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선거에 출마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담임권은 공적 업무를 맡을 수 있는 권리로, 시험을 통해 뽑히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의원, 자치단체장 등과 같이 선거를 통해 뽑히는 선출직 공무원을 포함한다. 즉 이 조항은 모든 국민이 시민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피선거권을 규정한 조항이다. 단,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고, 구체적인 내용들은 ‘공직선거법’에 명시되어 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권’(제15조)과 ‘피선거권’(제16조)을 갖는 조건을 규정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선거권이 없는 자’(제18조)와 ‘피선거권이 없는 자’(제19조)도 함께 규정해놓고 있다. 이 중에서 피선거권 규정만 살펴보면, 대통령(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 40세 이상 국민)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은 25세 이상이면 출마 가능하다. 그런데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는 선거일 기준으로 60일 이상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공직선거법 제16조 3항). 즉 선거일 60일 이전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야 해당 지역의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할 수 있다.
‘피선거권이 없는 자’에 대한 규정을 살펴보면, ‘선거권이 없는 자’ 중에서 금치산 선고를 받은 자, 선거범,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해 선거권이 정지 또는 상실된 자는 피선거권이 없다. 그리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종결되지 않은 사람,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해 피선거권이 정지되거나 상실된 자도 피선거권이 없다. 또한 형이 집행되는 기간 동안만이 아니라 형 집행이 종료되고도 몇 년 동안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국회법 제166조(국회 회의 방해죄)를 위반해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은 사람은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이 지나기 전에, 그리고 집행유예나 징역형의 경우에는 형이 확정된 후 10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리고 공직선거법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를 위반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 또한 형이 확정된 후 10년 동안은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선거 출마의 첫 번째 관문, 기탁금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는 자’ 규정만 충족하면, 누구나 선거에 후보로 출마할 수 있을까? 아니다. 또 하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56조에 따라 ‘기탁금’을 내야만 후보로 인정이 된다. 기탁금은 어떤 선거에 출마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대통령 선거는 3억원,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1,500만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500만원, 광역단체장은 5,000만원, 기초단체장은 1,000만원, 광역의회 선거는 300만원, 기초의회 선거는 200만원을 내야 후보로 등록이 된다.
기탁금은 “후보자가 난립하는 것을 방지하고, 선거에 대한 성실성을 담보”(유명종 2019)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비용이 산정됐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2015년 녹색당이 국회의원 후보 기탁금이 헌법이 보장하는 피선거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때 헌법재판소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기탁금에 대해서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지역구 기탁금에 대해서는 “일반 노동자가 평균적으로 몇 개월만 모으면 되는 돈”이라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이혜미·김혜영·권현지 2019). 과연 지금 노동자들, 특히 여성이나 청년 노동자들이 몇 개월만 일하면, 현금으로 1,500만원을 모을 수 있을까?
다른 국가들을 살펴보면, 미국을 포함해 서유럽 국가들(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헝가리, 미국 등)은 기탁금 제도가 없다. 영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이 기탁금 제도를 갖고 있는데 국회의원 후보의 경우에도 기탁금 액수는 100만원 미만이다. 한국처럼 높은 비용의 기탁금을 요구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일본 국회의원 후보의 기탁금은 300만 엔(약 3199만5000원)이다.
누군가에게는 기탁금이 큰 비용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고, 현직 국회의원의 경우는 후원금을 통해 기탁금 정도는 충분히 모을 수 있겠지만 정치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과 청년 등에게는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과 같은 거대정당이 아닌, 소수 원내정당 또는 원외정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여성/청년 정치인들에게는 기탁금부터가 출마를 결정하는 데 장벽이 된다.
공직선거법 제57조는 ‘기탁금 반환’ 규정을 담고 있는데 비례대표 후보를 제외한 후보자들은 선거에 참여한 전체 투표율에서 15% 이상을 득표해야 기탁금 전액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그리고 10% 이상 15% 미만을 득표한 경우에는 기탁금의 절반을 되돌려 받는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후보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기탁금뿐만 아니라 선거운동 비용에 대한 보전도 동일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로 인해 거대 정당이 아닌 소수 원내정당과 원외정당, 무소속 후보들, 특히 여성/청년 후보들은 선거가 끝나고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빚을 갚다보면, 정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초의회부터 기탁금 폐지하면 어떨까?
기초의회는 시민들을 직접 만나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며 의회정치를 학습하고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정치활동 공간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정치는 국회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국의 광역·기초의회에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진입해 활동함으로써 가능하고, 그렇게 될 때 페미니스트 정치의 탄탄한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만이 아니라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 특히 기초의회에 더 많은 여성/청년 페미니스트들이 후보로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기초의회의 기탁금 제도를 없애는 것은 어떨까. 청년/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해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된 수많은 사람들이 돈 문제로 선거 출마에 머뭇거리지 않도록, 더 많이 정치에,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