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원/ 문학평론가

무슨 '주의'나 이즘(ism)은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형태를 띠게 마련이다. 식민지 시대의 서구화 지상주의도 그러하다. 그 외화(外化)의 한 형태가 미적 기준의 서구화라고 한다면 놀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허나 1920, 30년대의 여성 잡지에 보면 미인을 소개하는 자리에 서구 여성이 모델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 식민지 시기부터 그랬다고? 그렇다. 단지 등장한 것이 아니라 매우 빈번하게 등장했다. 이는 서구화 지상주의의 구체적 외화다. 개항과 더불어 밀려들어 온 서구 물품과 새로운 문화 사조, 교육의 대중화 등은 폐쇄된 조선 현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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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서구여성의 삶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자극을 주었던바, 서구 여성의 학식, 내외법에 얽매이지 않으며 각종 연회에 동참하는 풍습 등을 소개하면서 남녀평등의 이상을 내세웠다. 여성해방론의 대표적 논객이었던 나혜석의 경우도 이러한 서구지상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는 조선 여성의 지위와 행복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구미 여행을 선택했고 1932년 12월부터 1934년 9월까지 <삼천리>에 구미 여행기를 발표한다. 그녀가 체험하고 관찰한 구미 여성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자유를 좋아하고 활발한 미국 여성은 사회적으로 개방주의요, 개인적으로는 폐쇄주의다. 사(…중략…)고상하고 착실하고 점잖은 미국 여성은 때로는 봄 하늘과 같이 청명하다가 때로는 가을 하늘과 같이 황망하다.(…중략…)하여튼 그들은 인생관이 서고 처세술이 서 있다. 사람인 것을 가작하였고 여성인 것을 의식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배우자는 것이요 흉내내자는 것이다.

이처럼 개화의 노선이 유지되면서 서구 문물이 유입되고, 이에 따라 서구 여성의 삶이 소개된 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면은 조선의 문화를 세계에 견주어봄으로서 조선의 가부장 문화가 지닌 여성 억압적 측면이 뚜렷하게 부각됐다는 점이다. 그들은 외부세계를 통해 오히려 조선 여성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알게 됐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됐다.

그러나 민족적 정체성이 훼손되어 가는 가운데 불어닥친 서구 지상주의는 조선인이 자신의 주체감을 형성하는데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일제에게 빠른 조선의 산업화, 도시화는 중요했으나 조선 민족의 정체성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구 지상주의는 가속화됐다.

개화와 더불어 여성들은 일시적으로 활란(헬렌), 미리사, 마리아, 에시덕(에스터)과 같은 외국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기도 하고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라 자신의 성을 바꾸는 경우도 생겼다.

하난사, 이홍경, 박에스터와 같은 근대 초기 신여성들은 남편의 성을 따라 자신의 성을 바꿨다. 근대화가 서구 따라하기로 이해된 것일까? 이러한 일들은 근대 초기에 벌어진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얀 피부와 수직적으로 긴 서구 여성의 외모가 미인의 전형으로 제시되면서 미적 기준이 서구화된 것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화장품 광고문구는 백색피부를 강조하고, 잡지 화보에는 버젓이 서구 미인이 등장하게 됐다. 강화도 조약(1876년)에 따른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는 신식 메이크업 테크닉과 화장법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처음에는 주로 일본과 청나라로부터 유입됐으나 한일합방 이후 1920년대에는 수입선이 프랑스를 주로 한 유럽으로까지 확대됐다.

수입화장품은 주로 크림, 백분, 비누, 향수 등이었는데 여성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식민국가로서 제국주의의 기획에 노출된 조선, 그 중에서 봉건적 억압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서구는 반봉건의 기치를 들게 하는 자각의 계기이면서 전통 거부/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배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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