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6월27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청계천 한빛광장까지 도심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6월27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청계천 한빛광장까지 도심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고생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이 고생 안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네요.”

9월 1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2021 평등의 이어달리기 온라인 농성>이 시작될 때 누가 한 말이었다. 15년째 차별금지법은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성사되어도, 벌써 네 번의 의원이 차별금지법(혹은 평등법)을 발의해도 국회는 침묵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는 말로 차별금지법은 끊임없이 뒷순위가 되었고, 차별금지법이 없는 세상에서는 “자유롭게 착취하고 차별할 권리’가 옹호되었다. 그만큼,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서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코로나19 시대에 ‘온라인 농성’은 참고문헌 없는 최초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위기이기도 했지만, 거리라는 장벽 없이 더 많은 사람에게 차별금지법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농성을 어떻게 진행할지 갑론을박이 오갔다. 한 달 남짓한 기획 회의를 끝으로 몇 가지 고정 프로그램과 몇 가지 가변적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그 중, 나는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해설하는 <3시의 페미니즘> 팀에 합류했다.

1일부터 16일까지, 수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로 정당화되는 차별을 날카롭게 꼬집는 이야기도, 실제 인권위 차별 진정 사례로 차별금지법을 해석하는 프로그램도, 성소수자와 이주민, 노동자, 건강과 아픔에 대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120개가 넘는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최소 120개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어코 온라인 농성을 방해하기 위해 온라인까지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지와 응원, 차별금지법이 자기 삶에 필요한 이유에 대한 솔직한 고백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았다.

9월 16일, 농성이 끝나는 날에는 퀴어퍼레이드를 처음 참여했던 2014년의 일이 기억났다. 퍼레이드 행렬 바로 앞에 누워버린 수많은 사람을 보았을 때의 기억이었다. 축제가 투쟁으로 변해야 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내가 대놓고 증오심에 불탄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게 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섭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대열에서 멀어져 한쪽 구석에 서서 훌쩍거리고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와 휴지를 건넸다. “우리가 이길 거예요.” 그가 말했다.

페미니즘이 끝까지 싸울 힘을 주었다면, 16일의 시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승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만들 세상이 총천연색일 것이란 확신도 주었다. 아마 그 세상은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한 달 동안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고민해나가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는 간단명료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원래 생각하지 못한 쪽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법이다.

오늘 우리는 국회 바깥 ‘온라인 농성장’에서 차별금지법을 말했지만, 내일 우리는 국회 내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것이니” 국회는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함께 가기를 바란다. 

신민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저자
신민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저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