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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장금이가 수랏간에서 제주도로 쫓겨갔다가 의녀가 돼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수랏간 최고 상궁의 자리에 오른 금영과 마주친 장금. 갑작스런 장금의 출현에 눈이 휘둥그레진 금영에게 장금이가 또박또박 말한다.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셔야 할텐데요.”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러야했던 목숨을 건 싸움과 경쟁자를 향해 휘두르던 무자비한 칼날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금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드라마에 빠져 있던 내게 그 질문이 불쑥 다가든다.

“행복하십니까?”

'마음에 차지 않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어 기쁘고 넉넉하고 푸근함, 또는 그런 상태'를 일러 '행복'이라 한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나는 행복할까? 나의 행복은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일까? 아마도 나처럼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전문상담가 코언(Cohen)이라는 사람은 무려 18년 동안 100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80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 즉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상황을 고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는 2002년 '행복공식(formula for happiness)'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2003년 초 한 시사주간지에서 이 '행복공식'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계산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100점 만점에 평균 64.13점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남녀간의 차이는 거의 없었지만 나이와 지역별로는 차이가 많아서, 10대의 행복지수가 71.43으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는 60대, 50대, 40대, 30대, 20대 순이었다. 30대와 20대는 전체 평균보다 아래였고, 특히 20대는 10대에 비해 거의 10점이나 행복지수가 낮았다. 지역별로는 강원도에 사는 사람들이 70.25로 전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공식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에는 인생관과 적응력 같은 개인적 특성이나 야망 혹은 자존심 같은 좀 더 고차원적인 요소들보다는 역시 건강과 돈, 인간관계 등 생존 조건에 포함되는 것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년기 어르신들께 행복에 대해 여쭤보면 대개는 오복(五福)을 말씀하신다. 수(壽)와 부(富), 귀(貴:사회적 지위가 높음), 강녕(康寧: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함)에 고종명(考終命: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음) 아니면 자손중다(子孫衆多:자손이 많음)를 꼽으신다. 물론 이(齒)를 집어넣으시는 분도 계신다. 어르신들을 뵈면서 '참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고 계시는구나' 할 때는 역시 건강하고, 의식주 걱정 없고,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소일할 수 있고, 그래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낄 새 없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다.

지난 해 가을 강의하러 가서 만난 한 노인대학 어르신들은, 아침에 등교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실 때 늘 한 쪽에서 소리 높여 “만수무강(萬壽無疆)!”하고 외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무병장수(無病長壽)!”라고 화답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요즘 '백세인(百歲人)', 즉 100세가 넘으신 분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분들의 장수 요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인간의 수명 연장을 반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길어진 시간만큼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실 장수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그냥 '장수(長壽)'가 아닌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말씀하시는 것은 '유병장수(有病長壽)'의 부질없음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살아온 세월을 통해 행복의 조건을 일찌감치 몸으로 마음으로 체득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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