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엄마의 된장찌개, 나를 일으킨 원동력
[나의 엄마 이야기] 엄마의 된장찌개, 나를 일으킨 원동력
  • 최수형 솔루션(주) 사장
  • 승인 2021.09.17 09:08
  • 수정 2021-09-17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수형 사장의 어머니 이재향씨.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야. 내가 열심히 하면 내 새끼들이 복 받을 거야.”

나는 대학교 마칠 때까지 단 한 번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다. 물론 여타의 이유로 먹기 싫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 학교 가려고 준비할 즈음이면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나는데 안 먹고 나가면 1시간씩 준비한 엄마가 너무 실망할 것 같아서 식탁에 앉았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꼭 한 그릇씩 먹고 갔다. 난 단순해서 밥을 먹으면 행복해진다. 아침마다 반복된 엄마의 소리, 도맛소리,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사랑으로 느껴져서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의미 있는 행동 패턴들을 리추얼(ritual의식)이라고 한다는데, 그렇게 보면 엄마는 따뜻한 아침 식사의 리추얼을 주셨고 그건 내 인생 깊이 행복으로 각인되었다.

엄마에게는 평생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이 하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살면 내 자식들에게 복이 돌아갈 것이다.” 엄마는 5형제 중 셋째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아빠가 문중 제사를 모시게 되었을 때 엄마는 걱정도 되긴 했지만 금방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해야 하면 열심히 하자. 정말 성심성의껏 내가 하면 조상님이 우리 아들딸 잘 돌봐주실 거야’라며 긍정적이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셨다.

문중 제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이후 45년 동안 엄마가 무릎 수술 이후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에게 제사의 기억은 엄마의 생고생이었다. 예전에 자가용도 없을 때 제사 준비는 4~5일 전부터 시작이었다. 무겁게 시장 봐오는 엄마를 가끔 마중 나갔지만, 엄마는 늘 명랑했다. 명절에 20~30명의 친척이 오기 때문에 여러 끼니를 준비하고 제사 후 그릇 정리까지 하면 내 기억엔 족히 열흘은 힘든 노동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불평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힘든 일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참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제사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 한마디 해주시는 친절한 아빠도 아니었다. 명절에 사촌들이 와서 북적북적하면 엄마는 간식 내주시면서 “나중에 다 커서 사촌들끼리 재미난 기억 많이 가져가라”고 하셨다. 요즘 사촌 동생은 내게 “언니, 그때 우리 모여서 놀 때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해요. 큰엄마께 감사해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주려고 그러셨나 보다.

우리 엄마는 시대를 아주 잘못 태어난 사람이다. 요즘 태어났으면 의류 디자이너로 성공했을 거다. 난 결혼 전까지 백화점이나 시장에서 옷을 사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돌잔치 아기 드레스부터 시작해서 결혼 예복까지 모두 다 엄마가 만들어 주셨다. 외할머니가 손바느질이 아주 뛰어나셨다고 하던데 엄마도 그 재능을 물려받으셨는지 옷을 정말 잘 만드셨다.

내가 학교 다녀와서 인사할 때는 엄마는 항상 재봉틀 앞에 앉아계셨다. 재봉을 배워본 적이 전혀 없는데도, 작아진 옷을 분해해서 아주 조금 더 사이즈만 늘여서 천을 자른 다음, 원래 모습을 상상하며 합치는 식이었다. 모든 게 독학이었다. 내가 너무 신기해하고 잘 입으니까 엄마의 실력은 점점 늘더니 생각한 옷을 그림도 그리고 패턴도 구하셔서 옷을 뚝딱 만들어주셨다. 엄마가 몇십년을 다닌 시장에선 엄마가 의상실을 하시는 줄 알고 있었다. 내 옷장에는 리미티드 에디션처럼 세상에서 나만 가진 예쁜 옷으로 가득했다. 입고 싶은 옷을 얘기만 하면 만들어주는 요정 같은 엄마였다.

아주 어릴 때였다. 엄마와 내가 같은 천으로 똑같은 모양의 랩스커트를 만들어 입고 나는 그 스커트와 같은 천으로 만든 헤어밴드까지 하고 성당에 같이 갔을 때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과 칭찬은 아직도 기억난다. 그땐 혁신적인 커플 패션 1세대인 거였다. 엄마가 요즘 태어났으면 훌륭한 의류 디자이너를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때 외갓집은 그런 집안은 아니어서 덕분에 나만 넘치는 수혜를 입고 자랄 수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옷으로만 가득 찬 내 옷장의 사진이라도 찍어두었어야 했는데, 내 기억에만 있어서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본인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발휘할 기회는 못 찾고, 그렇게 자식들이 잘되기만 바라는 엄마가 키운 나는 일하는 여자로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게 나 자신도 신기했다. 생각해 보니 딸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은 한 번도 안 하셨지만, 딸의 성장 소식이 들릴 때마다 무한의 격려와 자랑스러운 눈빛이 있어서 내가 늘 힘을 얻은 것 같다. 자식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 모습이 안타까워서 가끔 섭섭한 소리도 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그게 당신의 최선의 선택이었고 단 하루도 충실하지 않은 날이 없으셨다는 것을. 지금도 내가 매일 스스로 자가 발전으로 힘을 얻는 것은 어릴 때 먹은 된장찌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내 엄마인 게 참 다행이다. 

최수형 솔루션(주) 사장
최수형 솔루션(주) 사장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