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남성 화가들의 이분법

미술평론가

미술관에서 여자 벗겨놓은 그림 보는 일이야 밥상에 김치 올라오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근대 이전 화가들은 여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그들의 이상형을 반영시켜 놓는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그 자체가 아니라, 뭔가 모르게 더 아름답고, 더 고혹적이고 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형된 모습이 대부분이라는 소리다. 봐서 이쁘지 않다는 이유로 누드인 그녀들은 늘 체모가 깎여 있거나, 머리가 몸통의 9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들어 있기도 하고, 때론 늘씬한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등뼈가 하나 더 박혀 있는 일도 있다. 그녀들은 늘 다소곳하며 남성 관람자를 똑바로 쳐다보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현대에 가까워 올수록 화가들은 이런 식의 무조건 이쁘게 그리기에 염증을 느낀다. 그리곤 과감하게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드러내 보이기에 이른다. 여성의 누드에 체모가 등장하고 축 처진 가슴과 볼품없는 허리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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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쿠닝, <무제(여인) Untitled(Woman)>(1971).

'너네 여자들, 사실 선녀도 아니구 천사도 아니구 신화 속의 비너스도 아닌데, 이제껏 우리가 너무 이쁘게만 포장해 왔지?'라고 스스로 알아서 반성들 하는데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드쿠닝의 그림 앞에 서면 '악'하고 입이 떡 벌어진다. 그의 작품, <여인>은 과장된 가슴과 헤벌레한 입술, 그리고 벌려진 다리 사이의 성기까지, 모든 게 하나도 이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추하기까지 하다. 그림 속 그녀는 온순함과 다정함, 지적인 어떤 것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사실 드쿠닝의 여인은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공공연한 심술이 노출되어 있다. 그들이 느끼는 여성은 남성에게 식욕과 성욕만 들이미는 천박한 그 어떤 존재이다. 유명한 미술평론가 캐롤 던컨은 드쿠닝이 그린 일련의 여인 시리즈 속에서 때론 위협적이고 도발적이지만 그 특유의 천박함과 원시성으로 인해 결국 남성이라는 상위 집단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즉 남성으로 하여금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욕망을 함께 불러일으키지만 결국은 남성에게 지배되어야 하는 '타자의 성'으로서 여성성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있다는 점을 꼬집어 내면서, 그것이 비단 드쿠닝의 그림들 속에서뿐 아니라, 수많은 미술관의 근현대 미술 콜렉션이 교묘히 종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참 재미있다. 한때는 찬양해 마지 않던 아름다운 그녀들이 언젠가부터는 사실성이란 이유로 점점 미적 기준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무지하고 원시적인 야생의 그녀들로까지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이렇게 안달복달하는 남성 화가들을 보면서 정작 여성들이 한마디 할 것 같다. 우린 보티첼리의 비너스처럼 멋지지도 않고 앵그르의 그녀처럼 등뼈가 하나 더 박힌 기형미인도 아니지만, 드쿠닝의 그녀처럼 멍청하거나 당신들을 잡아먹으려고 한 적도 없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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