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배우자 김숙희씨
호남·충청 돌며 남편 대선행보 지원 박차
도지사·총리 시절엔 직원들도 살뜰히 챙겨

“정치인 아내로 살기 힘들지만
남편 덕에 세상 폭넓게 볼 수 있어 감사
외국서 ‘맨땅에 헤딩’도 해보고
‘MB·박근혜 사면론’ 후폭풍도 함께 견뎌
남편은 경험·경륜 지닌 준비된 지도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우자 김숙희씨가 8월19일 인터뷰 후 여성신문사 인근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우자 김숙희씨가 8월19일 인터뷰 후 여성신문사 인근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홍수형 기자

“반전이다.” “예능 나가셔도 되겠어.” 김숙희(66)씨 인터뷰에 동석했던 기자들의 대화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아내, 전직 교사, 언론에 잘 나타나지 않다가 최근 남편의 대선행보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김숙희 씨. 전형적인 현모양처가 떠오르지만, 만나 보니 ‘유쾌한 숙희씨’였다. 환하게 웃으며 등장해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사투리가 섞인 소탈한 말투의 유머에 다들 ‘빵’ 터졌다. “오늘 30%밖에 못 보여줬어요.”

민생 현장을 돌며 느낀 점을 말하며 “워킹맘들의 고충에 국가가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할 땐 진중하고 차분했다. 그는 “나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라던 이 전 대표의 말처럼, 남편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편은 기자부터 국회의원, 도지사, 당대표까지 경험과 경륜을 지녔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호남, 충남 등 지역의 민생 현장을 방문 중인데요. 어떤 목소리가 가장 와닿았나요.

“광주광역시 대인시장 ‘해뜨는 식당’에서 매주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1000원짜리 백반을 파는 곳인데, 널리 알려져서 도움의 손길이 늘길 바라요. 시장 상인 어르신들은 절 알아보고 ‘다 잘 될거야’ 격려해 주세요. ‘코로나 때문에 못 살겠다, 잘 좀 해달라’라는 말에 책임감도 느낍니다.”

- 직장 여성의 육아 부담 해소에도 관심이 많다고요.

“여자들이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요. 제가 젊었을 땐 애 낳고 한 달 만에 복귀해야 했어요. 게다가 아이가 병약해서 늘 병원을 오갔어요. 일을 그만 두겠다고 하자 친정어머니가 ‘애는 내가 키울 테니 넌 직장 다녀라’ 하셨어요. 옛날 분이어도 여자가 경제권이 있어야 남편으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할 수 있다는 걸 아신 거죠.

애를 전주 친정에 맡기고 서울 갔다가 토요일엔 죽어라 운전해서 전주 가고, 다음날 울면서 달라붙는 애를 두고 돌아섰어요. 경력 단절도 겪어 봤고요. 생각하면 눈물 나요. 육아만큼은 나라가 책임지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아이 키우며 마음 놓고 자기계발도 하고 살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출생이 해결돼요.”

- 그런 여성들의 목소리에 이 전 대표가 귀 기울이나요.

“남편은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발표했죠. 육아, 일·가정 양립, 직장 내 유리천장 등 문제를 고민하고 정책을 제시하고 있어요. 힘을 보태서 여성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남성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니까요. 남편은 전남도지사 시절 직원들에게 ‘손주를 보니 너무 경이롭고, 아이가 어렸을 적 일에 쫓겨 함께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우리 남자 직원들은 꼭 경험했으면 좋겠다. 육아휴직 많이 써달라’고 얘기했어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우자 김숙희씨. ⓒ여성신문/이낙연 전 대표 SNS 캡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우자 김숙희씨. ⓒ여성신문/이낙연 전 대표 SNS 캡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우자 김숙희씨. ⓒ여성신문/이낙연 전 대표 SNS 캡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우자 김숙희씨. ⓒ여성신문/이낙연 전 대표 SNS 캡처
2020년 4월15일 당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소 상황실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이 확실시되자 부인 김숙희 여사와 꽃다발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20년 4월15일 당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소 상황실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이 확실시되자 부인 김숙희 여사와 꽃다발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씨는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나와 1978년부터 중·고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이 전 대표와는 중매로 만나 1980년 결혼했다. '목소리에 반해서' 먼저 ‘애프터 신청’을 했다. 이 전 대표는 전남 영광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이다. 결혼하자마자 그에겐 대가족이 생겼다. 서울 봉천동의 단독주택 2층 280만원짜리 전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일하랴, 아이 키우랴, 식구들 대소사 챙기랴, 남편 챙기랴 분주한 날들이었다. 이 전 대표가 1989년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함께 일본에 갔다. 귀국해 2000년 퇴임할 때까지 교편을 잡았다.

“정치인 아내, 많이 힘들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나요. 저는 남편이 정치인인 게, 이 사람 덕에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보고 세상을 폭넓게 볼 수 있어서 고마워요.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 새로운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친분을 쌓는 걸 즐기고요.”

- 남편을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에 갔는데요. 남편을 위해 내 커리어나 꿈을 양보했다는 아쉬움을 느낀 적은 없는지요.

“오히려 고마웠어요. 아이가 어릴 때 심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는데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았죠. 자신감도 생겼어요. 익숙한 물에서만 놀다가,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맨땅에 헤딩’해보니 세계 어디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일본에 가자마자 바로 일본어를 배우려고 학교에 갔어요. 애 손 잡고 무작정 지하철을 탔어요. 일본어로 ‘여기 어떻게 갑니까’만 외워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죠. 남편은 격려는커녕 ‘괜히 길 잃어버리고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당당하게 찾아가서 등록했어요! 하하하. 9개월 다니고 일본어 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어요. 현지 대학원에 갈 생각도 했었죠. 당시 교류하던 아사히신문 한국 특파원 부인이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길래 제가 과외도 했고요.”

- 1980년대 중반에 운전했죠. 여성 운전이 드물던 시절이었는데요.

“‘여자가 차를 몰면 사치’라고 여겼던 시절이죠. 딸린 식구가 많았잖아요. 돈 벌어서 남을 위해 쓰다가, ‘날 위해서도 투자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차가 왜 필요하냐는 남편에게 ‘여자한테 아침 1분이 너무나 소중하다. 출근 시간 단축에 필요하다’고 하고 사버렸어요. 비싼 차도 아니고 중고 포니2. 스트레스 해소가 되더군요. 나를 위해서 한 번쯤 큰 돈 써보는 것도 필요해요.

그런데 나머지 재산은 모두 이낙연 거예요.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같이 벌었는데 집이고 땅이고 남편 명의에요. 그땐 그게 상식이었어요. 내 명의로 해달라고 말 꺼내기도 좀 이상한 시대였으니까. 나중에 보니 내 재산이라곤 차 한 대뿐인 거예요. 어느 순간 억울했죠. 벼르다가 지난번에 종로로 이사 오면서 공동명의로 했어요. 하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우자 김숙희씨가 8월19일 여성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우자 김숙희씨가 8월19일 여성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 ‘정치인 이낙연’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요?

“성실하고, 진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부지런합니다. 국회의원 시절 거의 매주 지역구 의회에 내려갔어요. 지역구 사무국 사람들이 ‘제발 이번 주에는 안 내려오셨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죠. 그게 호남에서만 내리 4선을 한 비결 아닐까요. 도지사 시절엔 관광 개발을 위해 주말마다 1000곳이 넘는 섬을 돌아다녔어요. 현장에 가봐야 동떨어지지 않은 결정을 할 수 있다면서요. 총리가 되자 전국을 다녔고요. 정치 지도자에겐 그런 부지런함이 꼭 필요하다고 봐요.

장점이 단점이기도 하죠.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일에 몰두해요. 지도자들이 일할수록 국민들은 편하지만 직원들이 힘들어 해요. 그래서 제가 집밥을 많이 했습니다. 도지사, 총리 시절 직원들을 점심 시간에 관사로 자주 초대했어요. 남편 오면 밥맛 떨어지니까 빼고. 하하하. 그러다가 직원들이 남편보다 저와 친해졌어요. 친정엄마 솜씨를 물려 받아서 음식엔 자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면 뿌듯하고 즐거워요.

남편의 장점이 또 있어요. 반찬 투정을 안 해요. 대신 맛있는 걸 해도 칭찬을 안 합니다. 어릴 때 맛있다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대요. 영광에서 광주로 학교를 다녔잖아요. 집에 가면 어머니가 장남 왔다고 밥을 해주시는데 돈이 없어 콩나물을 무쳐 주셨대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맛있게 먹었더니, 올 때마다 콩나물을 해주셨대요. 그래서 맛있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구나, 아내에게도 안 되는구나 했다는 거죠.”

- 도지사, 총리 시절 별 구설에 오른 적 없는 이 전 대표지만 올 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 후폭풍이 컸습니다. 한때 40%가 넘었던 대선주자 지지율을 꺼뜨린 결정적 패착으로 거론됩니다.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제가 그랬어요.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해. 시골 분교 출신 소년이 한 나라 총리까지 했잖아. 우리가, 당신이 잘나서 이 자리까지 온 거 아니잖아. 당신은 인복이 많은 사람이고,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충정을 알아봐줄 거야. 당신이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 당사자는 그래도 힘들어 했지만, 그것도 정치인이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거쳐야겠지요. 비난도 욕도 피하기만 할 수 없으니까요.”

- 신혼 때부터 전셋집을 전전해 내 집 마련의 높은 문턱에 힘들어 하는 서민들을 이해할 듯합니다. 이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제가 정치인이 아니라 논평하기가 적절치는 않지만, 국민들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아들도 전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요. 결혼한 지 8년차인데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야 하니 변두리로 가지도 못하고, 대출을 많이 받아서 전세로 살아요. 부동산 문제는 정말 지혜롭게 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저희 세대는 허리끈 졸라매고 5~6년 열심히 모으면 작아도 내 집을 가질 수 있었어요. 지금은 평생 모아도 살 수 없죠. 그러니 청년들이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죠. 정책 짜는 사람들이 탁상공론하지 말고 현실적인 정책을 내놓았으면 좋겠어요.”

- 배우자로서 ‘이낙연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세요.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지녔어요. 그런 준비된 지도자가 코로나 정국에 나라를 안정감 있게 이끌어가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잘할 것 같아요. 총리 시절에도 책임감과 남다른 업무능력으로 좋은 평가와 지지를 받았어요. 대통령이 된다면 더 잘할 것 같아요. 저희 남편을 지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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