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더 쉽고 가깝게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2021. 9. 13(월) 10:45 서울 조선팰리스호텔 미팅룸에서 요흔 아이크홀트(Jochen Eickholt) 지멘스에너지 부회장과 면담을 갖고, 인사말을 통해 ‘지멘스에너지의 수소·재생에너지 사업과 ESS 조달 시 우리기업의 제품 활용 확대와 한국의 에너지혁신기업과 지멘스에너지 간 기술협력 강화하고, 지멘스에너지와의 파트너십 강화가 양국 산업의 동반성장 기회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밝힌 후 수소·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통일부 홍보 영상 마중그림(썸네일) 이미지.  

13일 산업통상자원부 누리집에 올라온 내용이다. 한 문장인데 이렇게 길다. ‘만났다’고 하면 될 것을 ‘면담을 갖고’라고 썼다. 주어와 술어도 맞지 않는다. 중간 부분은 목적어인데 중언부언한데다 문법이 맞지 않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ESS는 ‘에너지저장장치’라는 설명 없이 영어로만 적었다. 넣을 건 넣고 뺄 건 빼고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호텔에서 요흔 아이크홀트 독일 지멘스에너지 부회장과 만났다. 박 차관은 한국의 에너지 혁신기업과 지멘스에너지 간 기술협력 강화가 양국 산업의 동반성장 기회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지멘스에너지의 ESS(에너지 저장장치) 조달 시 우리 기업 제품 사용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공공기관의 말과 글은 쉽고 분명해야 한다. 문장이 길면 알기 쉬울 수도, 내용이 명확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내놓는 자료들은 턱 없이 길기 일쑤다. 법조문은 특히 더하다. 게다가 용어는 한자어나 외국어 투성이다. 문장은 짧을수록 좋다. ‘면담하고’ 식 표현도 지양하는 게 좋다. 말은 의식에서 나온다. 공공기관 자료에 권위주의적 용어가 허다한 건 습관일 수도 있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관료 중심 사고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문장만 긴 것도 아니다. 정부 정책을 알리는 유튜브나 포스터엔 한글로 써도 충분한 일반명사를 영어로 쓰거나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기가 난무한다. ‘올리GO 내리GO'처럼 우리말 ‘고’를 영어 GO로 쓰는가 하면, 데이· 위크· 나우라고 여기저기 영어를 갖다 붙인다. ‘들어와’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드루와’(통일부)라고도 한다. 정부에서 앞장서서 맞춤법을 파괴하는 셈이다.

세상이 하도 급변하니 도리 없이 외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말장난처럼 얹는 일도 적지 않다. 생각은 언어를 만들고, 언어는 생각을 만든다. 우리말로 쓰자면 못쓸 것도 없는데 툭하면 영어를 갖다 붙이는 건 사대주의적 발상인 것처럼 보인다.

상업광고나 방송의 예능프로그램이 ‘흥미와 자극’을 더하기 위해 한글 맞춤법을 파괴하고 어법에 맞지 않는 외국어를 남발해도 공공언어는 그러면 안된다. 한글 창제의 기본 뜻은 ‘이 땅 백성 누구나 글을 읽고 이해하며, 제 뜻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GO’를 ‘고’로 읽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데이나 위크, 나우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디지털 격차 때문에 힘든 어르신도 많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유튜브를 만든다고, 젊은층의 관심을 끌어 보겠다고 명칭부터 설명까지 영어 투성이로 만드는 일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한자어 일색 법조문이나 약품 설명서를 쉽게 풀어쓰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영어나 한자어가 더 그럴 듯해 보인다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 세상이 보다 가깝게 다가설 것이다. 공공기관 정책을 설명하면서 맞춤법을 파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공공언어는 일반인의 언어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모쪼록 문장은 짧게, 사대주의적 외국어 사용은 적게, 맞춤법은 정확히 지키도록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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