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⑦]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 어머니 소서진 씨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의 어머니 소서진 씨의 젊은 시절 모습. ⓒ양리리 의원 제공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의 어머니 소서진 씨의 젊은 시절 모습. ⓒ양리리 의원 제공

방과 후 친구와 함께 집에 왔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마마, 문 열어주세요.” 무심코 한 말에 친구가 왜 엄마를 마마로 부르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 미국서 살다 왔어.”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이지만 왠지 엄마가 화교라고 말하는 것보다 미국서 살다 왔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지금은 인식이 변했지만, 어릴 때만 해도 중국인은 땟놈, 짱개, 철가방이라고 무시받았다.

중학교 때의 일로 기억한다. 엄마와 백화점 매장을 걷는데, 점원들이 빤히 쳐다보았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 불쾌한 시선에 항의하기보다 쩔뚝거리며 걷는 엄마를 부끄러워했다. 엄마는 지체장애인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다. 편견과 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와 장애인은 환영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주류가 아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부끄러웠고 부정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일상에서 수많은 차별을 겪으면서 주눅이 들었다. 자존감도 낮아졌다. 어린 내가 사회로부터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고 힘들었다.

대학원에서 상담 및 교육심리를 공부하며 엄마에 대한 내 인식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엄마는 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당차고 멋지게 잘 생활하고 계셨다. 그렇게 엄마에 대한 양가적 감정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연구원 의뢰로 2013년 『책 읽는 도시』를 쓰게 됐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서울을 책 읽기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책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이 첫 인터뷰이였다. 서울도서관 곳곳을 돌아보던 중 장애인들의 책 읽기에 도움을 주는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이 책 읽기 좋은 도시라면, 당연히 비장애인도 책 읽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엄마가 지체장애인임에도 장애인의 책 읽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시 나는 지역 도서관을 돕고자 ‘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로 활동하고, 문헌정보학과 박사과정 중이었다. 창피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사와 ‘알권리연구소’ 감사도 했지만, 장애인 정보소외와 알권리도 고민해보지 않았었다. 부끄러웠다.  

그렇게 비장애인을 위한 책 읽는 도시에서 지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청각 장애인, 다문화, 노숙인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책 읽는 도시』가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스테디셀러에 선정되기도 해서 뜻깊기도 하지만, 저술 기간 동안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극복해나가는 경험을 했기에 더 애착이 간다. 소외되고 약자인 그들을 만나면서 누구보다 더 깊이,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화교이고 장애인인 엄마는 내 아픔이 아니었다. 지금 여기의 나를 만들고 있는 내 정체성이었다. 더 이상 다문화, 장애는 단점이 아니었다. 남들에겐 없는 관점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저술활동으로 만난 인연과 지식이 지금 구의원으로 활동하는데 귀중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과 어머니 소서진 씨 ⓒ양리리의 의원 제공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과 어머니 소서진 씨 ⓒ양리리 의원 제공

2018년부터 서대문구 비례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한 이유는 다문화와 장애인을 대변하고 싶어서였다. 서대문구 연희동에는 서울 유일의 화교 중·고등학교가 있다. 석사논문 주제가 화교 청소년이었기에, 다문화 청소년을 위해 일해 보고 싶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여성장애인 양육지원금 지급 조례’를 제정한 것도 엄마 덕이다. 46년 전 엄마는 제왕절개로 나를 낳았다. 2년 뒤 제왕절개로 동생을 출산했다. 당시 의료 수준을 감안하면 엄마는 목숨 걸고 출산을 감행한 것이다. 장애 여성은 출산도 어렵지만 양육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 과정을 기억하고 경험한 나는 장애 여성의 관점으로 출산 독려가 아닌 양육지원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했다. 개정 전 조례는 비장애 여성 관점에서 다자녀 출산을 독려하고 지원하기 위한 조례였다. 출산과 양육은 모든 여성에게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장애 유형이 다르다면 힘듦도 다를 것 같았다. 조례 개정에 앞서 시·청각 및 지체 장애 여성을 토론자로 초대해 장애 유형별 당사자 의견을 알리고자 했다. 2019년 12월 31일 조례가 개정됐다. 보건복지부의 장애 여성 출산과 양육에 대한 몰이해로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후 많은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비슷한 조례를 도입하고 있다. 보람차고 뿌듯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휠체어를 탄 엄마와 군대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 탑승 절차를 밟으면 장애인이 살기 참 좋은 사회가 됐다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신다. 전에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욕하고, 화내고 했는데, 지금은 사회가 변해서 살기 좋다고 하신다. 70세가 넘은 부모님은 장애인 인식 개선과 정책 변화를 오롯이 경험하고 계신다.

요즘은 유니버설 디자인 조례,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 보행권확보 및 보행환경개선에 관한 조례, 장애인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를 준비 중이다. 장애인을 위한 조례 같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조례다. 장애인이 편한 사회에서 비장애인은 더 편하고 안락하다. 만약 엄마가 다문화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내 관점과 활동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엄마는 내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공공분야에서 일할 소명의식과 신념을 갖도록 해주셨다. 

우리 엄마 딸로 태어나서 참 좋고, 고맙다.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 ⓒ양리리 의원 제공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 ⓒ양리리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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