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집안일로 허리 휘는데 경영주는 남성만… 여성농민 전담부서 필요
농사·집안일로 허리 휘는데 경영주는 남성만… 여성농민 전담부서 필요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10.15 09:08
  • 수정 2021-10-15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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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X 여성신문 공동기획 특별좌담회
[여성농업인, 농어촌 미래의 힘이다]

50.1%. 전체 농가 인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다(통계청, 2020 ‘농림어업총조사’). 2000년대부터 여성농업인이 늘면서 농업의 주요성장동력이 됐지만, 농지를 소유한 여성농업인은 37.3%, 집이나 건물을 소유한 여성농업인 비율은 36.37%에 불과하다( 2018 ‘여성농업인 실태조사’).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지어도 가사·돌봄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도 여전하다. 여성신문은 ‘세계여성농업인의 날’(10월15일)을 맞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함께 한국사회에서 농민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편집자주>
좌장
김영란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목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패널 
양옥희(63)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이숙원(58)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회장
임연화(55) 전남 나주시 여성농업정책팀 팀장
장슬기(34)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 대표

김영란
“성평등 농촌이라는 토대 마련돼야
여성농업인 정책도 실효성 가져”

양옥희
“마을행사서 여성은 보조자 역할만…
농업인 중심으로 정책 방향 전환해야”

이숙원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참여하는
농어촌 성평등교육 확대 중요”

임연화
“관 주도 성평등교육 참여율 높아
정책 집행에 리더 역할 중요”

장슬기
“결혼 왜 안 하나 주위 시선에
여성 청년농 이중 부담 느껴”

 

좌장 “지난해 시작한 ‘희망을 만드는 농어촌 여성정책포럼’의 결과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산하에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위원들은 정책이 마련돼도 결국 성평등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는데 공감했습니다. 성평등한 농촌이라는 토대 위에 농어촌의 변화도 구체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각자 일상, 농업을 하며 느낀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이숙원 “결혼하고 30년간 농사를 지었어요. 하우스 30동, 벼농사에 못자리뱅크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눈물이 날 때도 많았어요. 남편과 같이 밭에서 호박, 토마토를 따고 선별해 박스 작업까지 하고 나면, 남편은 볼일을 보러 나가요. 저는 그럴 수 있나요. 산 넘어 산이죠. 육아, 가사는 여성들이 도맡아했죠. ‘여자는’ ‘여자가’ 소리까지 듣던 시대였어요.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죠. 하지만 아직도 성평등은 여성들만 이야기를 해요. 이런 자리에도 남성이 함께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양옥희 “한국사회에서 여성농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치 않아요. 마을행사 때도 여성들은 보조자 역할을 합니다. 행사 며칠 전부터 시장 보고 음식 장만하고 뒷정리까지 도맡지만 여성에게는 부녀회장 타이틀이 전부에요. 남자들은 차려입고 앉아 있지만 여자들은 앞치마 입고 서있습니다. 정책 방향도 문제에요. 부부 중 남성이 경영주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만약 교통사고가 나면, 경영주는 일당 1만원 기준으로 보험금 보상을 받지만, 그 외는 가족 종사원으로 분류돼 일당이 5000원입니다. 6년 전 어렵게 공동경영주 제도가 도입됐지만 기본법에도 지위를 인정하는 조항이 없어요. 게다가 공동경영주는 겸업도 할 수 없고요. 성평등을 가로막는 농가 중심의 정책이 개인별로 바뀌어야 해요.”

좌장 “장슬기 대표는 도시에서 공부 하다 20대에 귀농했잖아요. 이런 농촌 문화를 고려한 선택이었나요?”

장슬기 “농업에 대한 직업적 생각만 했지, 농촌 문화 속 가부장 문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흔히 직장을 구할 때 직업적인 부분만 고려하잖아요. 그 직장이 어떨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취업하진 않으니까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 시작한 농업은 새로운 세상이었어요. 농업을 하며 놀랐던 점은 절 보는 시선이 이상하다는 것이었어요. ‘진짜 농업 하는 게 맞느냐’는 의심부터. ‘왜 농업을 하느냐’며 의아하게 보기도 하고 ‘하려던 일에 실패해 내려온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어요. 결혼 걱정도 많이 해주셨어요. ‘왜 결혼 안하느냐’ ‘농촌 가면 결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등. 귀농을 ‘집에서 논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무수히 많은 편견 속에서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제 갈 길 열심히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다른 청년여성농업인과 대화해보면 독박가사를 하는 어머니를 도와드리려고 가사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고요. 잠들기 전까지 계속 일하는 어머니를 보며 도와드리는 거죠. 저는 농업을 잘하고 싶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면 원더우먼, 슈퍼우먼이 돼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게 돼요. 일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혼도 늦어지는 것 같아요.”

임연화 “10여년 전만 해도 마을행사를 열면 여성들은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남성은 뒷짐만 지고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그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농업인 지원팀장을 맡으며 여성농업인이 인격체가 아닌 부엌떼기로 취급받는 현실을 바꿔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현실적으로 여성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자체 산하 위원회에 여성들이 참여해 정책과 문화를 바꾸는데 나서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아요. 네덜란드의 경우, 법으로 성별 비중을 50대 50대로 정했다고 합니다. 다만, 농촌에 오는 여성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정책과 문화 속 농촌에 누가 들어오려 하겠냐는 거죠.”

김영란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이숙원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회장, 장슬기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 대표, 임연화 전남 나주시 여성농업정책팀 팀장.  ⓒ홍수형 기자
김영란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이숙원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회장, 장슬기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 대표, 임연화 전남 나주시 여성농업정책팀 팀장.  ⓒ홍수형 기자

좌장 “여성농민들이 변화를 요구하는데 변화는 더딥니다. 일례로 마을회의 임원은 대부분 남성이에요.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마을 분위기도 중요한데,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가야 할까요.”

이숙원 “그동안 단체 활동을 하며 눈치를 보거나 몰래 감추고 활동한 적은 없어요. 당당하게 회의에 나가고 교육을 받았어요. 저희 동네분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오송읍에서 가장 먼저 여성조합원에 등록하자고 권유해 모두 참여했어요. 부족한 기금은 함께 대출받아 갚아나갔고요. 이렇게 여성들이 서로 독려하고 챙기면서 함께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마을총회에도 여성들이 모두 참석합니다. 다만 변화가 더딘 부분도 있어요. 식사 때 여성들은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까지 하지만, 남성들은 양복 입고 앉아 있어요. 식사도 남녀 따로 차리고요.”

좌장 “최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성평등마을규약을 만들어 마을의 변화를 꾀하고 있지요.”

양옥희 “제주 성평등마을규약 사업을 3년 전 시작했어요. 돌봄과 봉사를 도맡는 여성들이 마을 단위 공동체에서도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을규약을 정해 여성 대표성을 높이려고 노력했지요. 성평등교육을 받고 관련 영화를 보며 인식을 바꾸면서 마을규약을 바꿔가고 있어요. 지금까지 7개 마을규약이 개정됐어요. 그렇지만 사업 제안부터 쉽지 않아요.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정부 지원이 있다면 더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임연화 “나주시는 2019년부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시가 교육 진행을 정하고 마을에 공문을 보내면 마을 차원에서 일정을 정하고 주민들도 적극 참여합니다. 아무래도 관이 주관하면 전달도 잘 되고 신뢰도 높으니까요. 얼마 전 성평등교육 강사 양성 관련 현수막을 30곳에 붙였는데, ‘남녀 인건비를 똑같이 줘야 하느냐’는 문의부터 ‘왜 양성평등이 아니냐’는 항의를 하는 사람까지 반응이 많았어요. 지금은 성평등교육 대신 ‘행복한 마을만들기’라는 표현을 씁니다. 지자체 여성농업인 정책 담당자 교육도 필요합니다. 지자체가 여성농업인육성계획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농림축산식품부가 나서 각 시도의 담당자 교육을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이숙원 “세대별로 성평등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커요. 농업에 종사하며 가까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육이 마련돼야 합니다. 농협이 주부대학을 만들었던 것처럼 성평등대학을 설립해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어르신도 성평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어요.”

양옥희 “마을이장, 선출직 조합장도 성평등교육을 의무로 받아야 해요.”

장슬기 “도시에 살던 청년농업인들이 농촌에 오면 문화 격차를 느껴요. 성인지 감수성 교육과 함께 문화적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요. 성평등이라는 말은 사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취지잖아요. 그런데 성평등이라는 말을 했다가 오해를 받거나 공격받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 일이 생기니 말을 할 때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요. 성평등, 성인지 감수성 같은 표현을 자주 노출해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끼고 정확하게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인식을 확산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좌장 “농특위는 실질적인 여성농업인의 권리와 평등 보장을 위해 공공기관과 단체, 개인의 의견을 듣고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선 선후를 따지지 않고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동경영주제도 보완과 여성농업인육성조례 개정을 통한 여성농업인 전담부서 설치가 된다면 현장에서 여성농민에 대한 정책, 사업을 다룰 수 있는 공적 체계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추는 것이 평등이라고 한다면, 여성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농어촌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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