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원더우먼’

 

SBS 드라마 ‘원더우먼’ ⓒSBS
SBS 드라마 ‘원더우먼’ ⓒSBS

블랙 위도우와 캡틴 마블이 여성 히어로로 인기를 끌기 전 이미 진실의 올가미를 휘두르며, 양팔의 팔찌로 총알을 튕기고, 황금관과 검으로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강력한 힘과 능력을 지닌 원더우먼이 있었다. 최초의 여성 히어로인 원더우먼은 그 강력한 힘과 능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능력 있는 여성을 일컫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는 <원더우먼>(SBS)은 여성 히어로의 이름과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드라마가 여성을 그리던 관습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드라마 <원더우먼>의 주요 줄거리는 비리 검사인 조연주가 갑자기 벌어진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고 얼굴이 똑같은 재벌가의 상속녀이자 며느리인 강미나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축으로 이루어진다. 그동안 익히 보고 들었던 ‘왕자와 거지’를 모티브로 하는 친숙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비슷한 모티브를, 드라마는 기존 드라마 관습의 변형과 반전을 더해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고 있다. 

여주인공 전형성 뒤집는 ‘반전’

<원더우먼>의 장르는 액션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장르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드라마는 조연주의 잃어버린 기억과 진짜 강미나를 찾는 과정에서 미스터리와 음모 요소를 가미한다. 여기에 강미나를 둘러싼 재벌가의 음모, 재벌가와 비리 검사의 결탁 그리고 계속해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주인공의 위기 상황으로 스릴러와 액션이 더해진다. 고난을 함께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르는 남녀 주인공의 설렘과 사랑의 감정으로 로맨스도 그린다. 틈틈이 웃음을 유발하는 관계와 상황들은 드라마를 가볍게 만드는 코믹함을 선사한다. 이처럼 <원더우먼>은 한 가지 장르라고 꼬집을 수 없이 다양한 장르들을 뒤섞으면서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드라마 장르의 혼종적인 경향은 최근 드라마에서 종종 시도된다는 점에서 <원더우먼>만의 특별한 재미 요인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원더우먼>이 주는 묘미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익히 보아왔던 수동적이며, 보호받는 여주인공의 전형성을 뒤집는 반전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은 수많이 나온 클리셰이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사연은 미스터리를 증폭시키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드라마를 재미있게 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등장인물들은 이야기 진행을 답답하게 하는 존재이다, 주변의 말에 휘둘리는 갑갑한 인물로 그려지곤 했다. 심지어 이야기가 앞으로 진행되는데 방해가 되는 발목을 잡는 캐릭터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워더우먼> 속 기억상실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재벌가 집안으로 내몰린 조연주는 다르다. 사법 연수원 1등 출신의 검사라는 등장인물 설정은 주인공이 지략과 싸움에 능한 인물로 그리는 바탕이 된다. 그는 자신의 빼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스스로를 구원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원더우먼>의 조연주는 여느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주인공처럼 “내가 누구니?”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답답함을 갖고 시작하지만, 스스로 자신이 강미나가 아님을 추리로 알아낸다. 그가 찾아낸 단서들은 구두가 발에 미묘하게 맞지 않으며, 견과류 알레르기가 없고, 태블릿PC의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다. 어쩌면 당연하게 보이는 단서들을 토대로 한 추론이지만, 기존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이 천천히 혹은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깨닫지만, 이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빠르게 그리고 스스로 알아챈다. 본인의 진짜 정체 역시 드라마에서 우연히 만났던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검사였음을 알게 된다. 물론 주변인들의 도움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깨달아가는 전개는 주인공이 주변 상황과 주변인에 의해 끌려 다니는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이끄는 주체적인 인물임을 보여준다.

발차기로 남주 구하는 진짜 주인공

주인공의 뛰어난 능력과 주도적인 역할은 공사 영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집안에서는 같은 재벌이지만 혼외자식이란 이유로, 그리고 국내파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가족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강미나와 달리, 조연주는 자신의 능력을 앞세워 그녀를 무시했던 시댁 식구들에게 참지 않고 되갚아준다. 또한 자신을 해치려는 괴한의 존재를 알아채고 오히려 제압까지 한다. 보통 드라마였다면 그를 지켜주는 남주인공이 괴한을 제압하고 괜찮냐고 물어보겠지만, 이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자신을 구하러 등장했지만 오히려 약점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남주인공을 해하려는 괴한에게 시원한 발차기를 선사하는 것으로 보호받는 여주인공이라는 관습을 어김없이 깨트린다. 심지어 벽돌로 머리를 가격 당했음에도. 뛰어난 지적 능력에 싸움까지 잘하는 원더우먼인 조연주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진정한 주인공인 것이다. 심지어 남주인공의 부모와 자신의 부모 사이에 얽힌 악연에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남주인공에게 밝히기까지 한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부모 간의 악연으로 인해 고뇌하다가 이별을 경험할 텐데 조연주는 스스로의 아픔과 약점까지도 본인이 드러내고 책임을 진다. 이렇듯 <원더우먼> 속 조연주는 남주인공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아무리 장르가 변형되고 혼합된다고 해도 남주인공에 기댄 여주인공들은 너무도 익숙한 드라마 관습이다. 하지만 <원더우먼> 속 조연주는 영리함과 액션으로 무장하고 음모를 깨트리며, 스스로를 구원하는 히어로이다. 앞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는 동안 그의 주체적이며 주도적인 캐릭터가 오염되지 않고 유지되길 바랄 뿐이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언론학박사이며,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젠더에 관심을 두고 다수의 영상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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