받고 있는 여성들이 사회 변화의 주체이자 이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로 활력을 만들어낸다는 인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또 이런 일들이 문화 콘텐츠에 직접 반영되어 있다고 하는 걸 흥미롭게 생각하더라고요.”

권김현영은 2020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에서 양성평등문화지원상(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상)을 받았다. 권김 소장은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당연히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선배들을 비판하고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책도 쓴,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는 제게 상을 주셔서 놀랍고 큰 의미가 된다”며 “네가 믿는 것이 사실이고 정의라고 생각한다면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떠들라고 언제나 말씀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 2020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양성평등문화지원상을 수상했어요. 소장님께 그 상은 어떤 의미였나요?

“몇 년간 일상적으로 페미니즘 관련해서 질문과 답을 요구받아 왔어요. 상을 받으니 그간의 피곤이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었고, 앞으로 열심히 해달라는 요청처럼 느껴져서 지쳐 있을 때 환기가 됐어요.”

- 수상 소감에서 부모님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자랐는지 궁금해요.

“오빠가 있긴 했지만, 성차별을 심하게 하는 집은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늘 ‘나 성차별하는 사람이 아닌데’ 하면서 굉장히 억울해하세요. 아버지가 여든이신데, 또래 중에서 제일 깨어 있다고 자부하시는 분이시거든요. 저는 차별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된 것 같아요. ‘우리 아빠도 안 그랬는데’하는 마음이요. 오빠는 성차별의 수혜자가 아니라, 건강이 좋지 않아서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어서 이해를 했죠. 또 가족회의가 일상화돼 있었는데, 어떤 것을 설명해서 설득되면 뭐든 할 수 있었어요.”

권김현영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다. 대학생 시절 우연히 마주친 여성의 빈곤문제는, 그를 페미니즘 연구의 길에 접어들게 했다. 대학 총학생회에서 여성운동을 시작해 졸업 후에는 온라인 여성단체인 ‘언니네’를 결성해 활동했다.

- 대학교 1학년 때 총여학생회 나누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운동에 눈을 뜨게 됐다고 들었어요. 어떤 부분이 마음을 흔들고 움직이게 했나요?

“학교에 붙어 있던 빈민 지역 탁아 운동에 대한 안내문을 보았어요. 당시 학교에서는 철거촌에서 경찰들과 용역 인부들이 와서 사람들을 때리고, 끌고 가고 있다, 집기를 불태우고 있다는 대자보가 자주 붙었어요. 학교 바로 옆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겁도 나고 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서 걱정이었거든요. 그러던 중 탁아운동 안내문을 보고 ‘아이를 돌보는 것 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제가 생각하던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빈민 지역에 들어가서 마을 주민과 살면서 아동센터를 만들고 야학을 만들던 지역 활동가 언니들이 그 지역에서 지역 문제의 해결사 역할 노릇을 하는 걸 보고 감명받았어요. 저는 엄마들이 출근하고 난 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는데, 아이들이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울고 그런 애들은 달래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인데도 되게 힘들더라고요. 여성빈곤 문제는 가족 문제, 노동 문제는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는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여성운동이 계급이나 분단 이런 이슈에 비해 너무 작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전혀 아닌 거예요. 그때 공부했던 사회과학에 대한 한계가 그 몇 번 안 되는 빈민 지역 탁아 운동으로 다 깨졌어요. ‘여성의 삶에는 정말 여성학이 답이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게 됐어요.”

- 대학교 1학년인데 기특한 생각을 했네요.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중학생 때 언니가 대학생이었는데, 운동권이었어요. 아버지에게 언니가 혼이 많이 났어요. 그걸 보고서 속으로 ‘혼나면서까지 뭘 하고 싶어 하지?’ 그러면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언니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던 운동권 학생이었는데, 20~30년이 지나고 난 지금 언니가 열혈 페미니스트가 됐어요. 언니의 삶에 페미니즘이 되게 중요했던 어떤 순간들을 만나면서, 언니도 제게 영향을 받았죠.

우리들은 또 엄마에게 영향을 받았어요. 엄마는 딸들에게 ‘나처럼 살지 말아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가 ‘엄마와 다르게 살아도 된다. 다르게 살아도 네 인생이다’라는 의미가 강했어요.”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씨가 10월 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1에서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운드 테이블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2016년 10월 8일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씨가 서울 서대문구에서 벙커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넷페미사' 강연에서 설명하는 모습. ⓒ여성신문

- 20년이나 페미니즘 활동을 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지난 100년간 유일하게 성공한 혁명은 페미니즘 혁명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변화를 볼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운동 영역이라고 합니다. 반응들도 계속 달라지기도 하고요. 오랜 무관심 속에서도 페미니즘은 무궁무진한 영역이라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상태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 더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해요.”

권김현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성공회대, 명지대, 국민대, 이화여대, 연세대, 성균관대, 홍익대 등 여러 대학에서 ‘여성학’, ‘현대사회와 여성’, ‘여성과 정치’, ‘페미니즘 정신분석’, ‘여성과 심리’, ‘예술가의 젠더연습’ 등을 강의해 왔다.

- 페미니즘 강의를 다니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경험하셨을 것 같아요.

“20대부터 강연을 다녔어요. 총여학생회장을 하면서 해야 할 강의가 있었고, 졸업하고 난 뒤에도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비교적 빨리 온 편이었어요. 20대에는 공격을 꽤 받았는데, 30대 중반 이후부터는 강연장에서 공격하는 사람 못 봤어요. 남녀공학에서 이골이 난 편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남자들에게는 ‘내가 당신보다 이 문제에 대해 더 압도적으로 많이 알고 있고, 이 문제에 있어서 권위자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게 설득되면 그다음에는 저항이 덜해지거든요.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풀어가다 보면 그게 설명이 돼서 끝난 적도 많아요.

다른 주제이긴 하지만, 공격적으로 나왔던 학생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트랜스젠더를 혐오한다’라며 ‘혐오’를 정당한 감정이라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그 문제만 가지고 4주 정도 토론했어요. ‘혐오의 감정이나 근거를 하나씩 이야기해보자’면서 뭐가 문제인지 충분히 대화가 됐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지속했죠.”

- 4주에 걸친 토론이 끝난 뒤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걸로 아주 극적인 변화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 저는 ‘충분히 이야기를 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많은 경우에 근거가 없거든요. 충분히 대화하면 감정이 풀리기도 하고요. 수업이 끝난 뒤 이메일을 받았는데, 자신이 트랜스젠더나 퀴어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무서웠다’면서도 ‘수업이 안전했고, 대화가 극단적으로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는데, 이야기를 하니까 낫더라’고 하더라고요.

혐오의 감정이 금방 달라지지는 않지만, ‘이건 감정의 문제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두려움이라는 걸 직면하기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엉뚱하게 풀었구나’ 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가야 되는 것 같아요.”

-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운동을 소개할 일이 있다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가끔 제게 ‘페미니즘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일부 변질된 페미니즘 때문에 자기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일부 변질된 페미니즘, 그거 말고 본인이 동의할 수 있는 페미니즘에 지지하면 되지 않아?’라고 하죠.

낙인찍힌 집단들이나 소수 집단들은 그 집단의 가장 나쁜 모습들, 극단적인 문제로 여겨지는 모습들만 회자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이고, 그것에 동의하는 페미니스트는 적어도 내 주변에 한 명도 못 봤다’고 말하면서도, 몇몇 나쁜 사례 때문에 모든 페미니즘, 모든 여자들이 욕먹는 게 되게 허무해요.”

- 결국 페미니스트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쨌든 페미니즘이 새로운 상식이 돼야 하고, 상식이 됐을 때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바뀌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구나’, ‘이러면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겠구나’하는 세상이 올 거예요. 차별이나 혐오를 가진 사람들에게 ‘너 차별주의자야?’하면 그렇다고 말 못 하거든요. 지금은 큰 변화가 다가오기 직전의 단계라 싸움이 격렬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잘 싸워내야 진짜 변화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자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사상인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남자든 성소수자든 자유롭게 평등하게 되겠죠. 페미니즘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게 만들 수 있는 국면을 만들어 내는 운동이니까요. 지금처럼 모두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것 보면, 그만큼 페미니즘이 영향력 있는 세상이 됐고, 변화는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2016·2017년 사람들이 네이버 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페미니즘이에요. 저항이 있는 건,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거겠지요.”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2021년에는 여자들 간 관계에 집중한 책을 한 권 낼 것 같아요. 여자들 간 관계는 색깔이 매우 다양합니다. 꼭 연대만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서로를 살리고 영향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덜 드러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교육 관련 저항이 거센 상황이라, 한편에서는 성평등 교육이 법적으로 의무화됐으나 그것에 저항이 만만치 않게 오는 상황이라 고민하고 연구해서 영역들을 결과물을 내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 여성현실연구소를 만들었어요. 연구소에서 현장에서 필요한 페미니즘 지식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그런 일들을 시작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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