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찾는 이도 없고 돈도 안 되는 갓을 만드는 장인처럼, 합죽선을 만드는 장인처럼, 징을 만드는 장인처럼 농사꾼도 그런 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효신

동네 남정네들 서넛이 농협 앞 계단에 걸터 앉아 뭔 대화인지 ‘그러네 아니네’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다. 궁금증 많은 내가 그냥 지나갈 리 없다.

“뭔 얘긴데 그렇게들 흥분하고 난리에요?”

석이 아범이 이씨 아저씨를 가리키며 손사레질을 해댄다.

“이눔이 억장 지르는 소리를 허고 앉아 있으니 내가 흥분 않겄어?”

“아니 내 말이 틀렸어? 난 그렇게 배웠다닝께.”

“에라, 너나 그렇게 미련스럽게 열심히 지키며 살아라.”

“아니 뭔 소린데?”

“내 말이. 농사꾼의 삼대원칙, 농사꾼은 이 삼대원칙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 말이거든.”

“삼대 원칙이 뭔데?”

“농사꾼의 삼대원칙? 들어간 돈 따지지 말자, 나오는 돈 따지지 말자, 그리고 미련하게 일하자. 이게 농사꾼이다 이거지.”

“맞네. 들어간 돈 따지면서 어떻게 농사 짓겄어?”

“맞긴 뭐가 맞어? 농사꾼은 뭐 자식도 안 키우고 안 먹어도 사는감? 새빠지게 일해도 지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니께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이렇게 미련한 늙은이들만 남아 있능겨.”

“석이 아버지도 그 미련한 늙은이 중 한 분이잖아요.”

“그러게... 이 눔 말이 틀리는 건 아녀. 그러니께 더 속이 상하능겨.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께 속 상헌겨.”

두 사람의 다툼 아닌 다툼을 빙글빙글 웃으며 듣고 있던 김씨 아저씨가 궁둥이를 털며 일어난다.

“날 더운데 쓸데없는 소리로 기운 빼지 말고 어서 가서 일들이나 허여.”

집으로 돌아와 밭으로 나간다. 그새 배추 모가 예쁘게도 자리잡았다.

밭두렁에 앉아 무, 배추, 들깨, 고구마 심은 곳을 둘러보고 있자니 이씨 아저씨의 농사꾼의 삼대원칙이 정말 제대로 실감나게 다가온다.

“석 달 동안 땀 흘리며 공들여 키운 것들 모조리 수확해봐야 돈으로 따지면 몇 푼이나 나오려나. 사 먹는 게 더 싸지. 힘도 들지 않고 편안할 터인데...”

그래도 이 짓을 하는 건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다른 가치가 있어서가 아닌가?

귀향하던 해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에서 원예 강의를 신청하여 배울 때 한 강사님의 시간이 생각났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왜 농사를 짓는가?”

한 학생이 대답했다.

“돈 벌려구유….”

선생이 호통을 쳤다.

“돈 벌려면 도시로 가야지 왜 농사를 져!”

다시 물었다.

“여기는 왜 왔는가? 뭘 배우러 왔어?”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배워서 상품가치를 높여 보려구요.”

선생이 다시 호통을 쳤다.

“농민이 식품을 만들어야지 왜 상품을 만드는 거여! 상품을 만드니까 안 되는 거여! 농사는 일차 산업이지 공장이 아니란 말이여!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건 틀린 거여. 농사로 돈 벌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녀.”

특히 선생은 모든 것을 농사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식물과 땅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 농사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이다. 찾는 이도 없고 돈도 안 되는 갓을 만드는 장인처럼, 합죽선을 만드는 장인처럼, 징을 만드는 장인처럼 농사꾼도 그런 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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