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비'를 비웃는 행복한 아줌마

이용숙/ 음악칼럼니스트

재벌, 재벌의 아들 혹은 손자와 결혼하는 게 결코 행운이 아니라는 사실이 유명인들의 '실패한 결혼'사례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TV 드라마들이 여전히 재벌 2세를 '백마 탄 왕자님'으로 등장시키는 낡은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우습다. 부잣집이나 이른바 '명문가'에 시집가서 편하고 행복할 리가 없다는 건 머리를 써서 요모조모 따져 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면이나 허영심 때문에 그런 결혼에 응하는 여성들은 정말 가엽다. 19세기 후반부터 인기를 끈 유럽의 '신화 비틀기'는 주로 연극이나 오페라 분야에서 배꼽을 잡을 희극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이야기들을 패러디해 현대인의 권위주의나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비웃는 방식이다. 이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오페라 <다나에의 사랑Die Liebe der Danae>은 돈 많은 남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여주인공 다나에의 행복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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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리시우스는 청혼하러 온 미다스 왕 앞에 딸 다나에(자비네 하스)를 마치 물건처럼 선보인다. 1988년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극장 공연.

아크리시우스 왕의 딸로 태어난 다나에는 '자식에게서 해를 입게 된다'는 신탁에 겁을 먹은 아버지 덕분에 탑에 갇혀 사는 신세. 어느 날 '새로 꼬여 볼 여자 어디 없나' 하고 돌아다니던 제우스는 다나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바람둥이 남편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아내 헤라와 다나에의 아버지 때문에 일이 쉽게 풀리지 않자, 제우스는 황금의 비로 변신해 다나에의 다리 사이로 쏟아진다. 신화에서라면 다나에는 당연히 이때 임신을 해서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슈트라우스는 이 신화를 비틀어놓은 작가 호프만 스탈의 패러디극을 기초로 대본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 오페라의 내용은 기막힌 희극으로 변했다.

파산해서 날마다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는 아크리시우스 왕은 딸 다나에의 미모를 이용해 빚을 청산하기로 작정하고, 신흥재벌 미다스 왕을 사위로 맞이할 궁리를 한다(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한다는 미다스 왕이 바로 이 사람!). 이미 황금비로 다나에에게 닿았건만 다나에가 그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자 속이 타는 제우스. 자신은 미다스로 변신하고 미다스는 자기 종으로 꾸며 다나에에게 구혼하러 온다. 그러나 다나에는 '황금의 손' 미다스에겐 관심이 없고, 종으로 변장한 진짜 미다스와 눈이 맞는다. 갖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결혼하자 머리에서 김이 오르게 된 제우스는 미다스의 '황금제조 능력'을 빼앗고 그를 예전처럼 가난한 당나귀몰이꾼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러나 공주로 자란 다나에가 당나귀몰이꾼과 함께 살 수는 없을 거라고 믿은 제우스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간다. 다나에와 미다스는 당나귀를 몰고 신나게 시골길을 돌아다니며 생계를 잇고 부지런히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제우스는 나그네로 변신해 둘이 사는 산 속 오두막집까지 찾아가서 다나에를 유혹해보지만, 눈곱만큼도 흔들림이 없는 두 사람의 찰떡궁합에 질려 쓸쓸히 돌아서고 만다. 당시 유행하던 물질주의 정략결혼을 마음껏 비웃어 준 오페라. '황금벼락'과 '황금의 손'에 한없이 무심한 여주인공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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