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 만들어 불고 싶어 나는 4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꽈리를 만들어 불고 싶어 나는 4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시골로 내려온 후 가장 달라진 것이 뭐예요? 어떤 점이 제일 좋으세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달라진 것도 많고 좋은 것을 들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내가 아주 만족해하는 것 중 하나는 지금 난 ‘한없이 느리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꽈리의 계절이다. 꽈리를 만들어 불고 싶어 지난 4월 씨앗을 심어 4개월을 기다려 8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열매 하나를 따서 정성껏 속을 파내고 완성해 입안에 넣고 뽀드득뽀드득 분다. 내가 꽈리 부는 것을 본 젊은이 하는 말 ‘꽈리를 분다고 해서 피리처럼 부는 줄 알았어요.’

‘바로 해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서울에서는 이런 말들을 입에 붙이고 살던 내가 이제는 원하는 것 하나를 얻기 위해 3개월, 또는 6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요새 나의 삶은 ‘느리게 느리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래서 행복한 삶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던 때는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고 휙휙 너무 빠르게 지나가더니, 지금 이렇게 느리게 살아보니 시간은 넉넉하여 천천히 나와 놀며 흐르고 있다. 빠르게 산다고 해서 주어진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바삐 살 필요가 있겠는가? 

요새 젊은이들은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주방의 필수품이던 조리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듯싶다. 혹 복조리는 본 적이 있을라나? 그나마 정월 대보름날 담 너머로 던져 주던 ‘복조리 사세요!’ 풍습도 아파트 시대가 되면서 사라져버렸으니 그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조리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모를 것이다. 이제 조리를 보려면 박물관이나 가야 되게 생겼다. 나 어려서는 밥을 지으려면 우선 쌀을 씻은 후 돌을 골라내기 위해 조리질을 해야 했다. 밥 한 번 지어 보지 않고 곱게 자라 시집온 새댁은 조리질을 못해 밥상에서 시아버지 돌 씹을 때마다 민망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엌에서 조리가 사라졌다. 아예 기계로 ‘돌을 고른 쌀’이 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동네 쌀가게에 처음 돌 고른 쌀이 등장했을 때 참 신기하기도 했다. 조리질을 안 해도 되는 쌀이 나왔으니 주부의 귀찮은 일이 한 가지 덜어져 좀 비싸더라도 그 쌀을 사 먹었다. 그러나 밥 짓기의 진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술은 날로 발전하더라. 다음에는 씻지 않아도 되는 쌀이 나온 것이다. 포장을 풀어 물만 부으면 되는 씻어서 나온 쌀이 등장한 것이다. 직장생활 하는 여성들에게는 밥 짓기의 시간이 또 한 코스 줄어들었으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물 부을 필요도 없는 쌀이 나왔다. 아예 밥으로 지어 일인분씩 용기에 담아 나온 것이다. 전자렌지에 2분만 돌리면 되는 것이니 밥 짓기에 들어가는 시간은 한 시간이 넘던 것에서 단 2분으로 단축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할 때 집에서 밥 먹는 횟수가 적은 나에게도 더없이 좋은 상품이었다. 그 상품이 나온 후 나는 아예 밥솥은 상자에 집어 넣어두고 그 제품만 한 상자씩 사서 두고 필요할 때마다 한 개씩 전자렌지에 돌려 먹었다. 집에서 밥 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나는 쌀로 밥을 지어 먹을 때는 한 번 지은 밥을 여러 날 먹어야 했기 때문에 상해서 버리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좀 비싸더라도 지어놓은 밥을 사 먹는 것이 버리는 일 없어 경제적이라 생각했다.

비단 밥 짓는 일뿐이 아니다. 컴퓨터가 나와 페이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편리해졌나? 사무실에 처음 컴퓨터를 들여놓았을 때 286 컴퓨터도 신기하다 했는데 그만둘 2000년대 초에는 펜티엄으로 발전했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사양은 더 다양해지고. 프리젠테이션 자료 하나 만들려면 일주일 걸려야 하던 것이 단 몇 시간 만에 해치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직장에서 가정에서 일을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축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것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된 만큼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돌아 여유 있게 살아야 하는데 반대로 점점 더 시간이 없고 바빠지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남아돌아야 할 시간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누가 빼앗아간 것일까?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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