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나옥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교장
국영수 대신 인성 배우는 대안학교
교사·멘토는 적성·진로 찾기 지원

김나옥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교장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김나옥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교장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진로 선택을 앞둔 10대들이 흔히 하는 고민이다. 정답은 하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적성을 찾으라”는 것. 하지만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10대들에겐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정해진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내려는 10대들이 모인 비인가 1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선 국·영·수를 배우지 않고, 중간고사·기말고사도 보지 않는다. 무엇을 배울지는 학생 스스로 정한다. 교사와 멘토는 학생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밀어주고 끌어준다. 2014년 개교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8년째 ‘인생을 바꾸는 1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자신만의 새 길을 내려는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의 교실은 세상이다. 방역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의 교실은 세상이다. 방역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벤자민 프로젝트로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학생들. 학생들은 직접 원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주제를 정해 기획부터 완성까지 스스로 해낸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벤자민 프로젝트로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학생들. 학생들은 직접 원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주제를 정해 기획부터 완성까지 스스로 해낸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건물·교과수업·시험·성적 없는 학교

개교 때부터 몸 담아온 김나옥 교장(교육학 박사)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교실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곳이 배움터”라며 “아이들이 직접 세상과 부딪치며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장은 2004년부터 10년간 교육부에 근무하며 특수교육정책을 담당했고 국립서울맹학교 교감을 거쳤다. 공교육 최일선에서 일한 그가 대안학교 교장으로 직장을 옮긴다고 하자, 주변에선 “대한민국에선 그런 학교는 실패할 게 뻔하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학교에서 변화를 시작하면 분명히 공교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당시 만류하던 동료들은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 학교에서는 1년간 △인성영재기본역량 △벤자민 프로젝트 △진로탐색 직업활동 △글로벌 리더십 지구시민캠프를 진행한다. 중앙 및 15개 지역학습관에서 주 1회 오프라인으로 자기조절능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인성교육을 하고, 주 1회 온라인 수업을 통해 독서토론, 멘토 특강을 한다. 학생 스스로 주제를 정해 기획부터 완성까지 진행하는 벤자민 프로젝트는 이 학교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국토대장정, 철인 3종경기 도전, 문화재 지킴이 활동, 지구환경 프로젝트 등을 하며 자신감을 키우고 세상과 소통하며 적성을 찾는다.

학생 스스로 목표 정하고 기획·실천

대안학교엔 이른바 문제아나 학교 부적응 학생이 많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김 교장은 “학교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은 대부분 평범한 아이들이다. 가끔 위클래스의 도움을 받았거나, 성적 경쟁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학생들도 있다”면서 “아이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환경에서 꿈을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주제를 정해 기획하고 진행하는 벤자민 프로젝트는 졸업 후에도 꿈을 향해 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환경보호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졸업 후 환경단체 ‘지지배(지구를 지키기 위한 배움이 있는 곳)’를 설립한 홍다경씨, 공연 기획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래 친구들과 팀을 결성해 전주 문화공연장에서 뮤지컬 공연을 올린 허재범씨, 프로젝트를 통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게 돼 졸업 후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에 입학한 이예원씨 등이 그랬다.

김 교장은 “누군가에게 1년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특히 10대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시간”이라며 “1년의 시간동안 학생에 따라 많게는 50개의 프로젝트 활동을 해 내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간다. 그걸 통해 가장 먼저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고 얘기했다.

진로교육 중요해지며 자유학년제 관심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고등학교 진학 전 1년간 다양한 체험을 하며 진로를 탐색하는 아일랜드 ‘전환학년제’나 덴마크 ‘에프테르스콜레’와 비슷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자유학년제를 확대, 시행하고 있다. 김 교장은 “진로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자유학년제가 안착해야 하지만, 중학교 과정은 진로를 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라며 “아일랜드나 덴마크처럼 고등학교 과정에서 학생 스스로 적성을 찾고 진로를 정하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삶을 돌려주자”고 했다. 부모, 교사가 대신 선택해주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김 교장은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모델이 공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 모델로서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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