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 ‘몸이 선언이 될 때’
13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보안1942
국내외 여성 예술가 8팀 참여

기획전 ‘몸이 선언이 될 때’ 공식 포스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전 ‘몸이 선언이 될 때’ 공식 포스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기획전 ‘몸이 선언이 될 때’가 13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1942 아트스페이스보안3에서 개최된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한국은 68년 만에 ‘낙태죄’ 없는 국가가 됐지만,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의료 현장은 혼란스럽다.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여성을 위한 대안을 요구하는 여성 예술가들이 기획한 전시다. 국내외 작가 8팀이 참여해 임신중지를 포함하는 몸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시스템의 통제,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 환원하는 관점, 퀴어 여성의 재생산권리 등을 전면에 다룬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이하 셰어)는 2017년 발간했던 책 『배틀그라운드』에 실린 연표를 확장한 작품, ‘울퉁불퉁한 연대기: 터져 나온 저항, 몸의 발화들’(2021)로 참여한다. 낙태죄, 우생학, 쾌락, 장애, 여성, 퀴어 등 몸을 둘러싼 여러 이슈/위치의 교차와 상호작용에 주목하며,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연표를 제시한다.

이길보라 작가는 2016년 칼럼 ‘#나는_낙태했다’를 통해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을 고백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의 체현된 기억(My Embodied Memory)’(2019)를 통해 칼럼에서 언급했던 엄마, 할머니의 임신중지 경험을 함께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이길보라 작가, ‘나의 체현된 기억(My Embodied Memory)’, 2019 ⓒ이길보라 작가
이길보라 작가, ‘나의 체현된 기억(My Embodied Memory)’, 2019 ⓒ이길보라 작가
강라겸 작가,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 2021 ⓒ강라겸 작가
강라겸 작가,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 2021 ⓒ강라겸 작가
전규리 작가, ‘다신, 태어나, 다시’, 2020 ⓒ전규리 작가
전규리 작가, ‘다신, 태어나, 다시’, 2020 ⓒ전규리 작가

강라겸 작가는 신작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2021)를 선보인다. 두 마리의 엄마 쥐로부터 단성 생식으로 새끼가 태어났다는 논문에 착안해 남성에 의한 수정 없이도 가능한 재생산에 대한 SF적인 상상을 펼쳐낸다.

전규리 작가는 1930년 태어났다 일찍 죽고, 1990년 선택적 여아 낙태로 태어나지 못했다가, 2050년에 드디어 다시 태어난 여성을 상상하며 과거와 미래의 백말띠 여성을 소환하는 ‘다신, 태어나, 다시’(2020), 1950년대 전쟁 포로의 몸에 새겨졌던 반공문신의 역사를 추적하며 개인에게 가해졌던 권력의 폭력을 증언하는 신작 ‘산증인’(2021)으로 참여한다.

폴란드 작가집단 에이피피(Archive of Public Protests)의 파업 신문 인쇄물, 2020 ⓒArchive of Public Protests
폴란드 작가집단 에이피피(Archive of Public Protests)의 파업 신문 인쇄물, 2020 ⓒArchive of Public Protests
일렉트라 케이비 작가, ‘시위 피켓’ 시리즈 중 AAA, 사탕수수용지에 실크스크린, 2021 ⓒ일렉트라 케이비 작가
일렉트라 케이비 작가, ‘시위 피켓’ 시리즈 중 AAA, 사탕수수용지에 실크스크린, 2021 ⓒ일렉트라 케이비 작가
키라 데인·케이틀린 레벨로 작가, 미즈코, HD 단채널 영상, 2019 ⓒ키라 데인·케이틀린 레벨로 작가
키라 데인·케이틀린 레벨로 작가, 미즈코, HD 단채널 영상, 2019 ⓒ키라 데인·케이틀린 레벨로 작가

폴란드 작가집단 에이피피(Archive of Public Protests, 거리 투쟁의 아카이브)도 참여한다. 2015년 들어선 폴란드 우익정당의 소수자 차별정책에 저항하며 투쟁했던 역사를 기록하고자 결성됐다. 에이피피의 ‘파업 신문’(2020~)은 ‘낙태죄’ 반대를 위한 여성 파업 시위 때부터 만들어졌으며, 신문의 기능을 하는 동시에 시위 현장에서는 피켓으로, 거리에서는 포스터로 사용되고 있다. 올라 야시오노프스카의 ‘붉은 번개’(2020)에서 볼 수 있는 붉은색 번개 모양은 여성 파업 투쟁의 상징 같은 이미지가 된 디자인이다. 2016년 인종차별 시위를 위해 처음 만들어졌고, ‘낙태죄’ 반대 시위 피켓, 포스터, 티셔츠, 그래피티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번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는 포스터는 일렉트라 케이비 작가의 ‘시위 피켓’ 시리즈(2017~) 중 2017년 트럼프 정부에 항의하며 시작된 여성 행진에서 작가가 직접 제작해 사용했던 작품이다. ‘I WAS NEVER YOURS’라는 선언적인 문장이 전시의 타이틀과 조응한다. ‘핵친족주의 이후의 퀴어적 변화들: 돌봄과 상호 원조의 급진적 가족 구조, 사이보그와 여성 신을 중심으로’(2021)는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제시하면서, 트랜스젠더 작가 레드 워시번이 경험한 성전환 과정을 사진과 글을 통해 보여준다.

일본 나라에서 작업하는 일본계 미국인 작가 키라 데인, 미국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감독 케이틀린 레벨로는 ‘미즈코’(2019)에서 임신중지 경험 과정과 그 이후에 찾아오는 다양하고 섬세한 감정들을 묘사한다. ‘미즈코’는 물의 아이, 뱃속에 잠시 살았지만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지칭하는 단어로, 일본 문화에는 미즈코를 애도하는 공양이 존재한다.

전시 기간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도 온라인 개최된다. 20일 셰어의 나영 대표, 나영정·이은진 활동가가 ‘낙태죄’로 인해 수면 위로 올리지 못했던 권리들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22일에는 세바스티안 시코키 폴란드 바르샤바 현대미술관 수석큐레이터가 임신중지 전면금지법이 시행된 폴란드의 상황과 그를 경유하는 동시대 아티비즘(예술Art과과 행동주의·실천주의Activism의 합성어)을 살펴본다.

29일엔 이길보라, 전규리 작가와 조혜영 평론가가 공적인 역사에 사적인 역사를 엮어내는 여성 작가들의 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11월1일엔 강라겸 작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 타투이스트 도이(김도윤)가 문신합법화운동, 예술과 정치를 횡단하는 몸의 결정권과 소유권에 대한 대담을 나눌 예정이다.

전시가 열리는 보안1942의 보안책방에서는 사전연구자료 및 전시 주제와 관련된 출판물, 작품과 연계된 진(zine)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년도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작이다.

총괄기획을 맡은 김화용 작가, 공동기획 이길보라 작가·영화감독은 “‘낙태죄’ 폐지 이후를 다각적으로 모색하는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한다”며, “위계와 배제, 음지화된 다양한 몸의 경험들, 알 기회를 빼앗긴 정보와 건강권, 편견에 눌려 말하지 못했던 여성·소수자의 섬세한 감정 등을 포착해 가시화한다”고 설명했다.

김화용 작가는 “그동안 ‘낙태죄’ 뒤에 가려져 왔던 문제들, 포섭되지 못했던 존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며 담론의 장을 확장할 때 예술은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고통의 차원을 공유하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법과 권력이 개인을 통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화를 요청하고 지역, 성별, 젠더, 시대를 가로질러 서로를 연결하며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구축할지 모색하는 장을 연다”고 밝혔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thebodymanifesto.xyz/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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