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여 노동할 수 있는 나에게 감사하며... 팔십에도 지게로 땔감을 나르는 어르신. ⓒ박효신 작가
움직여 노동할 수 있는 나에게 감사하며... 팔십에도 지게로 땔감을 나르는 어르신. ⓒ박효신 작가

집 뒤 대흥산 중턱에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 있다. 팔십 넘어 허리는 기억자로 꼬부라졌지만 어찌나 부지런하신 지 텃밭에 고구마며 배추며 계절 따라 고루고루 심어가며 언제나 밭에서 무언가 하고 계시었다. 아래 동네에서도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 외딴 집이라 살기도 불편할 터인데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모셔 가려 해도 ‘싫다’, 그러면 편안하게 산 아래 마을에 집을 지어 준다고 해도 ‘싫다’ 하시며 수십 년 살아온 오막살이 그 집을 고집하며 사신다 했다. 가끔 하던 일 멈추시고 텃밭에 털퍼덕 앉아 해바라기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표정이 정말로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할머니가 보이질 않는다 싶더니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집은 점점 잡초에 덮여가고 있었다. 오늘 동네 아낙들과 산을 오르다 그 집 앞을 지나가며 ‘할머니가 아래로 내려가셨나?’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온양 아들네로 갔대. 아. 영이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인 노인네를 발견했다네. 그날 이상하게 이 집을 가보고 싶더래. 그래서 와 보니 항상 밭에 있던 할머니가 보이질 않아서 이상하다 하며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벌써 며칠 째인지 방은 어지럽고 노인네는 인사불성으로 누어 계시더래. 그래서 바로 아들네 전화 해서 모셔갔다네.”

이런 상황은 시골 동네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과 편안하게 함께 사는 것보다는 죽는 날까지 늘 해오던 일 하면서 흙 만지고 사는 것이 더 편하고 행복한 노인들이니 말이다. 그들의 소원은 오로지 ‘밤새 자다가 죽는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속한 인터넷 카페에 물 좋고 산 좋은 강원도에 살면서 평소 개인생활도 열심히 하시고 자원봉사도 적극적으로 하시고 두루두루 베풀며 살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한 분이 건강 문제로 글을 올렸다.

“서울 유명 대학병원에서 나와 무료 건강검진을 한다기에 ‘산골에 사니까 이런 혜택도 밭는 구나’ 하며 생전 안하던 건강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는 게 병이라고 남편은 정상인 반면 나는 ‘전문의와 상담요망’이라고 나온 거예요. 게다가 신체 나이가 남편은 실제보다 젊게 나오고 나는 실제보다 다섯 살이나 위로 나왔어요. 우울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더군요 살아온 세월을 더듬자니 원통한 것이 왜 그리 많은지... 건강은 건강할 때 챙기라고 친구들한테 큰소리 빵빵 치면서 정작 내 건강은 요 모양이라니... 제발 결과가 대수롭지 않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손발이 저리고 붓는 증상을 보면 은근히 걱정됩니다. 자다가도 손이 붓고 저려 잠이 깨곤 하거든요. 올해는 건강을 챙기고 지키는 해로 삼아야겠습니다. 내가 없으면 다 없어진다는 것, 아프면 서럽다는 것,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것, 다시금 곱씹어봅니다. 공연한 걱정인지, 한 달 넘게 만사 귀찮고 마음에 병이 더 나를 병들게 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걱정에 대해 언제나 용감하고 당당하게 사시는 다른 한 분이 댓글을 붙여주었다.

“나는 맘을 이렇게 먹고 살아요. 아주 큰 병에 걸리면 절대 병원 안 가고 그대로 살고(암이라든가 등등) 너무 많이 아프면 그날까지 진통제 쓸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예방 진료도 안 받으러 갈 거예요. 우리 마을도 일 년에 한 번씩 공짜로 진료 와요. 공짜 좋아 해도 안 가요. 호호호... 알게 되면 병이니까 호호호... 먹는 것도 입에 당기는 것만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마음도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며 살고요. 내 옆에 있는 동물 식물들 사랑해 주면서 맛있는 공기 마시며 맛있는 물마시며 맨발로 땅 밟으며 땅에 털퍼덕 주저앉아 흙 만지며... 이렇게 근심 걱정 모두 버리고 어느 날 불현듯 맞이할 소풍 끝나는 그날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몸 건강히 살아준 내 나이에 감사하며.. 원도 없고 한도 없습니다. 행복해요.”

나도 이제 나이 들어가니 남은 날들을 어떻게 아름답게 살다 갈 것인지에 대해 가끔 생각해본다. 잘 살아야 앞으로 이십 년 남짓인데 그저 바라는 것은 건강하게 일하며 살다가 내가 사랑하는 흙 속에 거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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