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은 깨어난 여자의 목소리, 안혜경
드디어 찾은 깨어난 여자의 목소리, 안혜경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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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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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의 3집 자켓.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의 한복판에서 수용자 대중의 지지에 의해 성장한 민중가요, 그 속에서도 왜 여성주의적인 관심사에 집중한 노래는 그토록 드물었을까 싶다. 몇 주 전에 <가요! 나는 가요>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언급했지만, 학습에 의해 형성된 관념을 다소 생경하게 풀어놓은 이 노래를, 정말 아쉬운 대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1980년대까지의 상황이었다.



혹시 <이 세계 절반은 나>라는 노래를 여성주의 노래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끔 여대 학생들이 이 노래를 여성주의 노래라고 해석해서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불려졌던 호주의 노래인데, '이 지구상에 절반에 사람 내 이름 바로 그것'로 시작하는 첫 가사와 인상적인 제목 탓에 여성주의적이라고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어지는 가사는 '커다란 창고 가득 찬 곡식 나와는 너무 머네 / 굶주려 우는 아이 위하여 먹을 것 찾아 애를 썼지만 / 아무도 나를 돌아 안 보네 이 세계 절반은 나'이다. 작품 전체를 보면 이것은 여기에서 '나'는 여성이 아니라 '빈민'이다. 빈부의 격차, 북반구를 차지하고 있는 절반의 부자 나라와 남반구를 차지하는 절반의 가난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성주의적 노래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데도 이렇게 적극적인 오해를 해버린 것은, 여성주의적 노래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고 보인다.



이런 목마름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안혜경이었다. 이화여대 성악과 학생이던 시절, 대중가요계의 포크 동인 '참새를 태운 잠수함'에 간여하기도 했던 그는, 1970년대 말부터 꽤 여러 편의 민중가요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처음부터 여성주의 노래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초반 그의 작품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 기층민중의 삶에 대한 현실적이고 애정 어린 형상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가 지은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로 시작하는 <민주>는 대학 노래패 공연의 단골 독창곡이었다.(1980년대 말을 휘어잡던 윤선애도 서울대 노래동아리 '메아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노래운동에 발을 디뎠다.) '기성회비 조르던 놈 큰 소리로 야단치고 돌려보낸 학교길 (중략) 깡소주나 한잔 목에 걸치고 갈비 굽는 포장마차 지나 / 미루나무 둥지 찾는 까치 따라 가는 길'의 <까치길>이나 '한 손에는 빈 도시락 한 손에는 과자봉지' 들고 집에 돌아오는 가난한 시골 가장의 모습을 서정적 화면 속에서 포착한 <황혼> 같은 노래들이, 그 팍팍하던 시절에 우리 마음을 적셔주곤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노래를 발표한 것은 1992년의 제1집 독집음반에서부터이다. 한 면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노래들, 다른 한 면은 여성에 대한 노래들로 채워, 1980년대 후반부터 그가 지니고 있던 두 가지 관심사를 보여주고 있다.



끝없는 집안일 반복 또 반복 그 중의 하나 먹는 일만 해도 / 하루에 세 번 일주일에 스물한 번 한 달이면 아흔 번 일년이면 천 번이 넘게 /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을 올리는 시지프스의 노동처럼 / 여자라서 아내라서 여자라서 어머니라서 / 사랑의 이름으로 모성애의 이름으로 / 일할 권리는 사라지고 일할 의무만 남아 있다네 / 나는 일이 필요해 당당하게 살아갈 일이 필요해 /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이 필요해 나는 일이 필요해

<일이 필요해>(1992, 유소림 작사, 안혜경 작곡·노래)



그 음반에 실려, 이제는 스테디셀러가 된 노래이다. 이제 우리는 확실히 여자의 목소리, 여자의 수다로 이루어진 여성주의 노래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정말 일 년 동안 천 번 이상 밥상을 차리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노래, 시지프스의 노동이라는 표현의 그 절실함, '일할 권리'와 '일할 의무'의 선명한 대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에 대한 절실한 갈구 등이 구절구절 빛나는 작품이다.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구체적이고 절절한 표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그에 바탕한 자신만만함이, 그 이전의 어느 노래와도 비교할 수 없다. 뿐이랴. 말과 선율을 다루는 능란함은 '커피카피커피카피커피카피 아가씨 (중략) 자존심을 죽여라 커피카피 아가씨 (중략) 사무실의 꽃으로 남아라'로 시작하는 커피와 복사 심부름밖에 주어지지 않는 사무직 여성을 다룬 <커피카피아가씨> 등에서 빛난다.



하지만 안혜경표 페미니즘 가요의 본격적 출발에도 불구하고, 민중가요 안의 페미니즘 가요의 위상은 그리 높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작품, 작가 부족이라기보다는, 이런 노래를 열심히 불러주며 생산을 독려하는 수용자의 힘이 부족한 탓이리라. 창작자는 다름아닌 수용자가 만드는 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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