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남편, 양육비 투쟁...나는 싸우는 엄마다
폭력 남편, 양육비 투쟁...나는 싸우는 엄마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1.10.23 11:33
  • 수정 2021-10-23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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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아내폭력 생존자 ①
이루리 (사)양해연 부대표
위협·폭력 남편에 소송 이겼지만
양육비 미지급 문제 겪고 활동가 돼
“고통받는 여성들 곁에서
문제 해결 도우며 살고파”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가정, 그러나 한국 여성 대부분은 일생에 적어도 한두 번은 남편이나 애인에게 폭력을 당한다. 2009~2020년까지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 위기에 처해 기사화된 여성만 1072명이다(한국여성의전화). 폭력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숨어 살던 여성들은 이제 당당히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 이루리 (사)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는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해 혼자 아이를 기르는 지금까지 가해자의 위협, 사회의 편견 속에서 고군분투한 경험을 들려줬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아내폭력 피해자들에게 안전한 공간인지, 경찰과 사법기관이 아내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묻게 한다.

이루리(41·가명) (사)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 ⓒ여성신문
이루리(41·가명) (사)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 ⓒ여성신문

폭력 남편을 피해 여섯 달을 숨어 살았다. 집을 떠나고도 가해자에게 갖은 위협과 폭행을 당했지만, 맞서 싸웠다.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소송에 나서 4년 만에 이혼했다. 이루리(41·가명) (사)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는 이제 다른 아내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양육비를 떼인 이들을 돕는 활동가가 됐다.

그의 전남편 박모(40) 씨는 결혼생활 1년 반 동안 자주 아내를 때렸다. 젖먹이 아기 앞에서도 물건을 부수고 칼까지 들었다. 이루리는 2012년 아기와 함께 친정으로 떠났다. 2주 뒤 찾아온 가해자가 문을 발로 차고 소리치며 협박했다. 경찰은 직접적 폭행이 없었다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없고, 접근금지 신청도 어렵다고 했다. 여성긴급전화 1366 상담원의 권유로 18개월이 된 딸과 한국여성의전화의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로 갔다. 6개월간 숨어 지내며 이혼소송을 준비했다.

“아줌마, 맞은 동영상 있어요?”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간 날, 남자 형사의 말에 기가 막혔다. 다른 피해자들과 상담하면서 경찰의 2차 가해는 흔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맞을 짓 했으니까 그런 거 아냐”, “좀 참으시지 뭘 이런 일로 경찰서까지 오고 그러세요” 같은 말을 하는 경찰들이 요즘도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의 71.1%가 가족이나 수사·재판 기관에서 유발된다(한국여성의전화, 2021).

이혼소송은 2012년 시작돼 2015년 끝났다. 형사소송에만 2년이 걸렸다. 변호사는 형사소송을 포기하고 합의를 봐서 빨리 끝내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이루리는 자신의 일기장, 병원 진단서, 가해자 본인이 쓴 반성문 등 증거와 증인들을 모아 소송을 이어갔다. 결국 박씨는 아내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2014년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가정법원은 이듬해 박씨를 유책배우자로 인정, 이혼 판결을 내렸다.

이루리 본인의 의지도 굳셌지만, 여성단체와 가족·동료·지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가정법원은 원래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어요. 제가 겪은 일들을 부부싸움 정도로 여기는 듯했죠. 법정에서 가해자가 절 폭행한 적 있었는데도요. 이혼소송 내내 불안했어요. 소송 중 남편이 아내를 협박하거나 보복 폭행·살해하는 일도 적지 않으니까요. 제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할 때마다 도와주고 지지해 준 가족, 지인, 동료들이 아니었더라면 계속 싸우지 못했을 거예요. 형사사건 유죄 판결이 나오자 그제야 가정법원도 이혼 판결을 내리더군요.”

그리고 양육비 전쟁이 시작됐다. 박씨는 ‘2012년 12월부터 매달 6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8년간 무시했다. 2020년 1월 기준 이루리가 못 받은 양육비는 5000만원을 넘겼다. 양육비이행관리원, 법률구조공단도 ‘현행법으론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양육비 이행률은 36.1%에 불과하다. 한부모 가정 10명 중 6명은 옛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화나서 피켓 들고 국회, 청와대, 광화문 다 찾아다니며 외쳤어요. 양육비 미지급 해결하라! 이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 학대다!”

가해자를 찾아가 직접 따지기도 했다. 2020년 1월, 박씨는 동대문소방서의 ‘전통시장 전문 의용소방대원’으로 발탁됐다. 이루리는 서울 청량리 청과시장에서 열린 명패 수여식 현장에 찾아갔다. 박씨를 향해 “양육비 왜 안 줘!” 외쳤고, 소방서장에겐 “가정폭력범에게 명패를 주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다 박씨에게 맞아 뇌진탕과 타박상 진단을 받았다. 동행 취재하던 기자 2명도 박씨에게 폭행당해 각각 손가락 골절, 찰과상 등을 입었다.

박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됐고, 의용소방대원도 면직 처리됐다. 같은 달 미지급 양육비의 약 80%인 4500만원을 냈다. 박씨 가족이 이루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시장 상인들에게 거짓 진술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역으로 벌금을 물었다. 하지만 박씨는 아직도 나머지 양육비, 위자료를 내지 않았다.

2020년 9월11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다도시 숙명여대 불문과 교수,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21대 국회에 양육비 문제 해결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2020년 9월11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다도시 숙명여대 불문과 교수,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21대 국회에 양육비 문제 해결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2020년 5월18일 양육비해결총연합회와 여성의당이 국회 정문 앞에서 ‘양육비 이행 강화 법안 통과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2020년 5월18일 양육비해결총연합회와 여성의당이 국회 정문 앞에서 ‘양육비 이행 강화 법안 통과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이루리는 다른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사)양육비해결총연합회를 운영하고 있다. 상담과 소송 지원부터 입법 촉구 시위, 인식개선 캠페인 등 여러 활동으로 양육비 제도의 미비함을 널리 알렸다. 관련 법제도 개선에도 기여했다. 지난 7월부터 양육비 채무자는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되고,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에 더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전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어요. 폭력 남편을 만나고 이혼소송, 양육비 투쟁을 하면서 전사가 됐어요. 엄마라서 이 싸움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상식적인 사회를 물려주는 게 어른들의 책무니까요. 1인시위를 해보니 세대와 환경별로 인식이 너무 달랐어요. 아파트 살며 아기 키우는 엄마들은 공감하는 반면, 전통시장에서 만난 노인들은 ‘양육비가 뭐야?’ ‘애 낳았으면 자기가 키워야지’ 하더라고요.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내 아이, 주변 사람들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 11월25일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마음대로, 점프!’ 첫 단독공연이 열렸다. ⓒ한국여성의전화/김희지 작가
2020년 11월25일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열린 ‘마음대로, 점프!’ 첫 단독공연. ⓒ한국여성의전화/김희지 작가

그는 양육비 문제 활동가로 일하느라 분주한 한편, 아내폭력 피해자들과도 꾸준히 연대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하는 가정폭력 생존자 예술치유 프로그램 ‘마음대로, 점프’ 활동도 2019년부터 2년째 이어가고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른 생존자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고 합동 공연도 했다. 가해자를 피하기만 했던 이루리가 가정폭력 피해와 이혼 경험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양육비 문제를 겪는 이들의 70%는 아내폭력 피해자예요. 가해자가 해코지할까 무서워 양육비 소송조차 고민하는 여성들, 숨어 사는 여성들이 많죠. 지금도 샤워하다 제 몸의 흉터를 보면 그때 기억이 떠올라요. 절대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폭력 트라우마는 여전한데 양육비도 못 받고, 내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고, 그러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떠밀리는 여성들이 있어요. 저는 고통받는 여성들의 곁에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활동가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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