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소한의 밥상을 차린다. 가능하면 일식일찬으로. ⓒ박효신
나는 최소한의 밥상을 차린다. 가능하면 일식일찬으로. ⓒ박효신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 언젠가 동료 셋이서 유명한 갈비집을 찾아가 갈비 12인분 먹었던 일이 기억난다.

“오늘은 돈 생각하지 말고 먹을 수 있는 한 한 번 실컷 먹어보자.”

암소갈비의 가격이 만만치 않은지라 늘 감질나게 먹었던 터, 그날은 아예 작정하고 나선 길이었다. 갈비 12인 분에 냉면으로 입가심하고 나니 우리는 모두 너무 배가 불러서 허리를 필 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한참을 벽에 죽 기대어 앉아 수다로 어느 정도 소화를 시킨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한때는 식욕과 능력은 정비례한다고 큰소리치며 맛있는 집이 있다면 멀고 먼 길도 마다 않고 극성맞게 찾아가 마치 먹는 낙으로 사는 것처럼 배가 터지게 먹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많이 먹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라는 것을.

언젠가 인터넷에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떴다. 8분 동안 93개를 먹어치웠단다. 그게 다 햄버거 판매 촉진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겠는가? TV에서 햄버거 커넥션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햄버거용 소고기를 얻기 위해 아마존 밀림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가를 알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말 쇼킹했다. 끝도 없이 넓은 농장, 그건 밀림을 밀어내고 만든 거였다. 수많은 나무를 잘라내고 불태워 만든 농장에서 대량으로 소를 키우고 반경 몇 키로 안에 가공공장이 들어서고, 완전 첨단기술로 무장한 공장에는 수도 없이 많은 소들이 거꾸로 매달려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실어 나르기 위해 정글을 가로지르는 길을 내느라 나무들은 다시 잘려 나가고 어마어마하게 큰 트럭들이 매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줄지어 햄버거용 고기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상한 건 가끔 도시에 살 때 입맛이 되살아나 느닷없이 피자나 햄버거가 막 먹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거다. 암만해도 패스트푸드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서울 살 때에도 그런 음식들은 즐겨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가끔 한밤중에 느닷없이 패스트푸드에 대한 욕구가 마구 솟아나는 거다. 그래서 ‘다음에 서울 올라가면 꼭 사먹어야지’하고는 정말 서울 갈 때 사먹는다. 그런데 그걸 먹고 나면 100% 체하고 만다.

햄버거 뿐 아니라 서울 나들이에서 외식을 하기만 하면 언제나 집에 돌아와 며칠을 고생한다. 위장에 탈이 나는 거다. 내 손으로 농사지은 푸성귀들로 며칠 동안 위장을 달래주고 나서야 뱃속은 겨우 진정이 되곤 한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고기 먹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과하게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건 고기 뿐 아니라 모든 음식이 다 마찬가지다. 시골에 내려와 내 손으로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 먹어 보고서야 나는 알았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거라는 걸.

대형 슈퍼마켓에서 바구니에 담아 계산만 하면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감동이 없다. 흙에서 내 눈으로 태어나는 것을 본 생명들, 그것을 취하여 상에 올릴 때 나는 한 조각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안다.

나는 먹거리의 삼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제철음식 먹기, 둘째 가장 단순하게 요리하기, 셋째 절대로 배 터지게 먹지 말기

너무 많이 먹는 건 죄를 짓는 것 같아서다. 서울 살 때는 몰랐다. 음식물을 버리는 것이 죄짓는 일이라는 것을, 필요 이상 많이 먹는 것이 그걸 제공해준 생명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것을, 특히 내 돈 벌어 내가 사먹으니 내 덕으로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를 몰랐다.

서울생활을 완전히 접고 시골로 내려온 후 몇 년 동안 나는 초중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6년, 사회생활 다시 35년, 50여 년 동안 수없이 들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단 몇 년 동안 흙에서 배웠다.

그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동물이 아니었다.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도 아니었다.
인간은 결코 이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백만 생물 개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마치 주인인체 행세하려 하지 말자.”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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