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사는 남자들
변해야 사는 남자들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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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남자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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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

1.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여자들

2. 신이산가족 기러기아빠

3. 신세대 시어머니들

4. 변해야 사는 남자들

5. 주부는 가정의 CEO

새벽일하는 아내 아침은 내몫

“같이 벌자” 경제부담 나눠 져

우리의 오랜 편견 중 하나로 '남자답다'는 말이 있다. 모름지기 남자란 매사에 당당하고 힘이 세야 하며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침착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처리해야 함은 물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이해심도 많아 타의 모범이 되고 리더가 되는 것이 남자의 길이다. 또 남자는 말수도 많지 않을뿐더러 함부로 희로애락을 표현하지도 않고, 외모에도 신경 쓰지 않으며 싸움도 잘하고, 배짱이라는 이름으로 스릴과 모험을 즐기는 존재로 인색하거나 쫀쫀하게 굴어서도 안 된다. '남자답다'는 말 속에는 남자라면, 그리고 남자만이 이처럼 안팎으로 완벽하게 갖춘 인격체로 강함과 부드러움을 적절하게 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숨어 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이 단단한 남자들의 세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원인을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전의 '남자답다'는 말에 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남자의 세계도 웰빙 바람

초지일관 강함과 '남자다운'일을 통해 존재감을 표현하던 남성들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과거에는 여성들의 일이라고 못 박았던 세계 최고 요리사와 헤어디자이너가 남성이라는 점이 부각되던 때는 이미 과거가 됐다.

“제가 처음에 이 일을 할 때는 사실 학교 친구 모임에도 가지 못했어요. 가 봐야 뭐, 남자가 그런 일을 하냐는 소리나 듣고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이야 형편이 완전히 달라졌죠.”

현재 내로라 하는 유명 뷰티 숍의 원장이자 교수로 맹활약 중인 최씨(헤어드레서, 42)는 현재 업종이 갖는 성별에 따른 편견의 피해자이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오히려 여성들이 보지 못하는 여성의 미를 찾아내는 프론티어의 권리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한편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힘겨웠던 한 해를 넘긴 기업들이 2004년 새해 들면서 대거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들이 내세운 가장 큰 잣대는 바로 미래 리더로서 자질을 갖추라는 것. 그리고 이들 대부분 기업들이 '부드러움'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공통적인 리더의 자질로 꼽고 있다.

'우수한 인력자원을 동기부여 하고 수많은 미디어 매체에 회사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더 이상 효과적이 않다. 리더는 자신의 의사를 신뢰성 있게 전달하고 명확한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승의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2003년 12월 15일자 <파이낸셜뉴스> 중)

다양성과 부드러움이 리더 자질

글로벌 경쟁시대 각 나라를 이끄는 최첨병은 군사가 아니라 바로 회사원들이고 이들을 이끌어 나갈 리더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자질 중 하나인 '설득력'과 '커뮤니케이션'은 과거의 배짱과 과감성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덕목이다. 국가의 번영과 회사의 성공, 직원과 가족의 행복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업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나아가 그 사회가 인정하는 덕목이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몇 년 전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웰빙의 바람이 사회 각 부분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소비하고 영위하는 의식주 모든 부문에서 웰빙, 즉 일정 정도의 물질을 기반으로 잘 먹으며 여유롭게 잘 살아보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남자답다'는 말의 허상을 깨다

그리고 웰빙을 구현하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이 최소한의 경제력 안에는 안정된 의식주 및 자녀양육이 필수항목으로 들어 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 한 사람(예컨대, 가장)만의 수입으로는 이 필수항목들을 안정적으로 해결하기란 하늘에 있는 별을 따기만큼 어렵다.

“맞벌이하는 친구를 보면 솔직히 부럽습니다.”

직장인 김씨(47)는 얼마 전 결혼 후 처음 일산에 주택을 마련해 이사를 했지만, 여전히 세금처럼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 교육비며 생활비가 혼자 벌이로는 쉽지 않음을 털어놓았다. 한편 결혼 5년차인 프리랜서 작가 최씨(34) 부부는 처음부터 함께 벌고 함께 산다는 생각으로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저희 남편은 처음부터 혼자 벌어 가정경제를 다 책임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만일 그랬다면 남편이 지금처럼 단체의 일을 할 수는 없었겠죠.”

가장인 남편이 가정경제를 모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하에 최씨의 남편은 경제력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택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제가 함께 벌었고 지금도 맞벌이를 하고 있어요. 같이 책임지고 같이 권리를 행사하는 거죠. 그래서 가사부분에서도 저는 남편에게 많은 부분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요.”

과거 '대장'으로서 남성상이 인정받던 시절이라면 어림없는 변화다. 이제 남성들은 과거의 '남성다움'의 틀을 깨고 스스로 '힘들다'고 호소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자아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바야흐로 눈물 흘리는 남자가 아름다운 시대다.

가족 구성원으로 돌아오는 가장들

<새벽 6시> 자명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김씨(회사원, 44)는 아내가 깰세라 자명종의 'OFF'단추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내가 자고 있는 방의 문을 조용히 닫아 주며 주방의 불을 켜고 김씨는 아침준비를 한다. 큰 아이와 김씨 자신을 위한 아침이다. 전날 아내가 끓여놓은 국을 데우며 달걀과 소시지를 굽는다. <7시 15분 전> 큰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아 둘만의 아침식사를 한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전업주부였던 집사람이 1년 반 전부터 새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일이 늘어나 새벽까지 원고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드니까요. 안쓰럽기도 하고.”

김씨가 아침을 하기 시작한지 꼬박 1년이 됐다. 물론 김씨에게 이 일이 처음부터 흔쾌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 아내를 위해 시작한 이 아침준비가 이제는 김씨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한창 자랄 때 일에 매진하느라 바빴고, 좀 여유가 생겨 큰아이와 이야기를 시도하려고 했을 때 아이는 훌쩍 커버린 뒤라 서먹해했다. 그런데 둘만의 아침식사를 하면서 K씨와 아이는 처음으로 단 둘만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고, 그 횟수가 계속되면서 점차 아이가 아빠에게 말을 걸어 오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웃음) 얼마 전엔 처음으로 진지하게 아빠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냐고 묻더라고요. 제 머리 위로 훌쩍 자란 놈이.” 1년 전까지만 해도 K씨 역시 가정에서 '은따(은근하게 '따'당하는)'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재미나게 떠들고 놀다가도 김씨만 등장하면 특히 큰아이는 어김없이 어정쩡한 인사 한 마디만 남기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딸사랑 아버지 모임>의 공동대표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김병후 박사는 이런 우리 사회 아버지들의 처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언젠가부터 가정 안에 아버지 자리가 없어요. 주말에 집에 있어 보면 어디 마땅히 몸을 둘 데가 없어요. 안방은 완전히 부인 방이고, 애들은 각자 자기들 방으로 들어가 버리니까요. 그래서 어쩌다 TV 좀 보려 해도 애들 조금만 크면 애들 공부한다고 TV도 마음대로 못 보게 해요. 아무리 둘러봐도 집안에 아버지가 편히 혼자 앉아 있을 공간도 없거든요. 기껏해야 베란다 정도입니다.”

언제 어느 때부터 잃어버리기 시작한 아버지의 자리는 뒤늦은 권위와 후회의 말로는 찾아지기 어려운 법. 김씨는 아들과 둘만의 아침시간을 위한 노력과 정성을 통해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가정 밖에서 대의명분을 위해 큰일(?)만 하던 아빠들의 가정 안에서 작고 따스한 자리를 찾는 노력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김씨처럼 스스로의 해법을 찾아 고심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가 변하면서 가정 안에서도 남자들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다.

양은주 줌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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