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생식능력 제거’ 없이 성별 정정 첫 허가..."필수요건 아냐"
법원, ‘생식능력 제거’ 없이 성별 정정 첫 허가..."필수요건 아냐"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10.22 10:15
  • 수정 2021-10-2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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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가정법원 신청사 전경. ⓒ수원가정법원
수원가정법원 신청사 전경. ⓒ수원가정법원

자궁난소적출술이나 고환적출술 등 생식 능력 제거수술이 성전환자 성별 정정의 필수요건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수원가정법원 가사항고2부(재판장 문홍주)는 지난 13일 트랜스젠더 남성(출생 시 지정 성별은 여성이었으나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 A(21)씨가 낸 성전환자 성별정정(등록부정정) 신청을 허가했다. "생식능력 제거 수술이나 외부성기 성형수술은 성별정정의 필수요건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자궁적출술과 같이 생식능력의 비가역적인 제거를 요구하는 것은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신체의 온전성을 손상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나치게 제약한다”고 결정했다.

성별정정을 신청한 A씨는 중학교 3학년 무렵 남성으로 성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2018년 성전환증 진단을 받아 남성호르몬요법을 시작, 양측 유방전절제술도 받았다. A씨는 남성호르몬요법을 거치면서 외모와 목소리 등이 남성화됐고, 남성으로 생활해왔다. 2019년 12월, A씨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맞도록 법적 성별을 남성으로 정정해달라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수원가정법원 안산지원에 신청했다.

2020년 4월 1심 재판부는 “신청인이 자궁난소적출술 등은 받지 않았다”며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일부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A씨의 성별정정 신청을 기각했다.

항고심은 달랐다. 수원가정법원 가사항고2부는 “자궁적출술과 같이 생식능력의 비가역적인 제거를 요구하는 것은 성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신체의 온전성을 손상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서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 등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결과가 된다”고 판시했다.

또한 “외부성기 형성수술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이 아니어서 비용이 많이 들고,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고난도의 수술로 건강상 위험과 상당한 후유증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A씨가 지속적인 호르몬치료로 남성 수준의 성호르몬 수치와 2차성징을 보이며 장기간 무월경 상태가 유지되고 있고, 현재 모습에 대한 만족도가 과거 여성으로 지냈을 때보다 분명하다"며 여성으로의 재전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법원 판단은 지난해 2월 대법원 사무처리 지침 변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법원은 성전환자 성별정정(등록부정정) 사건에서, 생식능력 제거수술이나 외부성기 형성수술여부를 허가기준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 지침’을 개정해 “외부성기가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여부”를 ‘조사사항’이 아닌 ‘참고사항’으로 변경했다.

다만 대법원의 지침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법원에서 성전환자 성별정정 사건에서 생식능력 제거수술이나 외부성기 형성수술을 성별정정의 필수요건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대법원 지침에 있는 해당사항을 아예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따르면 이미 해외의 많은 국가에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절차에서 성전환수술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1년 개인의 생식능력을 영구적으로 제거하고 외부성적특징을 바꾸는 수술을 받도록 하는 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권리와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7년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에서 원치 않는 불임수술을 조건으로 하는 것은 유럽인권협약에서 정한 사생활의 존중에 대한 권리, 신체의 완결성에 관한 권리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9월에는 대만의 타이페이 고등행정법원이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했다.

이번 법원 결정에 대해 신청인 A씨는 “성별정정 허가 소식을 듣고 안도하는 마음과 기쁨이 크다며 법원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고 뿌듯하다”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그동안 대부분의 법원들은 사회통념을 들어 별 고민 없이 성별정정 요건으로 성전환수술을 필수적으로 요구해 왔다”며 “이번 수원가정법원 결정은 트랜스젠더의 자기결정권, 인격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 측면에서 성별정정 요건으로 성전환수술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환영했다. 이어 “성별정정 절차가 형식적 요건 구비여부 보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구체적 삶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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